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구짜리 달걀 두 판이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 많은 달걀을 기한 내 어찌 다 먹나...' 걱정했는데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던 동생이 우리 집에 들렀고, 조카들과 놀아주고 가는 길에 달걀 한 판을 들려 보냈다.
국도 끓이고, 아침에 프라이도 해 먹었지만 여전히 달걀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달걀장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상 요리는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후다닥 해야 완성할 수 있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냉장고에 있는 달걀을 꺼내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더니 첫째 아이가 엄마를 돕겠다며 나섰다.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방과 후에 요리수업을 듣고, 새로운 메뉴 한 가지씩을 완성해 왔으니 아이는 요리에 제법 자신감이 붙은 상태.
마침 예전에 수업 시간에 달걀장을 만들어본 경험도 있었기에 아이는 레시피프린트물이 담긴 파일을 들고 와 내 옆에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달걀 삶는 물에 식초는 넣었는지, 소금은 넣었는지 묻고는 그렇다고 대답하니 흡족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는 재료였다.
"엄마, 당근이랑 피망 있어요? 양파도 있어야 하는데요?"
달걀장이니 달걀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피망이며 당근 등 여러 야채가 필요했다.
사러 나가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고, 운동을 하고 와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에 '그냥 있는 재료로만 만들어도 맛있을 거야.'라는 무한 긍정의 자세로 달걀을 삶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한쪽 방향으로 저어주라는 아이의 말대로 고분고분 조심조심 저어주고는 레시피대로 딱 7분을 끓이고 나서 불을 끄고, 찬물에 삶은 달걀을 식혀주었다.
달걀이 식는 동안 아이와 귤을 까먹으며, 맛있게 완성되면 둘째 어린이집 친구네도 나눠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달걀이 알맞게 식어 아이와 식탁에 나란히 앉아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매끈하게 달걀 껍데기를 제거하고 싶었건만 마음과는 달리 흰자가 껍질에 붙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아이 참, 엄마~"하며 그게 아니라는 듯 시범을 보이던 아이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달걀은 밀어 두고 다른 달걀 껍데기를 벗기던 아이는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자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달걀과 집 달걀이 다르다며 괜히 엄한 달걀을 타박 놓았다.
둘째 친구네 나눠주겠다는 생각은 허황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은 나는 최대한 달걀 형태만이라도 갖춰서 달걀장을 완성해야겠다고 목표를 바꿨다.
그도 그럴 것이 반으로 나뉜 달걀은 사이좋게 나와 아이 입속으로 쏙 들어가 벌써 4개째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총 12개의 달걀을 삶았는데 7개의 달걀만이 애매한 형태를 유지한 채, 1개의 달걀은 산산이 부서진 상태로 양념장 속에 퐁당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리수업 레시피에 따르면 여러 재료가 필요했지만 집에 있는 재료라고는 달걀, 양파, 간장, 설탕, 레몬즙, 통깨가 전부였다.
양파는 채 썰어 두었고, 간장에 물과 설탕을 적당량 섞어 맛을 보았다.
레시피대로 만들고 싶었지만 5인분인 달걀 20개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였기에 언제나 그랬듯 레시피를 기반으로 나의 감에 의존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아이도 맛을 보더니 괜찮다고 하여 과감하게 달걀에 양념장을 부어주고, 고루고루 양념이 잘 배도록 한 번씩 돌돌 돌려주었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동생이 손을 씻기도 전에 식탁으로 데려와 달걀장 맛을 보여준 아이는 동생이 맛있다고 하자 만족스러운 듯 씩 웃어 보였다.
있는 재료로만 대충 만든 달걀장은 저녁상에 올라 네 식구가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 있었다.
첫째 아이는 "엄마랑 내가 만든 거예요."라며 아빠에게 재잘재잘 이야기 했고, 둘째 아이는 2% 부족한 맛인데도 누나가 만든 달걀장 진짜 맛있다고 하면서 달걀을 2개나 먹었다.
음식은 재료도 맛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먹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아이와 요리하면서 오붓한 추억도 만들고, 가족들과 맛있게 잘 먹긴 했지만 그래도 다음번에는 재료도 잘 갖추고, 더 맛있게 달걀장 만들어서 둘째 친구네도 나눠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