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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기버기 Jan 27. 2019

변증법과 포스트잇 독서법



과거 기원전 5세기경부터 대화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방식이 있었다. 현대까지도 자주 사용되고는 하는데 변증법이라고 한다. 변증법은 정, 반, 합으로 구성되는데 찬성의 논리(정), 그것의 반대의 논리(반)이 합쳐져 좀 더 나은 결과(합)이 나온다는 방식이다.




이미지출처: https://www.get-licensed.co.uk/get-daily/importance-effective-communication


 

대화란 무엇인가?


큰 범주에서는 그저 언어를 주고받는 것이 대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광의의 대화가 아닌 협의의 대화를 말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화는 대상이 생각하고 있는 세계관, 가치관, 보편적이라 믿고 있는 지식 등을 서로 주고받으며 더욱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 있는 행위라고 보고 있다. 토론, 혹은 변증법과 비슷하지만 꼭 쌍방향적인 소통이 아니라 일방향적인 소통도 포함하는 데서 그 차이가 있다. 앞으로 언급될 ‘대화’라고 말하는 것들은 이런 정의를 내포한 것이라고 생각하라. 소통과 대화에는 다양한 피대상자와 이루어질 수 있다. 대부분은 내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변인들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진정한 대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선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첫째로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변증법에서 정과 반이 이루어지려면 논리적으로 이루어진 나의 생각이 필요하다. 이것은 철학 하는 것이고 창조적이 활동이다. 



주체적 사고와 동사로서의 철학              

한국 사회에서 사색과 철학의 위치는 현저히 낮다고 볼 수 있다. 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명한 철...



둘째로는 경청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말을 들어주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상대가 동의를 하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자기가 공격받았다고 생각하면서 화를 낸다. 듣고 있지 않는데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상대가 말을 하면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지만 공감이 아닌 그의 말을 분석하고 어떻게 문제점을 해결한 것인가에 신경을 쓴다. 이미 머릿속은 내가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고, 상대의 말을 끊고 내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상대의 말에 적극적인 대응이 아니라 적극적인 몰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도적인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틀릴 말을 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주제가 있더라도 말을 마치게 해주어야 한다. 중간중간 호응을 해주어도 좋고 스스로 입을 틀어막아도 좋다. 직접 해보면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의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장면의 대상이 대부분 또래의 친구나 허울 없이 지내는 사람을 떠올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화와 경청을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조건이고 이것이 세 번째 능력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 계급, 지위의 격차를 극복하고 경청과 대화가 잘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은 존댓말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존댓말은 존비어와 친소어로 나눌 수 있다. 존비어는 존칭어와 비칭어, 즉 상하관계에서 쓰일 수 있는 것이고, 친소어는 친함과 그렇지 않은 대상과의 거리감에서 쓰이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외국의 존댓말은 존비어보다는 친소어에 가깝다.(가장 자주 쓰는 you도 존댓말이다.) 한국만큼 존비어가 발달한 나라는 없다. 이런 존댓말의 문화가 우리의 세대 간 계급 간 소통 불화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음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왜 이런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았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유교사상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항렬이나 신분 간의 예의와 존대를 강조했지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나이 체계에서의 예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까지도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벗이라 부르며 동등한 관계로 사귀었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기존 기득권층들이 항렬과 신분에서의 권위가 떨어지자 나이 체계를 앞세운 것이라 생각한다. 2500년 전 공자가 말했던 인의예지의 개념을 지금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시스템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유가사상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나이에서 오는 권위의식을 버려야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앞서 필자가 말한 대화는 쌍방향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방향적인 소통도 대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방향적인 대화에는 책, 강연, 영화, 그림을 비롯한 예술 전반과 대부분의 정보를 얻는 거의 모든 활동이 일방향적인 대화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런 일방향정인 정보를 변증법적인 대화로 이끌어내는 방법은 나만의 해석을 하는 것이다. 동양 고전의 꽃이라 불리는 논어나 대학 같은 책은 수천 년에 걸쳐 학자들이 해설서와 주석을 달며 발전해왔다. 그중에는 고전을 해석한 고전이라며 극찬을 받는 작품들도 더러 있다. 우리도 정보를 접했을 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견해를 가지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책을 읽을 때 포스트잇을 붙인다. 각 페이지마다 내가 동의하는 부분, 비판하는 부분, 혹은 그 정보로 인해 떠오른 생각 등을 적어서 붙여놓고 작가가 말하려는 것을 추측한다. 언젠가 같은 책을 본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작가를 만날 수도 있다면 그것들은 합을 도출해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정독보다는 다독이 좋은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읽어나간 책들은 어느새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포스트잇 독서법을 통한 정독을 한다면 가끔 책을 펼쳐보았을 때 포스트잇만 봐도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되새겨진다. 


이런 방법을 알아도 정반합이 도출되는 의미 있는 대화는 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말했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처럼 내가 바뀌고 내 가정이 바뀌고, 내 이웃이 바뀌다 보면 나라와 세계가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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