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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Jul 11. 2024

I'm 무.지.랭.이. 에요.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5월은 언제나 그랬듯 날씨가 너무 좋아서 1분 1초도 허트로 쓰기에 아까운 날들이었다. 출근을 하지만 날씨가 좋아서 용서되고 퇴근 땐 오늘은 무엇을 할지 늘 고민이었다. 예전과 달라졌다면 아내가 임신을 해 움직임에 제한이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주말엔 지인을 만나든지, 처갓집에 가곤 했지만 주중엔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외식이라도 하게 되면 둘이서 중간 어디서 쯤 만나 밥을 먹고 산책을 하다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날도 밖에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하기로 하고 만났는데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하여 집 근처 햄버거 가게로 갔다.

햄버거.. 완전식품인 이 음식은 너무나도 맛있지만 단점이 정말 빨리 먹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패스트푸드겠지.. 햄버거를 다 먹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날씨는 좋고 시간은 많고..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집 뒤 조그마한 산에 올라가자는 제안을 내가 먼저 했다. 아내도 좋다고 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올라 가는데.. 평소 같으면 15분 정도면 올라가는 낮은 산이어서 큰 부담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임신 중이었지만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정도쯤은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큰 일없이 산 정상에 올라 북한산을 한 번 바라보고 또 저 멀리 시내도 바라보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하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근 후 급히 병원을 다녀왔다. 다니던 병원은 일찍 마감을 했고 집 근처 간 병원은 초음파 진료가 어렵다 하여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초음파 진료를 하고 결과를 보여주며 의사선생님께서 아직 큰 이상은 없고 아기도 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때서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혈도 없어질 거라고 알려 주셨는데 그 순간 의사선생님이 마치 생명의 은인 같이 느껴졌다. 어쩌다 그랬는지 이야기하다 어제 간 산 이야기를 했더니...

의사선생님께서 절대 안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하셨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둘 다 임신이 처음이라 큰 일이라도 생기는 줄 알고 놀랐던 첫 사건이었다.  임신 4개월이 넘어서 이제 안정기라고 생각했는데 임신하고 나면 출산 때까지 안정기는 없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다. 햄버거를 먹고 굳이 칼로리를 소비해야 한다며 무리하게 뒷산에 가자고 한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임신을 하고 나면 결국엔 아빠보다 엄마의 역할과 사랑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처음 임신을 하기 전 아기가 태어나면 마치 내가 다 할 것처럼 했지만 임신을 하고 난 뒤 나는 내일이 더 바빴다. 학교일도 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대학원 마지막 학기 준비에 논문까지 밀려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지막 학기에 논문을 끝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이때 조금 무리해서라도 끝냈더라면 임신 후기엔 내가 조금 더 신경 써주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해서 아내가 편했을 것인데... 내일 내일 하다가 결국 마지막 여름학기가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게 되었고 만삭인 아내를 두고 후반기부터 다음 해까지 넘기게 되었다. 나는 '게.으.른. 베짱이' 같은 존재였다. 알아야 될 사실은 항상 아내에게 전해 들었고 필요한 것, 준비해야 할 것 모두 아내가 먼저 알아보고 챙겨야 했다. 자신의 몸 챙기기도 힘든데 아기에 대한 정보, 육아에 필요한 물건, 산후조리원 알아보기 등을 척척해내는 것을 보곤 대단하지 싶었다. 그러니 내가 아는 지식은 아주 단편적인 사실들 밖에 없었다. 아내에게 늘 미안한 순간이었고 감사한 시기가 아마도 이때가 아닌가 싶다.

임신을 하고 5개월 이상 넘어가면 남편은 최대한 많은 육아 지식을 익혀 놓는 것이 출산 후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일이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함께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면 준비부터 함께해야 서로 의지도 되고 나중에 아빠, 엄마의 역할을 더 충실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훌륭하게 해내지 못했지만... 아이는 엄마와 잘 자라고 있었다.

좋은 날 둘이서 다니던 모든 곳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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