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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부 Sep 08. 2021

"맘마" 조금 못하면 어때!

아이의 발달, 얼마나 빨라야 안심이 될까

고된 하루를 마치고 아들, 남편, 나와 도란도란 침대 위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툭하고 한 마디 던졌다. 지인의 아들이, 우리 아이가 못하는 단어를 말한다는 얘기였다.

노는 게 제일 좋은 우리 아이/사진=최수진


"아는 선배 아들이 '공' 이란 말을 한대"


대단하다란 생각과 함께, '우리 아들은 저 말 못 하는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내심 나와 남편이 말로 먹고사는 사람인지라, 아이도 엄마 아빠의 재능을 물려받아서 말을 빨리 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이 하는 말을 우리 아이가 못 한다는 생각을 하니 금방 조바심이 치밀었다.


곧장 포털사이트를 켜서 15개월 아기 언어발달을 검색했다. 몇몇 엄마들이 올린 글이 보였다. "우리 아이는 16개월인데 말하는 단어가 30개는 되는 것 같다", "빠른 아기예요~ 동사도 말해요", "가자, 무 울~, 하비, 함미" 등을 말한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우리 아이 또래가 30개, 빠르면 50개 단어까지 말을 한다니. 우리 아이가 너무 느린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퇴근 후 아이와 다정하게 보내겠다고 다짐했던 시간은 그때부터 난데없는 언어 훈련 시간이 됐다.


"물~해봐", "아빠!, 엄마!", "맘마!"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의 표정은 "엄마가 왜 저러나"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소 급발진 같았던 훈련이 끝나고 아이를 서둘러 재웠다. 아이의 언어 발달에 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털을 좀 더 뒤졌다. 이것저것 찾아보는 와중에 풀이 더 팍 죽었다. 온통 우리 아이보다 더 나은 아이들의 사례만 줄줄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남보다 특별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 일명 모든 부모들이 한 번쯤은 다 생각해본다는 '우리 아이 천재설'이다. 노트에 선 하나만 그어도, "우리 아이가 화가가 되려 나보다~"라는. 쿨한 엄마가 되겠다며 "좀 느리면 어때~", "건강한 게 최고다~" 했지만, 속으로는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빨랐으면 좋겠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 찼었나 보다.


 이 쿨하지 못한 남들과의 '비교 쟁이 엄마'는 이제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 더 남들과 비교하게 될 터였다. 그러면서 아이를 달달 볶을 내 모습을 떠올리니 끔찍하기만 했다.


아이가 얼마나 남들보다 빨라야 걱정을 덜 하게 될까. 무울~ 맘마~를 시키는 나의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조바심 나는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도 말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다. 엄마, 아빠, 어부바, 멈머(멍멍), 빠빠(최근 업데이트)도 말하고 옹알이는 수준급이다. 말귀는 내 예상에 60% 정도 알아듣는 것 같다. 앉아~ 하면 앉고 일어서~ 하면 일어서고. 기저귀 갈 때는 발~하면 척 발도 들고. 맘마 먹자~ 하면 식탁으로 가고. 신발 신자~ 하면 기가 막히게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 있다. 엄마 간다~하면 졸졸 엄마도 따라오고, 이름 부르면 곧잘 쳐다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착잡한 생각이 들면서 풀이 죽은 채 TV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우리 아들은 밝고 착한 아이 같아."


맑고 고운 종소리가 '뎅~' 하고 울리더니 남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우리 아들은 심성이 참 착한 아들이다. 아침마다 엄마 다리에 얼굴 파묻고 "이 이잉~~" 하면서 고개를 부비부비 하면서 애교도 떨어주고. 웃을 땐 코도 찡긋~하면서 예쁘게 웃는다. 멍멍이가 지나가면 멍멍이 잘 보이게 쭈그려 앉으면서 멍멍이한테 아이 컨택도 해주면서 귀엽게 웃고. 제일 좋아하는 건, 엄마한테 우유 먹여주기. 가끔 본인 최애 간식인 복숭아나 포도를 나눠주기도 하는 심성 고운 예쁜 아들.


그래, 지금 맘마 조금 못하면 어떠랴. 늦은 것만 아니면 되지 않을까, 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나의 조바심 때문에 남들과 비교하면서 아이에게 큰소리치지 말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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