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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부 Sep 09. 2020

출산 후에도 엄마는 쉴 수가 없다

출산 후기⑤ 끊임없이 울렸던 병원 전화벨


아이를 낳으면 쉴 수 있을까.


지친 몸을 이끌고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이동했다. 아이를 낳기 전, 우리는 재정 상황을 고려해 2인 입원실을 이용하자고 합의했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특실로 계약해놨다. 코로나 19 영향도 있었고 2인실이 만석이었던 탓도 있다. 남편은 고맙게도 비싼 영양제지 챙겨줬다.


이때가 5월 13일 새벽 1시가 넘었던 것 같다.


특실은 남편하고 나만 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이 딸려 있어서 좋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화장실 가는 게 일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공용 화장실 쓰기가 힘들었다. 오로 패드를 가는 것도 일이었다. 2인실을 썼으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분만을 했기 때문에 입원실에 도착하자마자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제발 수술시켜 달라'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약간 멋쩍었다. 그럴 일 없었겠지만, 수술했다면 바로 음식을 못 먹었을 것. 식사는 이미 준비돼있었다. 저녁 8시에 먹을 것으로 예상됐던 석식. 난산으로 온갖 고

통을 겪은 후 새벽 2시에나 먹게 돼 음식은 이미 식을 대로 식었다. 메뉴는 미역국, 몇 가지 반찬, 우유. 남편은 출산 뒤처리를 하느라고 바빴다. 입원실에 홀로 덩그러니 남은 나는 곧장 우유 200ml를 들이켰다. 이때 먹었던 우유천상의 맛이었다. 식석식도 꿀맛이었다. 밥을 먹고 있으니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사투를 벌이며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빠른 회복은 자연분만의 최고 장점 같다.


당직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호사는 새벽 3시까지 소변을 보고 간호사실로 전화하라고 했다. 이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잠도 들지 못하고 꼬박  밤을 새우며 남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출산 소회 그리고 처음 본 우리 아이 이야기.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출산하느라 정신없었던 순 남편은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생에 처음으로 하나님한테 기도를 했다고 했다. 종교도 없는 사람인데, 제발 아내와 아이가 무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또 남편은 당직 선생님이 아이를 받으러 들어오자, 믿음직스럽지 못했는지 '왜 담당의가 안 오냐'면서 간호실에 따졌다고 했다. 남편은 남들한테 큰 소리 한번 잘 안내는 사람이다. 정말 나와 아이가 걱정이 됐나 보다. 양수가 터져 피로 흥건해진 만실 이야기도 해줬다. 계속 이어지는 출산 후 이야기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천사 같은지를 깊은 새벽까지 열변을 토다.


이야기 꽃을 피우다 나는 소변을 보고 간호사실로 전화했다. 무통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소변을 호스로 뽑아냈었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그냥 속일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간호사는 내 마음을 마치 읽었는 듯 확인하러 입원실까지 내려왔다. '속였으면 큰일 날 뻔했네'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진짜 쉴 수 있는 까.


대도 잠시, 같은 날 새벽 5시가 되자 간호사가 입원실에 찾아왔다. 전날 맞은 수액이나 영양제는 잘 들어갔는지 체크. 열 체크, 혈압체크 등. 그 이후에도 몇 시간마다 간호사가 수시로 들이닥쳤다. 두 시간 남짓밖에 못 잔 나와 남편은 그렇게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잠에서 깨야 했다.


아침 7시가 되니 아침밥이 배달됐다. 아침밥은 먹어야 하기에 또 일어났다. 밥을 먹고 부랴부랴 치우니 이번엔 제대혈 설명을 해주겠다고 전화. 가슴 마사지받으라고 전화. 아이 수유를 하라고 신생아실에서 전화. 회음부 소독하라고 산부인과에서 전화. 회사에서 선물 보냈다고 택배에서 전화. 회사에서 전화. 양가 부모님들 확인 전화. 신생아실에서 필요한 게 있다고 전화. 중간에 간호사의 상태 체크. 오로도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회음부도 아파서 내 몸 챙기기도 바쁜데, 병원에서 확인하고 결정하고 챙겨야 할 일들은 산더미 같았다. 방금 출산한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정작 코로나 19 탓에,  아이를 보러 신생아실은 몇 번 가보지도 못했다. 하루에 오후 8시 딱 한번 신생아 면회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도 문 밖에서.


아무튼 아이를 힘들게 낳고 입원실에 들어간 이후, 단 한 번도 푹 자보지 못하고 퇴원했다. 잠이 보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퇴원하는 날도 챙길 것이 많았다. 퇴원 절차도 꽤나 복잡했다. 입원실 카드 반납부터, 아이 관련 주의사항, 아이 데려갈 때 챙길 물품 체크, 다음 산후 검진 일정 체크, 조리원 입실 체크 등. 그리고 처음 아이를 안고 이동하는 날이라 너무 정신이 없었다. 너무 작아서 만지면 으스러질 것 같은 아이를 챙기기도 벅찬데 그 외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조리원 생활이 시작됐다. 산모들에게 천국이라는 조리원이었지만 여전 쉬지 못했다. 물론 육아에 찌든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조리원이 천국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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