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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Jul 17. 2024

아는 것이 힘이지만 무섭다.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아는 것이 힘이다.'

잉글랜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했다.

나에게 이 말은 내 인생의 큰 줄기와도 같았다. 배움이 부족했던 초등학교를 보내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경험이 중요하고 경험 속에서 배운 것은 절대 잃어버리지 말자고 다짐하곤 했다. 또한, 배움이 늘어날 때 마치 복리효과처럼 다른 것들도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알아서 힘든 경우도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다이어터들에게 '아는 것'은 힘든 것이다. 운동에서야 아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음식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이니 말이다. 누구나 아는 칼로리가 많이 나가는 음식이 나오면 다이어터들 중에는 '아는 맛이라서 안 먹는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는 맛이라 더 힘들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다이어트를 할 때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았다. 음식앞에서 괴로워하고 혹은 이성이 욕구에 지는 바람에 먹고 후회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이처럼 안다는 것은 삶에서 '+'요인 일수도 있고 '-'요인 일수도 있는 것이다.


임신을 하고 보통 16주가 되기 전 태아 기형아 검사를 진행한다. 우리도 역시나 검사를 해야 했는데 무지랭이 나와 달리 아내는 여러 검사를 알아보고 있었다.

양수검사, 융모막검사, 니프티검사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결국 비용과 연관되어 사정에 따라 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의 두려움 정도에 따라 조금 더 세밀한 검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지만 무섭기도 한 이유는 결국 직업과 관련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귀엽지만 한편으로는 힘든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휴직 중이라 조금 덜 하지만 다시 복직을 하면 느낄 감정들이다. 교육자로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보는 것과 부모로서 장애 아이를 보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내 아이가 장애가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받으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렇다. 분명한 것은 주위의 어려운 것들이 이야기가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도 임신을 내내 여러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기형아검사 역시 가볍게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보통의 경우 1,2차 검사로 기형아 여부를 확인하겠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는 융모막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비용이 조금 나오더라도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내는 쪽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검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는데 아내 뱃속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것을 CCTV로 보고 있으니 놀랍기도 했고 걱정도 되었다. 검사가 끝난 의사선생님께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우리는 집으로 와서 결과를 기다렸다. 어쨌든 검사는 끝났고 우리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예전에 직장에서 선배였던 분이 노산이셨는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선생님께서 '만약에 장애가 있어도 어쩌겠어요. 그냥 키워야지..'라고 하셨다. 이 말은 당시 나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해답과도 같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키워야 하는 거고 그 과정에서 충격을 받는다면 조금 일찍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상이 없다면 안도감과 함께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고 힘들었다기 보단 많이 보고, 알아서 걱정도 많은 시간이었다.  

몇 주 뒤에 결과가 나왔는데 우선은 큰 이상은 없다고 하였다.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던 시간.. 그리고 내가 가진 수많은 생각들 -아이, 아내, 내가 보고 가르쳐야 할 학생들에 대한 생각들- 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아 귀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후 큰 이슈없이 잘 지내서 다행이었고 현재까지도 큰 이상은 없지만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았으니... 그것만 지난다면 선천적인 것에서는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아는 것이 힘이다.'

알기에 대처할 수 있고 부모로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조금 빨리 정리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직업에서도 나의 가정에서도 모두 그렇다. 나중에 아이가 큰 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다 해줄 것이며 아이에게도 분명 알려줄 것이다. 많이 보고, 경험하고, 배워서 내가 아는 것이 많아야 결국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도 커지는 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서 아프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오늘도 잘 커가면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아이에 대한 기록이 담긴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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