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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기버기 Jul 12. 2019

역사의 사실은 하나가 아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혜안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



독일의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가 한 말이다. 역사는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있다. 그리고 인문학은 답이 없는 학문이고 생각하는 학문이다. 비스마르크가 했던 저 말은 역사가 사실임을 증명해주진 않지만 거기서 깨닫고 합리적 추론을 통해 배워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절대적인 사실만을 배우는 것이라 착각한다. 


역사학도에게는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 카 (Edward Hallett Ted Carr 1892~ 1982)의 가장 유명한 격언인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해보고 어떻게 해석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시대상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개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관점, 여러 해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인문학적인 학문으로 보인다.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맹목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편협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 역사의 사실은 하나일 수 없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사실로 알려지기 원하는 승리자들이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혹은 그들이 후세에 남기도 싶어 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역사에 남겨둔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그것들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철저히 고증하고 당대의 다른 문화권의 기록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역사학자라는 엘리트들이 만든 하나의 편집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E.H 카는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된다.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이며 그 순서나 전후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바로 역사가가 결정할 일이다."라고 했다. 편집자, 즉 역사가가 어떻게 편집해서 역사로서 묶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그들의 관점은 어떻게 보면 실제 사실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건은 하나라는 단수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기록되는 역사는 다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 속성이다. 그렇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이 사실인가라고 하는 것은 역사에서는 더욱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 역사는 영혼 불변하지 않다


 역사의 기록은 언제 어디서 쓰였으냐가 중요하기도 하다. 역사가라는 인물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국가, 언어, 사상이 녹아있다. 그러므로 이 인물 역시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에 이미 역사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는 객관적이라 판단할지라도 시대상에 쏠려있을 수밖에 없다. 중세시대에의 유럽에는 신중심 사상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역사를 신 중심으로 편협된 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E.H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 즉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다. 그리고 그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다."라고 한다.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의 규범 속에 만들어진 이념에 바탕을 둔 생각과 생각의 대화란 것이다. 

스위스의 역사가 부르크하르트는 역사의 본질은 변화라고 일축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고 또한 현재도 과거의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또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건 바로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역사의 기본적인 속성 자체가 다양성이다

그러므로 타인이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비난하거나 동조시키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획일적인 생각을 갖는 게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하나의 공통분모로서의 역사를 합의해가는 과정이 곧 역사학일 것이다. 승자들은 역사를 자신에게 이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 기록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는데 이러한 행동은 어느 시대에나 계속되어 왔고 어느 관점이 맞고 그르냐를 논쟁하는 것, 이역시도 그 시대에 일어나는 산물이라는 것이다. 아마 현재에 논점이 되는 사상과 관점이 미래의 사람들이 현재를 바라볼 때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또 그 시대에 맞는 관점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관점이 다르다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무분별하게 억압하고 삭제하는 획일화된 행동은 무의미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미래만을 계속 만들어낼 뿐이다. 


우리가 모든 역사의 기록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치 정치에서 모든 문제를 국민투표로 할 수 없어서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처럼 몇몇 역사책에서 정보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정치 주권을 맡긴 후에도 끊임없이 감시하고 관심을 가져야 국민성과 정치의 발전이 있듯이 역사 문제에서도 비판적이고 다분법적인 시각으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그 속에서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다면 미래에 위태롭지 않을 통찰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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