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가속 방지턱을 무시하고 달렸던 같다. 열심히 달리는데 급급해서 여러 곳에서 주는 정지 신호를 못 본 척 했다. '난 아직 숨 돌릴 때가 아니라고! 뒤돌아 볼 때가 아니라고!' 나를 채찍질하기에 급급했다.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데 2주 전부터 오른쪽 날개뼈와 척추 사이의 근육이 뻐근한 것 아닌가. 잠을 잘못 잤겠거니 하고 또 무시했다. 그러다가 결국 탈이 나고야 말았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던 것 같다. 허리에 번개가 쳤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이런 상황에 당장 도움을 청할 곳이 119 밖에 없다니 참으로 암담했다. 누운 상태에서 당장 일어날 수 없었지만, 옴직이지 않으면 통증은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쓰러질 때 휴대폰은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정말 천운이었다. 열심히 검색을 했더니 당장 쓰러진 상태에서라도 장요근을 마사지하면 일시적으로도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멍이 들 정도록 열심히 마사지를 했다.
한두 시간쯤 흘렀을까? 그제야 다행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쩔뚝거리며 걸어서 근처 병원으로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집 앞 5분 거리에 종합병원이 있었는데, 가는 길이 30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가는 길에 3번은 길바닥에 철퍼덕하고 주저앉았다. 순간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부터, 바쁜 걸음을 옮기는 직장인, 뒷짐을 지고 걷는 어르신의 모습까지.. 쉽게 지나칠법한 모습들이 얼마나 눈에 남고 얼마나 부럽던지. 와..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떼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구나!
병원 진료를 받았고, MRI를 찍었는데 3번 4번 5번 척추가 다 안 좋았다. 결국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했더니 결국에는 사고가 난 것이다. 그나마 초기였고 디스크가 터진 것이 아니라 약간 눌러진 상태에서 탈이 난 것이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재발 방지와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의 바른 자세 유지와 꾸준한 운동을 통한 코어 강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문득 얼마 전에 알쓸인잡을 보다가 심채경 천문학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중력이 강할 때는 궤도가 일정하지만, 중력이 약해지면 궤도가 뒤틀리거나 섭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박사님은 행복하려면 내 안에 중력이 약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내 상황에 대입해도 걸맞은 말이 아닌가 싶었다. 내 안의 중심이 잘 잡혀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고, 약했고, 흔들렸고, 결국 그러다 쓰러진 것이다.
멈춰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닐 때는 이미 늦은 때가 많다. 되돌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되돌릴 수 없다면 그것을 느낀 순간부터라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당연함에 후회를 덜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모든 경험은 궤적을 남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앞만 보고 갈 때는 올바른 궤적을 남기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때는 반드시 멈춰서 내가 남긴 궤적을 뒤돌아 살펴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궤도를 이탈해 섭동이 발생해도 모를 일이다. 지금이라도 멈추고 뒤돌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아직은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기에 열심히 내 안의 중력을 강화해야 하겠고, 어쩌면 그 첫걸음이 한 템포 쉬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