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만 세 살이지만 숫자 5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누가 나이를 물으면 "다섯 살"이라고 대답한다.
본인이 내킬 때는 네 살이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지난 6월부터 만 나이가 시행되고 있지만 아이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 듯하다.
나이가 많아야 큰 형아가 되고, 태권도를 배울 수 있는데 그나마 네 살에서 세 살로 줄어든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인가 보다. 한 살이라도 나이를 줄이고 싶은 어른과는 입장이 많이 다른 세 살이다.
누나의 영향인 것일까. 아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제법 말이 빠른 편이었다.
요즘 누나와 역할놀이를 하면서 노는 모습을 보면 남매의 티키타카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기에 웃으면 안 된다.
그럼 놀이의 흐름을 깨기도 하고, 그럼 둘이서 잘 놀다가 갑자기 엄마에게 같이 놀자고 달려올 수 있기 때문에 혼자만의 평화로운 시간을 위해 나는 최대한 웃음을 참는다.
누나에 비하면 한참 작은 둘째 아이.
그래서 엄마인 내 눈에는 여전히 아기처럼 보이지만 때때로 아이는 뜻밖의 말로 나를 웃게 만든다.
오늘도 그랬다.
5교시를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온 첫째 아이의 간식을 챙겨주고, 같이 책을 읽으며 틈틈이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덧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겉옷을 챙겨 입고, 둘째 아이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엄마, 보고 싶었어!"라고 했다.
"엄마도 나 보고 싶었지?" 묻는 아이에게 "그럼~ 보고 싶었지."하고 대답했지만 내심 미안해졌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집안일을 하고 내 할 일을 하느라 아이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었는데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보고 싶었다는 자신의 마음을 전했으니 말이다.
나를 이렇게 보고 싶어 해 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 마음이 뭉클해졌다.
미안한 마음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손이랑 발부터 씻어주고는 아이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부터 대령했다.
요구르트를 다 먹고는 그림책을 읽어달라며 책꽂이에 있는 책을 골라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이미 누나와 책을 읽느라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아 열심히 읽어주었다.
몇 권이나 읽었을까. 문득 나를 빤히 보는 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 책 재미없어? 다른 책 읽을까?"
"아니, 엄마 귀여워서."
내가 평소 아이들에게 해주듯이 아이는 자신의 양손을 내 볼에 갖다 대며 말했다.
누가 누구한테 귀엽다고 하는 건지.
그럼에도 그 말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한참을 놀고, 씻고, 양치까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누우니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며 몸이 노곤해졌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는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양쪽에 누운 아이들은 서로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종알종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첫째 아이가 조용했다.
이제 둘째만 잠들면 나도 편안히 잘 수 있겠구나 싶어 작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누나 잠들었다. 이제 우리도 쉿 하고 자자."
"엄마, 혹시 새벽에 쉬하고 싶으면 나 깨워."
"응?"
"엄마 무섭잖아. 내가 같이 가줄게."
순간 너무 예뻐서 볼뽀뽀를 마구마구 해주고 싶었지만 그럼 아이의 잠이 다 달아날까 싶어 마음속으로만 해주었다.
아이의 말은 언젠가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의 입을 통해 다시 듣게 되니... 앞으로 예쁜 말을 더더 많이 해줘야겠구나 싶게 기분이 좋아졌다.
피곤해서 눕자마자 잠이 들 것 같았는데 아이의 말 덕분에 노트북을 켜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아이의 말에는 엄마를 웃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엄마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와 대화하는 일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때를 대비해서 많이 기록해 놔야겠다.
설마 나중에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하고 발뺌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