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랫동안 기억으로 간직한 것들이 있다. 어릴 땐 섬에서 살았는데 당시 배가 들고 나고 하던 모습들, 지금은 보기 힘든 맑은 하늘과 바다의 청명함, 이사 나오던 날의 모습이 있고 성인이 되어서는 훈련소라는 낯선 곳의 인상, 처음 외국에 나갈 때 공항 모습 등등...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기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아마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습은 모든 부모들의 기억 속에서 죽을 때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 두 손으로 아기를 안았을 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최근에 하나 더 생겼는데 아기가 스스로 걸었을 때다.
14개월 14일...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걷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다. 사실 우리 아기는 걷는 속도가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니었다. 빠른 아기들은 돌 전에도 걷는다 했는데 물건을 잡고 서기는 했지만 돌이 한 참 지난 뒤에야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걷기 전까지 걱정이 많았다. 아내는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고 가족들은 연락을 할 때마다 걷는지 물어보곤 하셨다. 혹시나 신발이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해서 소리 나는 신발도 사고 편할 것 같은 신발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샀다. 그렇게 모인 신발만 8켤레가 되었다. 하지만 신발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말은 못 했지만 나 역시 걱정은 됐는데 어쩌겠는가? 아기가 걷기를 싫어하니 그저 기다릴 수밖에... 기기 인생이 더 편안 아기가 가장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씩 걸음마를 했는데 정확히 '이때부터 걸었다'라고 이야기하기엔 모호한 점들이 많았다. 자기 소파에 앉아서 잠깐 일어나 한 발짝 걷더니 넘어져 다시 두 손 두 발로 기었던 적이 있는데 이를 '걸었다'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싶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이야기했던 것이 '어.. 조금 걷는데'라는 확신이 들 때 우리는 걷는다라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처음엔 3 발자국 그다음엔 5 발자국 이상 걷기 시작했는데 그때가 아마도 14개월 14일쯤 된 것 같다.
아기의 첫걸음...
아마 당분간은 깊은 기쁨으로 기억될 것이다. 혼자서 걷기도 하지만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은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기특한지... 아직은 불안 하지만 스스로 걸어 다니는 것이 얼마나 큰 성장인지는 본인이 더 느끼지 않을까? 아기가 기어 다닐 때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OO아.. 걸어 다니면 두 손을 사용할 수 있단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걸어 다니면 두 손을 사용할 수 있다. 아기는 더 많은 것을 탐색할 것이고 소근육은 더 발달해 결국 두뇌발달도 더 잘 될 것이다. 스스로 걷는다는 것은 아주 기쁘지만 두려운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위험'에 대한 노출이었다. 아기는 아장아장 걸어서 집 여기저기를 다닌다. 두 팔과 두 다리로 기어 다닐 땐 만질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두 손을 사용하게 되면서 만져 볼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균형 잡기가 어려워도 우선은 자기가 호기심 있어하는 물건을 먼저 잡고 주저앉는다. 그리곤 만져보기도 하고 구부려 보기도 한다. -다행히 구강기가 어느 정도는 지나서 그런지 입으로 직행하는 일은 없어졌다.- 저렇게 탐색하는 활동이 한 가지에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 아주 짧은 집중력으로 곧 던져버리고 다른 것을 찾으러 다닌다. 이러면 집이 엉망이 되는데 문제는 자기가 던진 물건들을 밟고 다니다 넘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어디 부딪치고서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일상이 요즘이다. 또 전기밥솥에서 밥을 할 때라든지 날카로운 무언가가 담긴 카드나 전기선 등을 가지고 노는 경우도 있다. '사고는 찰나의 순간'이다. 아기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인해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아기가 잠들 즈음 나의 체력은 바닥이 나는데 그 때까 제일 위험한 것 같다.
걷기는 이런 위험적인 요소들도 있지만 결국 성장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걷기를 통해 하체의 힘이 좋아지고 뱃살이 빠지며 코어가 강해진다. 그렇게 신체는 일직선이 되고 다음엔 뛰어다닐 수 있다. 당장엔 걷는 것이 어려워 뒤뚱뒤뚱 하지만 분명 조만간 뛰어다니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부모는 지치더라도겠지만 그래도 아기가 더 성장만 해준다면 괜찮다. 함께 걷고 뛰는 날이 오면 알려줄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지니 말이다. 다만, 위험한 것에 대한 호기심은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고 하지만 굳이 위험한 것은 경험하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위험한 것은 교육으로도 얼마든지 알려 줄 수 있으니 재미있는 거 좋아하는 것에 더 큰 호기심을 가졌으면 한다. 아마 이건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아기는 어제보다 더 많이 걸으며 세상을 배워나가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뒤뚱뒤뚱 걷던 모습이나 넘어져 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성장해서 자기의 활동 반경을 넓히고 삶을 살아갈 것이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나중에 자신이 어떻게 걸어 다녔는지 볼 수 있도록 영상으로 많아 남겨놓고 응원하는 삶이겠지... 아기...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