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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Nov 21. 2020

이번 블랙프라이데이는 건너뛰련다

아직도 옷장 속에 있는 나의 불쌍한 새 재킷을 위하여

몇 년 전 블랙프라이데이 Black Friday에 집 앞의 쇼핑몰 구경을 나갔던 아내는 손에 플레이스테이션 4 게임기를 든 채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히 잠깐 나가서 구경만 하기로 하고 나갔는데, 플레이스테이션 반값 할인을 보더니 눈이 뒤집혀 게임기를 산 것이다. 평소 게임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그녀였기에 블랙프라이데이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평소 나는 스스로를 쇼핑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자주 하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지금까지 블랙프라이데이에 눈이 뒤집혀 사모은 옷장 속 옷가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일종의 자기기만이라고 느껴진다. 입지도 않을 옷을 마구 쓸어 담고 죄책감 감지 회로를 차단하기 위한 자기기만 말이다. 실제로 이때 산 많은 옷들을 즐겨 입기도 하지만, 전혀 입지 않는 옷들도 종종 덩달아 구매하기 때문에 한 달 정도 후에는 후회가 몰려오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5년 이후로는 사이버 먼데이 Cyber Monday라는 요망한 기념일도 등장해 나와 같은 자기 기만형 쇼핑 쟁이들은 따뜻한 이불속에서 더욱 쉽고 편리한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쇼핑을 장려하는 행사답게 할인의 방식도 몹시 기발한 경우가 많은데, 가령 밤 열두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두 시간만 진행하는 초단기 한정 세일이 좋은 예이다. 갑자기 시작되어 갑자기 끝나는 관계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바구니에 물건을 마구잡이로 욱여넣는 분열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뜻깊은 행사이다. 대부분의 경우 구매 버튼을 누르는 순간 느껴지는 미약한 죄책감 혹은 불편한 감정을 모른척하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사이버 먼데이는 마무리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 먼데이가 추수 감사절 행사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한 가지 행사가 더 있다. 기빙 튜즈데이 Giving Tuesday가 바로 그 마지막 행사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기빙 튜즈데이는 ‘나누어 주는 화요일’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부의 날이다. 실제로는 추수 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 5일간의 기간을 기빙 튜즈데이라고 부른다.


기빙 튜즈데이 홍보 배너 givingtuesday.org


미국에서는 자선단체들은 물론 소위 말하는 ‘힙한’ 회사들, 혹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필요로 하는 회사들을 중심으로 점점 참여 업체가 늘고 있다. 코카콜라, 페이스북, 나이키 등의 초대형 기업부터 파타고니아 Patagonia, 탐스 Toms Shoes 등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회사들까지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딱히 ‘힙한’ 회사는 아니지만 내가 근무하는 회사도 이용자들이 일정 금액을 해당 기간 동안 기부하면 그만큼의 금액을 회사가 추가로 기부하는 행사를 매년 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외출을 자제한 덕분에 올해 초에 산 재킷은 아직도 새것처럼 반질반질해 보인다. 십 년 만에 산 재킷 중에 가장 비싼 재킷이라 더욱 속이 쓰리다. 올 겨울에는 부디 이 재킷을 입을 기회가 더 있길 바라면서 이번 블랙프라이데이는 조용히 보낼까 생각 중이다. 딱히 코카콜라와 페이스북의 장단에 맞춰주고 싶진 않지만, 화요일이 되면 블랙프라이데이에 절약한 예산으로 아픈 사람들을 위해 약값이라도 기부해볼까 한다.





* Cover photo by Joseph Gonzal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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