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화와 시리즈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그런 일을 겪게 된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럴 때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것뿐이지."(간달프)
올해는 꽤 혼란이 많았는데 늘 그렇듯 버거울 때마다 극장으로 갔다. 그렇게 23편을 '결정'했는데 꽤 괜찮은 '선택'이 많았다.
최고작인 <프랑켄슈타인>은 개인적으로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그간 영화 중 가장 좋았다. 특히 취향적으로도 <나이트메어 앨리>와 <판의미로>보다 우위였다.
<여행과 나날>은 전작 <새벽의 모든>에 이어 미야케 쇼 감독에 대한 팬심을 커지게 했다. 2009년 <태혜지>부터 지켜봤던 배우 심은경이 <신문기자>에 이어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서, 그가 고민의 실타래를 조금은 푼 건 같아 괜스레 뿌듯했다. 영화가 10년 전 김새벽과 이와세 료가 분한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꽤 비슷해서 더 마음이 동했을지도.
<주토피아 2>는 약 10년 전 1편의 결을 상당 부분 이어가면서도 메시지를 여전히 세련되게 전해서 마음에 들었다. <프레데터: 죽음의 땅>은 시리즈의 초심자가 보기에도 충분히 친절했고 <빅볼드뷰티풀>은 코고나다 감독 식의 낭만이 그득했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신작 <하우스오브다이너미이트>는 허트로커만 큼의 쫄깃함은 없었지만 예전보다 외교안보에서 보이는 게 많아 묘한 재미가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미안한데 나 쉬는 날이에요"라고 답하는 연구관과 '왜 확인이 안 되냐"고 쪼는 상급자를 보며 피식했다. 'sea of japan'이란 표현이 등장한 건 아쉬웠고.
<원배틀애프터어나더>와 <어쩔 수가 없다>는 각각 PTA와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가장 funny 한 작품이었고 <굿뉴스>에선 변성현과 설경구 케미가 여전히 돋보였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과 <발레리나>는 시리즈의 전작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단 한계에도 꽤 선방했다고 본다.
제임스건의 <슈퍼맨>은 예상대로 흥미로웠는데 <F1 더무비>는 <포드 v페라리>보다 훨씬 못한 작품이라고 소신 있게 말해본다. <페니키안 스킴>은 감독의 전작 <애스터로이드시티>보다 술술 잘 읽혀서 좋았다. <미션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이 시리즈가 왜 지속되는지를 재확인시켰다.
<브루탈리스트>에서 애드리언 브로디의 재기는 여전했고 <미키 17>에서 로버튼 패틴슨은 한 번 더 도약한 듯하다. 패딩턴은 여전히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샐리 호킨스의 부재는 생각보다 컸다. <캡틴아메리카 뉴월드>에서 해리슨포드는 많이 늙었더라. 인디애나 존스도 다시금 보내줬는데. <콘클라베>는 원작을 찾아 읽게 만들었다.
재개봉한 <반지의 제왕> 3부작 중 1.2편을 다시 봤는데 1편을 볼 때 극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반지원정대만큼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가 또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단 거다. 2001년 시리즈의 첫 개봉 뒤 25년 동안 각자의 반지를 짊어지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드라마는 간간이 봤는데 <김부장 이야기>를 보며 오랜만에 <미생>의 그 묘한 답답함과 오랜만에 조우했다. <서초동>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은중과 상연>은 <사랑의 이해> 만큼 답답하면서도 몰입감 있었는데 끝까지 보진 못했다.
<멜로무비>는 아쉬웠지만 가장 다정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말이 많았고 쓰고 싶은 글이 많았다. <우주메리미> <지금 거신 전화는> <나의 완벽한 비서>는 클리셰가 많았지만, 그 나름대로 또 좋았다. 꼭 취향이 점점 너그러워져서만은 아니겠지. 지금은 "<경도를 기다리며>" 주말 밤을 마무리하고 있다.
<여행과 나날>에서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 심은경의 질문에 츠츠미 신이치는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답했는데 올해 마주한 영화와 드라마가 내게 그랬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그리고 향한 것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