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종무식과 시무식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by 종우리

12월 31일이 되면 기업체에서는 종무식을 한다. 큰 행사는 아니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1월 1일이 되면 시무식을 하는데 올 한 해 어떤 마음가짐과 각오로 임할지를 전달하며 독려하는 것이기에 이 또한 의미가 있다. 나의 육아일기도 이제 끝을 낼 때가 되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2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지만 1월부터는 아내와 공동육아를 진행하게 될 거고 2월에는 복직 준비로 바쁘고 3월부터는 주 양육자로 아내가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2월 31일이 나에겐 육아 종무식이었고 1월 1일은 아내의 육아 시무식이 되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무난했지만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이벤트도 많았던 것 같다. 아내와 이야기하던 중 좋았던 것 2가지와 힘겨웠던 것 2가지를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많은 일들 중 떠오는 것은 역시나 행사나 아픈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좋았던 것-

역시나 100일이 아닐까!. 아기가 태어나고 100일 기념을 하던 날. 그동안 나의 인생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하는 기간이었다. 임신 중에는 나보다는 아내가 더 큰 변화를 느꼈고 아기가 태어난 직후부터는 나 역시 인생에서 변환점이 왔음을 알게 된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분유를 타던 기억, 아기를 씻기고 먹이던 기억, 기저귀를 갈아주고 놀아주던 기억 등... 나의 삶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주 압축해서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이 시기에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내가 집에서 더 힘들었겠지만 퇴근 후 집에서 아기와 함께 보내고 재운 뒤 새벽마다 일어나 분유를 타던 그때가 학창 시절 공부하던 때 보다 더 힘겨웠던 것 같다. 그래도 100일이 지나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힘든 것보다 아기의 성장하는 모습에서 더 큰 기쁨을 느꼈다. 뒤집기를 시도하던 모습이나 분유를 먹던 모습, 웃어 주는 그 모습에서 하루의 피로를 해소할 수 있었다. 아무 탈 없이 100일까지 잘 커준 것이 고마웠고 앞으로 어떤 재미있는 모습으로 살아갈까 생각하던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기였다.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아내와 부모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더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돌잔치. 아기가 태어나서 만 1년이 되던 날. 두 번의 돌잔치를 했고 본가로 가서 할머니도 만났으며 가족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날. 아기에게는 피곤함이 가득한 날이었겠지만 우리에겐 큰 기쁨의 날이었다. 1년 동안 아기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무엇보다 잘 먹어줘서 고마웠다. 살이 쪄서 고민이기도 하지만 안 먹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잘 먹고 잘 놀고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지금 당장 바라는 것은 없다. 살은 나중에 빼도 되는 것이기에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돌 때쯤 되었을 때 아기는 호기심이 많아 주변을 한참 탐색하고 다녔다. 집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고 주변 물건을 잡고서는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집을 아주 어지럽히기도 했으나 주변 사물에 대한 인지나 시야를 더 넓히고 있었다. 아빠나 엄마와 의사소통을 하려는 모습도 보여 신생아 시절의 모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있다. 다만, 여기저기 다니다 어딘가에 부딪치고 얼굴이 긁히는 일들이 가끔 생겨 조금만 조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힘겨웠던 것-

여러 사건들이 있었으나 건강과 관련된 것들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중 하나가 수족구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7월 더운 어느 날. 아기와 함께 퇴근하는 아내를 기다린다며 밖에 있었는데 아기가 내 가슴에 폭 안겼다. 낮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내는 이상했는지 집에 오자마자 체온을 쟀다. 나는 밖에 있다 보니 더워서 그런 것이라 했는데 아내는 아니라고 했다. 열이 38도 이상 올라 우선 급한 대로 해열제를 먹였다. 아기가 아픈 것도 모르고 그저 날씨 탓만 했던 내가 너무 바보 같았고 건강에 대해 예민하지 못한 점이 부끄러웠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가서 더 큰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인의 딸도 수족구에 걸려 관련된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 사진과 비교를 해보니 아기도 발바닥에 수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다음 날 소아과를 방문했는데 역시나 수족구였다. 다행히 열이 떨어져 약을 처방받고 잘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밥은 잘 먹어서 다행이었다. 심하면 목도 부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아기는 수포와 목이 약간 부은 것 이외에 큰 증상이 없었다. 그렇게 1주일 조금 넘어 아기의 수족구는 잡혔고 첫 전염병을 경험하게 되었다.

수족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기는 코로나-19에 감염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운이 없어 보여 체온을 여러 번 체크했다. 열이 점점 올라 소아과로 데리고 갔는데 혹시나 했던 코로나-19에 감염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빨리 알아차렸기에 병원도 빨리 갈 수 있었다. 약 처방을 받고 집으로 와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잠을 많이 자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열도 안 잡혀서 이틀간 고생을 했다. 이틀이 지난 뒤 점점 열이 잡혔고 다른 증상도 크게 없었다. 코로나-19가 가볍게 지나가서 천만다행이었다. 아기도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전염병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 이후 아기에게 이상 징후만 보이면 체온을 재고 병원을 다니고 있다. 아기는 말을 못 하기에 자기표현이 될 때까지는 부모인 내가 더 예민하게 지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강과 관련된 것들 이외에도 힘겨웠던 것은 있었지만 건강과 비교할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걱정과 힘겨움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육아 휴직 기간 동안 좋았던 것은 아기가 건강하게 의미 있는 날을 보낸 것이고 힘겨웠던 것들은 아기가 아플 때였다. 모든 것은 아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며 나로 인해 생긴 어려움은 그저 투정에 불과했다. 그만큼 건강이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 같다. 이밖에도 육아휴직을 하면서 배운 것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고생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자는 것이다. 아마 내가 먼저 육아휴직을 안 했다면 아내가 먼저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 육아휴직을 할 아내가 힘들지 않도록 큰 힘이 되어 주고 싶다. 또한, 체력도 꾸준히 키워서 지치지 않는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다정한 아빠, 남편이 되기 위해서 올해도 열심히 운동하면서 아내와 함께 해야겠다.


나의 육아휴직은 이제 끝이다. 하지만 육아는 계속될 것이다. 더 많은 일들이 생기겠지만 그 일들이 좋은 것이 더 많았으면 한다.

2024 마지막 해넘이. 나의 육아휴직도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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