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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다 Nov 15. 2023

가을아, 가지 마

만 2세 반 아이들의 귀여운 외침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등원해 만 2세 반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할 거고,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여러 활동을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아이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씩씩하게 잘 등원하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어린이집 가기 싫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딱히 문제도 이유없었다.

선생님께서도 등원하면 어린이집에서 울지 않고 잘 지낸다고 하니 그냥 가기 싫은 마음과 엄마한테 투정 부리고 싶은 아이의 마음으로 이해했다.

나도 교를 다녔고, 회사를 다녀봤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니까.




아이는 아침이 되면 "난 왜 어린이집에 가?"

물어본다.

"아빠는 회사를 가고, 누나도 학교에 가지? 그러니까 어린이집도 가는 거야."라고 설명해 주는 수밖에.

그것으론 대답이 충분하지 않은지 다시 묻는다.

"엄마는 집에 있잖아?"

그럼 옆에 있던 첫째 아이가 엄마 편을 들며 거들어준다.

"엄마가 집에서 얼마나 바쁜데. 빨래도 해야 하지, 설거지도 해야 하지, 요리도 해야 하지. 진짜 바쁘다고."

등원 준비를 하며 실랑이가 길어질까 봐 내심 걱정이 됐는데 누나의 말에 둘째는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날이 되면 아이의 질문은 반복된다.

그럼에도 킥보드와 곰젤리 하나면 웃으면서 등원하다행이다.




어린이집에서 종종 부모참여 수업이 진행된다.

11월에는 숲놀이를 하러 나갈 때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아 신청서를 냈다.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감기를 앓은 탓에 단풍을 보지도 못하고 가을을 보냈다는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하필 숲체험 가는 날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엄마와 같이 숲놀이를 간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둘째 아이는 아침밥도 잘 먹고, 어린이집에 빨리 가자며 손을 잡아끌었다.

특별활동 수업이나 행사가 있는 날에는 아이도 어린이집 가는 것이 기대가 되나 보다.




집 근처에 위치한 산은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는 위치긴 했지만 '아이들이 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웬걸, 아이들은 둘씩 짝 지어 손을 꼭 잡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꺄! 추워!"라고 소리치면서도 돌아가겠다고 하거나 안 가겠다고 하는 아이는 없었다.

평소 모자 쓰는 것을 싫어하는 둘째도 선생님께서 씌워주신 모자를 벗지 않고 잘 쓰고 있었다. 

선생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을 관련 동요도 부르며 아이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혹여 아이들이 넘어져 다치지는 않을까 손 잡아주고, 줄을 벗어나려는 아이들 조심시키면서 아이들 무슨 얘기를 하는지 가만히 들어보니 "손 잡아야지.", "나 저거 뭔지 알아." 등등 아이들은 재잘재잘 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바빴다.




도착한 곳에는 아이들의 숲놀이를 진행해 주실 나리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낙엽을 밞아보고, 소리도 들어보면서 가을을 느껴보고 나리선생님께서 나눠주신 컵에 도토리도 하나씩 주웠다.

나리선생님께서 슬쩍슬쩍 도토리를 뿌려주시는 것도 모르고, 도토리를 발견한 아이들은 마치 보물을 찾은 듯이 "여기 있다!"소리치며 좋아했다.

다람쥐와 청설모의 차이점도 배워보고, 도토리를 굴려 다람쥐, 청설모(모형) 입에 넣어주기도 하면서 한껏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이들.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아쉽게도 이번이 올해의 마지막 숲놀이라는 말씀에 아이들은 나리선생님께 배꼽 인사 드리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출발할 때보다 아이들의 걷는 속도가 느려지긴 지만 그래도 선생님께 안아달라는 소리 한번 하지 않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맨 앞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가시던 선생님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벌써 낙엽이 많이 떨어졌지? 나뭇가지에 잎이 별로 안 남아있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래요. 가을이 가는 게 너무 아쉽다. 우리 가을아, 가지 마! 볼까?"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가을아, 가지 마!" 외쳤다.

선생님은 "우리 친구들이 가지 말라고 해서 가을이 좀 천천히 갈 거야.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힘내자!" 하시며 아이들을 응원해 주셨다.

어찌나 귀여운지, 내가 가을이었으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아이들 덕분에 2023년의 가을에 특별한 추억이 생겼다.

가을이 되면 낙엽을 보다 문득 한껏 목소리를 높여 가을을 붙잡았던 아이들의 귀여운 외침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금세 자라겠지만 "가을아, 가지 마!" 외쳤던 순수한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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