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병자리 생일에 부쳐

by AMPELAMN

"영화관은 사라지지 않는다. 생일축하"

영화 관람권과 함께 전해진 축하 메시지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영화의 위기'란 표현을 점점 더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사실 영화의 미래를 두고 "영화의 죽음"(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는 이제 모든 것의 형태를 띨 수 있고 모든 것의 소리를 낼 수 있다"(크리스토퍼 놀런 ) 등의 전망이 나온 게 벌써 10년 전 일인데 말이죠.


영화는 최애 취미였습니다. 극장에서 본 첫 영화가 기억상으론 1998년 <이집트 왕자>니까 꽤 오래됐죠.


'앨리스는 배급자의 이름이 올라가고 필름에 아무것도 찍히지 않아 시커먼 화면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영화에서 현실로 귀환해야 하는 아픔을 미루고자 함이었다'


알랭드 보통의 책 <우리는 사랑일까 >에서 이 문구를 보고 띵~ 한 적 있습니다. 깜깜한 극장에서 오롯이 영화와 나만 남은 시간이 참 좋았거든요.


그렇지만 항상 아껴주진 못했습니다. 때론 헛헛함을 달래려 극장에 들어갔고 있어 보이고 싶어 비문투성이 영화평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맘에 안 든다며, 안일하다며 작품에 들어간 공력까지 깎아내릴 때도 있었죠.


직장인이 되곤 극장 관람 재미가 많이 줄었습니다. 언제든 연락이 올 수 있단 강박관념에 통로와 가까운 맨 뒷자리를 찾게 됐고 실제로 관람을 종종 방해받기도 했습니다. 그사이 괜찮은 작품들을 많이 흘려보냈습니다. 예컨대 오펜하이머 같은.



그런데도 애정은 여전하더라고요. 지난해 괜찮은 작품이 꽤 많았던 게 이유 중 하나 일지도요. <어쩔 수가 없다>, <원배틀애프터어나더>, <페니키안스킴>, <리얼페인>, <콘클라베 > 여전히 뭉클하고 세련된 재개봉작 <더 폴>도 그랬고요. 전주, 무주, 부산 중 아무 데도 못 간 건 아쉽지만요.


그래서일까요. 아직까진 '영화관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낙관론에 마음이 더 갑니다. '연속촬영으로 기록한 필름상의 화상이 스크린에 투영된다'라는 뜻을 가졌지만 영화는 단순히 '투영', 즉 이미지들의 배열에만 그 존재 목적이 있진 않으니깐요.


<<<<좋은 영화,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만 보면 정말 행복할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걸작이 걸작일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범작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머지 시간들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범작들이 걸작을 위한 배경이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대부분은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범상해서 기억되지 않는 일상의 시간은 일종의 숨구멍 같다.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아직 의미가 되지 않은(어쩌면 영원히 의미가 되지 않아도 좋을) 순간들. #송경원 #별셋짜리영화를위한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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