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먹든
6월이다. 제주도는 온통 수국으로 뒤덮였다. 차와 사람이 다니는 모든 길에 색색의 수국이 무리 지어 피어있다. 수국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 유난히 기압에 예민한 몸을 가진 나는 흐린 날과 맑은 날의 컨디션이 현저히 차이가 난다. 흐린 날은 늘 기운이 없다. 마당 가득 피어있는 보랏빛 수국을 보고 들어와 앓아누웠다. 천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가라앉는 몸과 까무룩 하게 사라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애를 쓴다.
기어이 온몸의 물기를 다 게워 내고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때마침 찾아온 J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정신을 차려보려 애를 썼다. 걱정하는 J에게 전복죽과 성게미역국을 부탁했다. 몸살도 아니고 그저 고질병이라 뭘 먹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앓고 난 후에는 언제나 바다 음식이 입에 거슬리지 않았다. 내장을 넣어 바로 끓여낸 전복죽은 고소했다. 하지만 두어 숟가락 먹고 나니 코를 스치는 해산물 특유의 비릿함이 싫어졌다. 얼른 양치하고 소파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6월에 으슬으슬하니 한기가 돌았다. 이대로 다시 누우면 진짜 일어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먹고 기운을 내야 한다. 뭘 먹어야 할까. 누구를 불러서 같이 가자고 할 사람도, 뭘 먹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일어나 나가 보기로 했다. 마지막 힘까지 다 짜내서 생각해 낸 음식은 장어탕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바다와 들과 산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소도시다. 그러기에 시장에는 어떤 식재료든 사시사철 풍성했다. 아주 빼어난 미식의 고장은 아니지만 우리는 언제나 제철에 나는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즐겨 먹었다. 장마가 시작되는 6월은 장어탕을 끓이기에 좋았다. 시장에 가서 장어탕을 끓일 거라고 말하면 생선가게 주인은 능숙하게 장어를 손질했다. 그 손질 방법이 꽤 경악스러웠다. 긴 나무판에 커다란 못이 박혀 있다. 그 못에 장어 대가리를 박고, 면도칼이나 연필 깎는 작은 칼로 장어를 가른다. 그다음에 살과 뼈를 분리하고 내장을 꺼낸다. 유난히 비위가 약한 나였지만, 이상하게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에는 꽤 대담했다. 생선가게 주인이 한 바가지 가득한 장어를 다 손질하도록 묵묵히 그 앞을 지키고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장어를 좋아하냐고 두어 마리 더 얹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사 온 장어는 커다란 솥에 넣어 푹 곤다. 가스나 전기 레인지가 없던 그 시절에 불을 오래 쓰는 여름 음식을 할 때는 연탄 화덕을 피웠다. 잠깐씩 가볍게 하는 음식은 기름 곤로를 사용했지만, 장어탕 같은 오래 끓이는 국물음식을 하려면 연탄이 제일이었다. 좁은 부엌에 연탄 화덕을 피웠다간 가스 냄새도 문제지만 그 열기로 다른 음식이 쉽게 상할 터였다. 그런 이유로 연탄 화덕은 마당 한 쪽이나 수돗가 옆에 자리 잡았다.
장어는 뼈와 살을 모두 넣고 비린내를 잡기 위해 쌀뜨물에 된장을 한 숟가락 넣어 끓인다. 뼈에서 뽀얀 국물이 우러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끓여낸다. 장어탕은 추어탕과 들어가는 재료가 비슷하다. 다양한 채소들이 들어가기에 장어를 끓이는 동안 들어갈 채소와 다른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여름 대표 채소인 얼갈이배추를 데쳐내 우거지를 준비한다. 삶은 고사리와 숙주, 대파도 적당한 길이로 썰어 둔다. 두어 시간을 푹 곤 장어는 체를 받혀 뼈를 걸러낸다. 살은 덩어리지게 두기도 하고 살도 걸러 부드럽게 국물에 풀어지게 하기도 한다. 그다음에 얼갈이 우거지와 고사리에 고춧가루와 된장과 조선간장, 마늘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다음 국에 넣는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숙주와 대파를 넣고 다시 뭉근하게 끓인다. 여기서부터 집집이 풍미가 달라진다. 우리 집은 간을 국에 하지 않았다. 산초 잎사귀와 풋고추를 잘게 다지고 마늘과 생강도 살짝 들어간 양념장을 따로 만들었다. 그리고 각자의 국그릇에 취향껏 양념장을 넣어 자기만의 간으로 장어탕을 먹었다. 이 양념장의 특별한 비법은 방아잎이다. 토종 허브인 방아잎은 남도의 여름 음식에 빠지면 서운한 식재료다. 어린 시절 내가 먹은 모든 여름 국물에는 방아잎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결혼 후 남편이 방아잎을 못 먹겠다고 했을 때 꽤 충격이 컸다.
같은 경상도라지만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음식은 확실히 다르다. 경상남도라도 동부권과 서부권은 또 다르다. 진주는 경남이지만 전남과 가까운 탓으로, 음식에서 전라도의 기운이 느껴질 때가 많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산 세월이 길다 보니 어느새 입맛은 서울식의 심심한 맛에 익숙해졌다. 가끔 고향 집에 들를 때면 가족들과 자주 가는 곳이 있다. 남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삼천포의 실안 해안이다. 내 기억으로 어릴 때부터 집에 큰 행사가 있거나 특별한 손님이 오셨을 때 가는 식당이 그곳에 있다. 남해안에서 잡은 싱싱한 붕장어를 손질해서 바로 구워 주거나 탕을 만들어 주는 식당이다. 가게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가족 모두 삼천포 장어집으로 부른 탓이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진주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 항상 장어집을 찾았다. 촉석루가 있는 남강 변에는 꽤 유명한 장어집이 즐비했다. 개천 예술제라 불리던 지방 축제 기간에는 촉석루 주변 남강 하늘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장어집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이제는 촉석루를 대규모 관광단지로 만들면서 남강 변에 늘어선 장어집들은 전부 흩어져 버렸다.
어릴 적부터 병치레가 잦았던 내가 유일하게 먹는 보양식이 장어구이나 장어탕이었다. 육류는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할 정도였으니, 보통 아이들처럼 곰국이나 설렁탕은 생각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갯 거, 비린 거를 좋아한 엄마의 식성이 중요했을 거다.
입 짧은 엄마는 여름을 힘겨워했다. 다른 집과 달리 부엌에서 음식 만들기를 개의치 않으셨던 아버지는 무더운 여름날 엄마의 지시를 받으며 연탄 화덕에서 장어탕을 끓였다. 마루에 누워 엄마와 아버지가 나란히 수돗가에 앉아 장어를 손질하고 탕에 들어갈 채소를 다듬던 기억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새겨져 있다. 덜덜거리는 선풍기를 틀어두고 다섯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큰 국대접 가득 뜨거운 장어탕을 먹었다. 장어 기름에 녹진해진 우거지와 고사리를 건져 먹다가 찬밥 한 덩이를 말아 방아잎이 잔뜩 들어간 매콤한 양념장을 넣어 볼이 미어지게 먹던 여름밤. 텔레비전에 정신 뺏긴 동생은 지청구를 같이 먹었을 테다. 부른 배가 꺼지기도 전에 수박을 꺼내 좍좍 썰던 아버지의 등은 수박색만큼이나 푸르렀다.
이제 장어탕을 끓이던 아버지는 없다. 늙은 엄마는 그 귀찮은 음식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몇 년 전 동생과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가서 장어를 사다 집에서 장어탕을 끓였었다. 장어를 삶는 동안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집안 가득 베였다. 장어를 삶고 그르고, 채소를 데치고 무치고, 양념장을 만드는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막상 하루 종일 애를 써서 만들어 낸 장어탕은 우리가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고향 집에 전화해서 엄마에게 물어봐도 크게 틀린 것이 없었다.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연신 맛을 봤다. 방아잎이었다. 그게 없으니, 우리가 알던 그 장어탕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2퍼센트 부족한 맛을 견디며 우걱우걱 장어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유난히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미각이다.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이 나이가 들수록 유난스레 되새김질 된다. 포장마차 연탄불에서 구워 주던 꼼장어, 소시지가 아니라 어육이었을 얇은 분홍 소시지를 넣은 핫도그, 묽은 밀가루 반죽에 황설탕을 넣고 부친 국화빵. 요즘 아이들에게 먹인다면 바로 뱉어버릴 맛이겠지만 마음에 허기가 질 때마다 눈물 나게 그리운 맛이다.
전화 한 번이면 뭐든 다 배달되거나, 마음먹으면 원하는 걸 다 먹을 수 있는 서울을 떠났다. 내가 사는 이곳은 배달 음식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도 없다. 몸이 힘들면 마음마저 서러운 법. 이곳에서 나의 소울푸드인 장어탕을 만났다. 이웃에 사는 지인이 소개해 준 곳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장어탕은 음식점 사장님의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다고 했다. 방아잎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산초잎도. 제피가루는 넉넉히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장어탕은 내게 최고의 진미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부스스한 몰골로 장어탕을 주문했다. 십여 분이 지나고 뜨겁게 달궈진 뚝배기에 부글거리는 장어탕이 나왔다. 숟가락을 드니 입안에 침이 먼저 고였다. 고춧가루와 된장을 넉넉히 넣고 버무린 우거지와 고사리 대가 먼저 혀에 닿는다. 푹 고인 고소하고 칼칼한 장어 국물을 후후 불어 삼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겁고 알싸한 기운. 장어탕 국물이 내장을 타고 돌면서 기운 없이 늘어져 있던 세포들을 두드려 깨웠다. 정신 차려!
눈가가 흥건해졌다. 흐르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장어탕 한 그릇과 밥 한 공기를 싹 다 비웠다. 헛헛하던 속이 단단해졌다. 여름 보약이라는 장어탕이 아닌가. 여름 바다를 한 그릇 먹으니, 다시 살아 낼 힘이 생겼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어둡다. 해안도로 너머의 검은 바다에 수없이 많은 달이 떴다. 바다가 좋아서 바다에서 나오는 숱한 생물들이 나를 먹여 살려서 나는 바다가 있는 제주도로 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대부분이 바다에서 나온다. 그런 바다가 점점 나빠진다고 걱정 어린 소리가 많아졌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바다가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줄 것이 많은가 보다. 밤마다 저리 환하게 불을 밝히고 나가는 배들이 그 증거 같다. 그래, 바다도 나도 살면 살아진다. (2025/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