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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Nov 17. 2020

공연장에서 좋은 자리 차지하는 법

공연장 앞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시작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사람들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인기가 좋으니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공연도 어찌어찌 표를 구했지만 공연장에서 제일 안 좋은 좌석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표를 살 수 있는지, 매번 티켓 구매 전쟁을 벌이고 나면 패잔병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 공연 표를 사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만 명 넘게 수용 가능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 Madison Square Garden의 티켓 이틀 치가 오분만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내 딴에는 빠르게 예매한다고 인터넷 브라우저 창을 다섯 개나 열어두고 땀나도록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댔건만, 짧은 구매 사이트 접속 전쟁 끝에 손에 넣은 것은 공연장 삼층 맨 뒷줄이었다. 틈만 나면 공연 보러 다니는 게 취미였던 나는 이미 두 번이나 본 밴드의 콘서트라 그나마 괜찮았지만, 아내는 처음이었기에 좋은 자리를 예매하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인파 속에서 떠밀리듯 입장하고 있었다. 혼잡한 입구로 떠밀려 들어가자마자 에스컬레이터에 강제로 태워져 삼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에 선 채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니 대체 삼층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 것일까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 곳은 전문 콘서트홀이 아니라 농구 경기장이니 삼층 콘서트 관객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였다.


예상대로 객석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층 한편에 자리한 무대가 두부김치 한 조각만 한 크기로 겨우 보이고 있었다. 두부김치 위에는 검은깨도 뿌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분주히 공연을 준비하는 관계자들이었다. 무대보다 천장의 이음새가 더 잘 보이는 자리를 파는 행위는 사기죄에 해당하는 것 아닌지 약이 올랐다.


입구에 서서 경치를 감상하는 사이 좌석을 안내하는 스탭이 다가왔다. 그녀는 우리의 표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구석의 맨 뒷좌석을 가리켰다. 그래, 알아. 우리도 안다고. 툴툴대면서 맨 뒷줄로 걸어 들어가는데 그녀가 멀찌감치에서 우리를 부르더니 손가락으로 커브를 그렸다. 설마, 이 뒤를 가리키는 건가. 공연장 맨 뒷줄 뒤에는 공연장 바깥 복도로 나가는 출구가 있었고, 그 옆에는 핫도그와 맥주는 파는 너저분한 간이매점이 있었다.


여기는 자리가 없다고 말하려던 찰나 아내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놀랍게도 간이매점 앞에는 기다란 바 테이블이 있었고, 그곳에는 빨간색 비닐 쿠션만 있는 높은 의자, 다시 말해 등받이 없는 바 스툴 bar stool이 여덟 개 정도 나란히 줄지어 바닥에 박혀 있었다. 엉덩이가 닿는 곳에는 ‘ZZ206’라고 쓰여있는 작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고개를 들자 좌석을 안내하던 그녀가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지금 웃음이 나오냐’라는 말이 작게 튀어나왔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좌석에서 공연을 본 경험은 내 기억 속에는 없었다. 옆자리 빈 좌석들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와 불운을 함께 나눌 나머지 여섯 명의 동료들이 궁금해졌다. 몇 분 뒤 주변의 엉터리 좌석에도 관객들이 하나 둘 착석하기 시작했다. 모두 우리 같은 젊은 커플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는 모습에 쓴웃음이 나왔다.


오프닝 밴드가 나와서 흥을 돋우기 시작했지만 유난히 우리 주변은 조용했다. 얼굴 표정만 보면 전쟁에서 잡힌 포로들이 갤리선의 노를 젓기 위해 나란히 앉은 모양새였다. 다들 바에서 맥주를 시켜 말없이 들이키고 있는데, 어디선가 제복을 입고 무전기를 든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맨 끝에 앉은 커플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복 입은 남자의 말을 들은 커플은 잠시 망설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나섰다.


복도 밖으로 사라져 한참을 보이지 않던 그 남자는 한참 뒤 다시 나타나 우리 옆 커플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싶었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옆에 있는 커플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남자를 따라 일어섰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커플들을 하나씩 데리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이 우리 차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긴 기다림 끝에 돌아온 제복의 남자는 예상대로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왜 모두들 그런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는지 알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다른 좌석으로 옮길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일층에 자리가 있긴 한데, 여기보다 더 나은 자리라는 보장은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무대가 두부 한 조각 만하게 보이는 위치였지만 그래도 무대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위치였기에 나는 약간 망설였다. 아까 다른 커플들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가 납득이 갔다.


아내가 일층으로 가겠다며 급발진을 했다. 하긴 여기보다 더 안 좋을 수 있겠나 싶은 마음에 나는 군소리 없이 몸을 일으켰다. 제복을 입은 남자는 웃으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우리를 안심이라도 시키듯 한마디 덧붙였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일층 자리가 더 좋아 보였어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간 다음 쉴 새 없이 오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공연장 출입구는 다른 공연장 출입구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새로운 좌석으로 안내를 받은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과연 일층 좌석이긴 했는데 상상도 못 한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무대의 오른쪽 측면과 맞닿아 있는 맨 앞 줄이었다. 눈 앞의 난간을 뛰어넘으면 무대로 달려 나갈 수 있는 위치였다.


우리가 좌석으로 걸어 내려가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괴성을 지르며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이끌려 먼저 삼층 좌석을 떠났던 커플들이 만면에 함박웃음을 띤 채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판단이 끝난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 무리에 합류했다.


몇 분 뒤 우리 뒤에 남겨져 있던 마지막 커플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함께 ‘끼야아악’ 하는 괴성을 지르며 새로 온 커플을 맞이했다. 토끼굴에 빠진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마지막 커플도 이내 ‘꺄오오오’ 하며 우리에게 뛰어왔다. 우리는 다 같이 얼싸안고 월드컵 결승골이라도 넣은 듯 정신없이 뛰었다. 문득 우리에게 자리를 안내해 준 남자에게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반짝반짝”


머지 않아 조명이 꺼지고 대형 LED 패널로 만든 피라미드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피라미드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매튜 벨라미 Matthew Bellamy를 알아본 우리는 다 함께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가 우리를 바라보며 짧게 미소 짓더니 이내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다보면 가끔은 삼층 핫도그 스탠드 옆에 서 있다가 VIP석에 초대받는 날도 있는 법인가 보다. 어쩌다 이런 행운이 우리에게 왔는지 궁금했지만 끝내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제복을 입은 의문의 남자는 어딘가로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핫도그 테이블에 앉아있던 우리를 불쌍히 여긴 기획사의 배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면 왜 애당초 그 좌석을 팔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뒤로 칠 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공연 티켓을 예매할 때면 혹시 공연장에 핫도그 스탠드가 있는지 살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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