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아기가 태어난 백일즈음 첫 설을 맞았다. 그리고 약 1년 뒤 아기는 두 번째 설을 보냈다. 이번 설은 1월 말이었고 정부에서 임시 공휴일까지 지정해 쉬는 날이 일주일 가량 되었다. 어차피 방학이라 임시 공휴일 지정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설에 본가에 갈까 몇 주전부터 고민을 했지만 결국 이번 설에도 안 내려가기로 했다. 눈이 많이 내린 것도 있지만 KTX 티켓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탄 열차 안에서 아기가 힘들어할 것도 알기에 명절이 끝난 뒤 조금 한가할 때 가기로 했다. 어머니 역시 몸이 힘드셔서 우리가 내려가면 오히려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손녀딸을 보면 무척이나 좋아하시겠지만 좋아하시는 것과 별개로 어머니께서 음식준비하랴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 하기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나도 편치 않으니 차라리 나중이 나을 것 같았다. 아내는 설에 가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내가 완강히 반대해버렸다. 결국 어머니께 전화드리고 다음에 내려간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신 처가에서 조금 오랫동안 지내기로 했다. 아기는 아직 외가와 친가에 대한 구분이 없기에 지금은 괜찮을 것 같은데 나중에 조금 더 커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친가 쪽이 멀기도 하고 자주 보지 못하니 어색한 점이 더 많을 것 같긴 하다. 나 역시 어릴 때 친가와 외가 모두 자주 못 안 갔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들 입장에선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자주 못 보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도 나중에 아빠의 가족들을 보면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기는 그러질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다행히 영상통화라는 것이 있기에 어색함이 조금은 덜 하지 않을까 싶다.- 외가와 친가 모두 가까워 자주 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한쪽이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친가에 못 가니 외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기에 육아가 편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아빠, 엄마, 아기 셋 이외에 다른 가족들을 더 볼 수 있고 가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기에 좋은 것 같다. 외가에 도착한 첫날 아내의 사촌 언니네 가족을 만나 귀여움을 받으며 5촌 언니의 장난감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할머니댁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들었는데 그날 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기가 일찍 자면 아내와 나는 소위 '육아퇴근'을 하고 집정리부터 청소까지 끝내고 다음 날 먹을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런 일들이 많이 줄어 편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버님, 어머님께서 그만큼 일이 늘어나 힘드시겠지만 손녀딸을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워하시기에 괜찮지 않을까 싶다. 갈 때마다 육아가 힘들다며 쉬게 해 주시는데 늘 죄송하고 감사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많이 내려 있었다. 하얀 눈을 보고 밖으로 외출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아내가 친구를 만날 일이 있어서 친구집으로 함께 갔는데 나는 함께 있기에 조금 어색해서 혼자 영화를 보고 나왔다. 예전에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서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는데 결혼 후, 아기가 태어난 뒤로는 더더욱 영화관에 갈 일이 없었기에 좋기도 했다. 조용한 영화관에서 무서운 영화를 한 편보고 아내와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엔 다 같이 명절에 먹을 만두를 빚었는데 20년 전 외국에 있을 때 해보고 처음 이었다. 명절도 지역마다 먹는 음식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만두를 만들 수 있는 것도 복인 것 같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경남지방 출신인 나는 어머니를 도와 만두보다 전을 더 많이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만두 빚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튜브에서 빚는 영상도 봤지만 실제로 해보니 어려웠다. 그래도 가족이 모여 함께 만두를 빚는 경험은 따뜻했고 좋았다. 아기는 아직 어려서 같이 해보진 못했지만 조금씩 시간이 자나면 함께 할 일이 더 많아지겠지... 설 전날 다 같이 전을 부친 것 이외에 대부분 음식을 어머니께서 준비햐셨는데 제일 고생이 많으셨다. 매번 명절마다 더 도와 드리고 싶은데 어머님 보시기엔 아직 부족함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사위가 고생하는 것 같아서 그런지 잘 시키지 않으셨다. 결혼 전 명절에 어머니를 도와드릴 땐 더 많은 것들도 했었지만 나 역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엔 조심스럽다. 우리 집에선 내 마음대로 했지만 여기선 그렇게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설 당일 전까지 눈은 더 내 리다 저녁에서야 멈췄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다행히 음력 1월 1일 해는 볼 수 있었다. 아기도 예쁜 옷을 입고 우리도 집 정리를 끝낸 뒤 친척분들을 맞았다. 오랜만에 보는 이모님네 가족들과 아기의 증조외할머니까지 모두 모이니 큰 집이 가득 찼다. 다 같이 음식 준비를 하다 세배를 드리고 '아기를 하나 더 낳거라'는 덕담과 세뱃돈도 받았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세뱃돈이었어다. 조카들에게 용돈을 줄 나이에 세뱃돈이라니... 아내의 동생도 시댁에 들렀다 도착해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 많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언젠가 싶었다. 우리 가족들은 식구가 많음에도 나름의 이유로 잘 모이지 않는다. 서로 마음 상한 일도 있고 어머니 건강도 안 좋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뭔가 다 같이 모일만한 구심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기가 나중에 이런 가족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빠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가 화목하고 행복하면 좋겠지만 아빠 가족에겐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 이해해줬으면 하는 점이다. 나름의 사정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을 해줘야 수긍을 하겠지.. 항상 좋은 것만 바라보며 살았으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있고 그 또한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다 또 행복한 날이 오면 예전의 그 아픈 시간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테니... 점심을 한참 먹고 해가 질 무렵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은 이번에도 집에서 먹으라며 음식을 잔뜩 싸주셨다. 우리 어머니도 예전에 내가 집에 내려갔다 올라올 때 잔뜩 싸주셨는데 그땐 그걸 가져오는 게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오면 되는 것을... 그래서 어머님께 더 감사한 명절인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아기도 커서 가족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빠는 표현이 서툴러도 아기는 아빠보다 더 표현을 잘하는 아기로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이 번 명절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