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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기버기 Jan 27. 2019

계층간의 소통과 꼰대


 최근 젊은이들에게 다시 ‘꼰대’라는 말이 유행하고있다. 과거에도 늙은이란 의미로써 선생님이나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들은 비하하는 말로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꼰대’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얘기한다고 한다. 상당히 구체적이고 적대적이게 바뀌었다. 지금 사회가 얼마나 세대간의 불화가 깊어졌는지 알 수 있다.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악폐습조차도 강요하기도 하지만 분명 좋은 정통을 전해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이를 못 받아들이는 이유는 나이만 많을 뿐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 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는 존경을 받고 존댓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 본질적으로 이렇게 극대화된 세대불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 젊은이들도 어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 시한편을 보라.



58년 개띠 - 오은 시인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뒤를 볼 겨를이 없었어요

누가 쫓아오고 있는 것처럼

그림자를 볼 여유가 없었어요

뒷바라지하느라 이렇게 늙었어요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누가 달아나고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니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위를 떠받들며 살아왔어요

아래를 보살피며 살아왔어요

위아래가 있는 삶이었어요

(중략)

앞을 보면 개떼처럼 몰려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뒤에 있어서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

(중략)

뒤를 돌아다보니 거울이 있었어요

내가 있었어요

잊고 있었던 얼굴에는 물굽이가 가득했어요

어디로 흘러도 이상할 게 없는 표정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있다. 그들은 현대의 경제를 이끌고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들이 받은 교육과 사상은 지금까지도 은연중에 녹아들어있다. 이 시는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의 대표격인 58년생에 대한 시이다. 시에서 처럼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많은 인원 수 탓이지 그 당시의 정치와 사회풍조 때문인지 어딜가도 줄을 서고 경쟁을 해야 했다. 이런 남다른 생존경쟁의 경험을 자식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 당시의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개발도상국이었고 엄청난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대개 취직만하면 회사들은 금방 팽창하고 성장했고 높은 직급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한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어린시절 단칸방에서 끼니를 걱정하던 때와 비교해 지금은 성공한 삶은 살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부분 그 때의 시기를 그리워한다.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어떤가. 은퇴를 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가족에게는 외면받고있다. 열심히 살았고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소외당하고 대화까지 단절되어 자살충동까지 느낀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내 헌신과 노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실감과 회의감, 그리고 미래의 대한 불안감때문에 가장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왜 이런 취급을 받고있는 것일까. 사실 앞에서 말한 ‘꼰대’의 계층은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민들을 우민화 시키기위해 인문학과 철학같은 교육은 철저히 배제시켰다. 광복 후 미국이 한국의 정치에 개입을 하는데, 아마 미국은 35년의 식민통치를 받은 국민들을 갑자기 자주권을 갖고 통치를 하라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존의 기득권층을 인정해준다. 그리고 그 기득권층은 대부분 친일파였다. 그들에게 친일파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내몰아 구속하고 핍박했다. 조선교육위원회를 세우지만 그 수뇌부 역시 친일파나 친미파였고 국민들은 점점 우민화되어가는 교육을 받는다. 그 후로도 군부독재가 들어오면서 주체적인 생각을 할줄아는 국민보다는 정부의 의도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국민들이 되는데 58년 개띠라는 시에 잘 녹아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인문학과 철학은 비효율적이고 고상한척하는 학문이라고 교육받아왔다. 그래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도 서툴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사회적소외감과 가족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대화의 단절이다.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일반화 시키는 것이고,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위의식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른들은 대화를 할 때 질문위주로 대화를 하되 이끌어가려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이제는 은퇴를 하는 시기이다.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과 생각에 집중해야한다. 어린 사람한테도 배울점은 많다. 내 눈에 한참 모자라보이는 청년들은 생각보다 뛰어나고 유능하다. 과거와 방법이 다를 뿐. 시대는 변하고 있고 내가 알던 진리는 달라지기도 한다. 권위의식은 버리고 동등한 위치에서 가족들을 존중해주며 다음 세대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다보면 어느새 서로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는 저녁식사 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꼰대’라는 말은 대화를 하고싶은 젊은이들의 아우성일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부보가되었든 직장상사가 되었든 그 사람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좋다. 젊은이들은 지금 그 사람이 아닌 지금까지의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공식적인 자리뿐 아니라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남이 나를 비난한다고 느끼면 상당히 수세적으로 바뀌고 화를 낸다.  어른들도 똑같다.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들의 인생을 비난하는 것과 다르지않다. 그것이 나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상처가 크겠는가? 이해하려하지말고 헤아려주어라. 그것은 그들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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