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후각이 꽤 예민하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병의 첫 증상은 냄새가 나는 걸로 시작된다.
가령 편두통은 늘 모든 냄새가 구역질을 동반하며 찾아온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방 안의 냄새를 맡는다.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으면 그날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이런 인간이라 무엇보다 향을 입는 것에 진심이며 신중하다. 남을 위한 향이라기보다 나를 지키기 위한 향을 입는 것이다. 가장 멀리 하는 것이 인위적인 향이다. 시중에 판매하는 향수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좋아하는 향은 대부분 아로마 오일에서 나온다. 주로 시트러스 계열이나 로즈메리나 레몬밤 같은 풀향을 좋아한다.
몇 년 전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문을 연지 오래되지 않은 호텔이었다. 옅은 연두색이 메인컬러인 작은 부띠끄 호텔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시설과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예약한 곳이었다. 작지만 친절한 호텔리어만큼 그 호텔의 강렬한 첫인상은 향기였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본 머릿속까지 상쾌하게 바꾸는 향이었다. 진하거나 인위적인 향이 아니었다. 은은하게 공기 속에 섞여 눈치를 챌 듯 말 듯 수줍게 내는 향이었다. 향기는 방에서 제공하는 웰컵 차와 따뜻한 물수건에서도 났다.
2월, 우리나라는 엄청 춥고 그곳은 우리에겐 더웠지만 그들에게도 겨울이었다. 수줍은 미소를 띤 호텔리어가 따뜻한 물수건을 건넸다. 나는 여기서 나는 향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의 짧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그들에겐 익숙한 향이어선지 그녀는 웃으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같이 여행을 한 딸들도 호텔의 모든 것 중에서도 향이 좋은 게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보다 호텔에서 여유 있게 묵으며 즐기길 택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작은 요가 교실이 있었다.
요가를 함께 하고 난 뒤 요가샘이 다가와 목의 근육을 잠깐 마사지해 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소녀 같은 그녀가 병에서 오일을 부었을 때,
"이 향이다!"
딸들과 내가 동시에 외쳤다. 갑작스러운 우리의 행동에 요가샘이 어리둥절했다. 큰 딸이 천천히 영어로 이 호텔에서 나는 향이 너무 좋은데 뭔지 몰랐다. 그런데 이 향기를 맡으니 같은 향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제야 요가샘이 환하게 웃으며 '레몬그라스'라는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 호텔의 기본 베이스가 아로마 오일을 활용한 인테리어를 제공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 레몬그라스라는 허브를 처음 알게 되었다. 동남아에서는 우리나라의 깻잎만큼 여러 요리에 다양하게 쓰이고 차나 인테리어에 활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호텔 안의 마사지 샵에 갔을 때 우리는 오일을 고르라는 마사지사의 말에 주저 없이 레몬 그라스오일을 골랐다. 그걸로 부족해서 요가샘에게 부탁해서 좋은 레몬 그라스 오일을 서너 병 사 왔다.
도시를 사랑하지만 도시를 견디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폭력적인 냄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타인의 냄새를 그대로 내가 다 맡아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은 상가에서 나오는 여러 냄새들.
제주도로 건너와서 사방에 뻥 뚫린 시골에 사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도 자유로운 후각 활동을 즐길 수 있어서다.
우리 집은 앞과 뒤에 커다란 귤밭이 있다. 5월 귤꽃이 피어 흐드러지면 사방의 공기는 아찔하다. 세상 어떤 방향제가 이리 매혹적일 수 있을까. 이미 2월부터 온갖 꽃들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동네는 공기에 언제나 향을 품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의 풀내음은 또 어떤가.
흙과 풀에서 풍기는 향은 어떤 것보다 중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샤워를 하고 나면 아로마 오일로 내 몸 구석구석에 향기를 입힌다. 뒷목의 뻐근한 근육은 페퍼민트나 로즈메리 오일로 문지른다. 관자놀이와 귓불은 레몬그라스 오일 한 방울로 쓱쓱 비벼준다. 때때로 여러 가지 아로마 오일을 믹스한 제품도 즐겨 바른다. 전문가들이 적절하게 믹스한 아로마 제품은 내 모든 후각세포를 하나씩 깨워 활력을 준다.
작년에 우리나라 최고의 조향사님께 배운 직접 만든 향수는 제일 아껴 쓰는 향수다. 아껴 썼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다 소진되었다.
향은 나를 더 괜찮은 사람인양 포장해 주는 효과도 있다. 언제나 자신감 없는 인간이라 밖으로 나가기 전 싸움에 나가는 무사가 갑옷을 입는 것처럼 나는 한 번 두 번 칙칙 향수를 입는다. 자연이 주는 좋은 향기를 한번 덧입고 나면 나도 꽤 괜찮은 인간처럼 느껴져서 밖으로 나가도 조금 안심이 된달까.
누구에게나 자기를 지키는 습관이나 주문 같은 것들이 있을 거다. 나에게는 향이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