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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부 Sep 14. 2020

5월생 아이의 첫 월동준비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장마가 끝나고 갑자기 선선해진 바람에 깜짝 놀랐다. '벌써 가을이 왔구나' 싶어서다. 번뜩 '아이 입을 가을, 겨울 옷이 없다'는 생각에 정신이 들었다. 아이가 막 백일을 넘어 '이제 좀 키울만하네' 싶으니 가을이 왔다. 다시 이것저것 준비하기 위해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 아이는 태어나서 추위를 겪어본 적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후텁지근한 날씨만 본 아이는 올해 처음으로 가을의 높고 파란 하늘, 귀뚜라미 우는 선선한 바람을 보고 느끼게 된다. 겨울에는 하얀 눈도 보겠지.


아이의 월동준비는 생각보다 할 게 많았다. 더욱이 겨울이 되면 아이는 태어난 지 6개월이 된다. 가만히 누워서 모빌만 틀어줘도 엄마를 보며 방끗방끗 웃던 아이가 이제는 뒤집기도 하고 배밀이도 한다. 겨울이 되면 허리 힘도 제법 세져서 점퍼루나 쏘서도 타고, 지금보다 더욱 움직이게 될 것이었다. 아이의 행동반경이 넓어 집안 곳곳을 바꿔야 했다. 준비할게 하나둘씩 늘어나니 아이가 다시 신생아로 돌아간 듯했다.


당장 시급한 것은 가을, 겨울을 나기 위한 옷과 이불이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아이 옷 매장에 갔다. 아이가 뱃속에 있었을 때, 백화점에 들러 배넷 슈트 두벌을 산거 빼고는 옷 매장에 가본 적이 없다. 우리 아이가 여름에 입은 옷들은 모두 선물이거나 물려받은 것이다.


매장에는 다양한 옷들이 있었다. 어른 못지않게 옷 종류가 많았다. 우주복, 쫄바지, 티셔츠, 니트, 카디건, 조끼 등. 색깔이 어찌 그렇게 예쁘던지. 남자아이인데도 노란색, 분홍색 등 형형색색의 밝은 옷들이 많았다.


그중에 내가 고른 옷은 공룡 우주복. 공룡 우주복을 골랐는데 옆에 있던 다른 우주복이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 색깔의 니트 같이 포근하게 보이는 옷. '이건 이번 추석 때 입히면 예쁘겠다' 싶었다.


하지만 고민 됐다. 공룡 우주복에 조끼까지 이미 고른 터라, '어차피 아이는 빨리 커서 몇 번 입히지도 못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의 마을 읽었는지 주저하지 말고 사라고 했다. 결국 실용보다는 예쁜 아이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려 카드를 긁어버렸다. 시어머니가 쓰라고 주신 카드였다. 그날 나는 결국 아이 옷에만 13만 원을 썼다.


아이의 월동준비는 끝나지 않았다. 거실 매트, 아이 침대 등 아직 살 게 산더미다. 요즘 맨날 인터넷으로 아이 용품만 검색한다. 아이 물건을 하나둘씩 사다 보니, 부모님이 생각난다.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던 우리 부모님. 나는 올 겨울에 입을 맞는 옷이 하나 없지만, 우리 아이 올해 겨울 따뜻하게 입힐 생각에 돈 나가는지 모르고 이것저것 고르던 나의 모습이 우리 부모님과 겹쳐졌다. 나도 부모가 됐구나,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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