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돌이를 그리며,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고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야속하기만 할 뿐이다. 당장의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그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수많은 후회를 남기기만 한다.
2002년 봄이 오기 전에 돌이가 왔다. 3개월밖에 안된 꼬맹이. 가족 모두가 동물을 사랑했다. 하지만 집에서 키우는 것만은 절대적으로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 그 반대가 너무나 완강해서 아버지와 함께 조건을 내걸었다.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 안에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면 그때는 어머니께서 허락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 3개월밖에 안된 돌이가 집에 온 첫날부터 배변 시트에 귀여운 짓을 한 것이다. 우리 가족이 되기 위해 생을 시작한 것 같이 그렇게 우리와 가족이 되었다.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존재의 부존재가 느껴질 때쯤에 그 존재의 무게를 실감하게 될 테지만, 늘 함께 했던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하리라 착각하며 살았던 나의 철없던 20대는 돌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학업 때문에, 수험 때문에 서울에서 살았던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던 것처럼, 돌의 시간 또한 나를 기다려 주진 않았다.
못 본 사이에 부쩍 자랐고, 못 본 사이에 부쩍 늙었다. 오랜만에 부산 집에 내려가면, 정말 오줌을 지리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동물 주제에 무슨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지. 그간의 시간이 미안하리 만큼 나를 반겨주었다. 못난 아들은 늘 돌이 핑계되며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곤 했다. 돌이가 말을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이 깊은 밤, 잠들기 아쉬운 밤, 서로가 좋은 말동무가 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최고의 친구였다. 그 누구보다 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이였다. 무심한 듯 보였지만 내 옆에 와서 턱을 개고 앉아 있을 때면 저놈이 내 마음을 진짜 아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영원할 것 같던 시간들도 짧아지고 있음을 몸소 느끼게 되는 시점이 어느 순간 찾아왔다. 밥 먹듯이 오르고 내리던 침대에서의 뜀박질을 점점 주저하기 시작했고, 뛰거나 걷다가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좀 더 잘 챙겨봤어야 했는데, 그동안의 무심했던 순간들이 결국 마지막에 큰 후회로 남을지 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인간의 시간보다 강아지의 시간은 몇 배나 빠르다. 아마 그 시간이 짧아질수록 선명하게 실감이 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몇 걸음 걷는 것조차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그 시간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내겐 안 일어날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좀 더 오래오래 그 시간들이 나를 기다려 줄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살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어쩌면 돌이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을 텐데, 뭣도 모르면서 나는 오래오래 살자고 시답지 않은 공수표만 날릴 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줘 돌이야. 행님이 말년에 호강시켜 줄테니까. 조금만 견뎌. 이따위 말들이 얼마나 공허한 후회로 남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6개월 전, 갑자기 돌이가 쓰러졌다. 허리가 휘어서 말려 들었다. 알고 보니 치주염, 쿠싱 증후군, 뇌하수체 이상으로 인한 약간의 치매 증상, 허리디스크까지 다양하게 앓고 있었다. 한순간에 뚝딱 하고 발생한 병들은 아니었을 텐데, 그저 좋다고 사랑한다고 쓰다듬어 주기만 했지, 정작 돌이의 아픈 곳은 쓰다듬어 주지 못했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과 숱하게 많은 후회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약빨로 돌이가 잘 버텨주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의 여름은 돌이에겐 너무나 힘겨운 시간이었다. 두 번의 디스크로 인한 강직 증세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한 번의 고비가 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난 뒤에 일게 된 이야기지만, 당시 내원했던 병원의 수의사 선생님께서 한차례 고비가 있었음을 한참 후에야 알려 주셨다. 몰랐다. 돌이의 시간이 그렇게 짧아지고 있었는지.
두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갑자기 돌이의 뒷다리가 풀리더니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일어서지 못했다. 울부짖었다. 자신이 걸을 수 없음에 놀란 모양이다. 걷고 싶을 만큼 걸으라고 뒷다리를 붙잡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돌이의 한걸음 한걸음을 도왔다. 저 말 못 하는 녀석이 얼마나 걷고 뛰고 싶을까?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옛날에는 엘리베이터 움직이는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며 세상 떠나갈 듯 짖어대던 녀석이었지만, 점점 나이를 먹고 노령견의 범주에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동안 돌이의 목소리를 까먹을 정도로 조용했는데, 얼마나 아팠고 얼마나 놀랐으면 10초에 한 번씩은 짖어댔고, 목이 쉬어버려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천번 했다. 하루라도 더 건강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을 몇 년이라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돌이의 디스크 증세는 점점 심해졌고, 그동안 간헐적으로 찾아왔던 간질 증세도 잦아졌다. 전정계 이상으로 안구 흔들림과 써클링도 심해졌다. 이 모든 증상들이 한 번에 찾아왔다. 병원에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수술은커녕 링거를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쇄약 해졌다. 평소 7kg 정도를 유지했던 돌이의 몸무게는 4kg으로 줄었다. 사람으로 치면 30kg가량 빠진 것이라고 했다. 주사기로 어쩔 수 없이 강제 주입하는 죽과 처방받은 약으로 버텼다. 돌이의 시간이 눈에 보일만큼 짧아지고 있었다.
자정을 지나 새벽을 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순간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봐 걱정이 되어 돌이 옆에서 새벽을 지킨지도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내성이 생겼는지 처방받은 약이 잘 듣지 않았다. 몇십 분을 씨름하며 겨우 죽과 약을 먹여도 다시 전부 쏟아낼 뿐이었다. 1분간 미친 듯이 요동치며 발작을 했고, 5분가량 온몸이 뻣뻣해지는 강직이 있었다. 급한 대로 병원에 연락을 취했으나, 돌이 현재 상태로 봐서는 응급실을 간다고 해도 달리 처방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까지만 잘 버티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돌이는 그렇게 총 11번의 발작과 강직을 온몸으로 버티며 새벽을 견뎠다. 돌이를 끌어안고 품 안에서 진정시키기를 반복했다. 대소변을 계속 받아냈지만, 수천번 수만 번이라도 받아낼 테니 버티기만 바랐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바로 평소에 다니던 병원을 찾았다. 발작을 멈추는 약 처방을 받았다. 돌이 상태를 보시더니 오늘이 정말 큰 고비일 것 같다고 하셨다. 코마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도 오늘만 잘 넘기면 그래도 좀 더 살아갈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처방받은 약으로 돌이는 안정을 되찾았다. 이렇게 자세히 적는 이유는 모두들 짐작했겠지만 돌이의 마지막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아픔에 울부짖는 모습을 다시 기억에서 꺼내다 보면 나 또한 생채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프다. 혹시 생채기도 반복되다 보면 흉터라도 또렷하게 남으려나? 희미해지고 조각난 기억의 파편이 떠돌아다니는 것은 싫어 기어코 기억에서 꺼내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오늘이 고비라던 선생님의 말씀에 덜컥 겁이나 약을 두 봉지씩 먹였다. 그 외에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온전히 돌이가 스스로 버텨내고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생의 모든 공을 그 작고 여윈 아이에게 돌려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다. 말이라도 할 줄 안다면 남은 생의 시간을 정리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자신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돌이와 눈을 맞추고 누웠다. 눈을 뜨고는 있지만 나를 알아보는 것 같진 않았다.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18년의 시간을 되감아 봤다. 더 많이 찍어 놓을걸,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걸. 조각난 기억 사이에 텅 빈 지난 시간들이 야속했다. 간밤에 이어진 11번의 발작은 돌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일이었던 것 같다. 결국 돌이는 선생님의 우려처럼 그날 새벽을 끝내 넘기지 못했다. 항문에서 피를 쏟으며 용을 쓰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졌다. 품에 안았다. 그러나 차마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이제 편히 가라'라고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숨 쉬라고, 눈 뜨라고, 힘내라고' 소리 질렀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까지 이기적이었다.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삶의 끝은 결국 한 줌의 재에 불과하거늘, 영원을 살 것처럼 순간을 허비했다. 함께 할 수 있었지만 함께하지 않았던 순간의 날들이 날카롭게 날을 세워 심장을 푹푹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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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장 젊은 날의 순간들을 간직한 채 떠난 돌이야. 넌 나의 청춘이었다. 넌 나의 꿈이었다. 꿈같은 18년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 돌이야. 꿈에서 깰 시간이 다가왔지만, 아직도 난 너를 꿈속에서 찾아 헤맨다. 잘 지내고 있지? 산책을 자주 시켜줬어야 했는데, 밖에 나서는 게 어색해서 행여나 가는 길을 못 찾고 헤매는 건 아니지? 행님이 네 몫까지 열심히 살다가 갈 테니까, 훗날 네게로 가는 날 나 잊지 말고 꼭 나와서 반겨주라. 사랑한다. 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