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친 부분을 어떻게 푼다고?”
“자로.”
“아닌데.”
“줄자로!”
색종이를 이어 붙여 겹친 부분을 구하라는 문제가 어렵다며 수학 문제집을 갖고 왔다.
1번 종이의 길이가 644cm이고 2번 종이의 길이가 298cm이야. 이걸 겹치게 이어 붙였더니 전체길이가 898cm가 되었대. 그럼 겹쳐진 부분의 길이는 몇일까?
1차로 식을 설명하고, 2차로는 직접 종이까지 찢어서 보여주었다. 아이가 스스로 실마리를 찾길 바라는 마음에 식을 대신 세워주지는 않았다. 그 엉뚱한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게 왜 이해가 안 될까' 하는 조급함이 올라왔다. 신문을 보던 남편은 옆에서 큭큭 웃음이 터졌고, 내 속은 타들어 갔다.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지만, 반복되는 설명 속에 내 목소리의 톤은 나도 모르게 높아지고 빨라졌다. 아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런 표정으로 할 거면 지금 안 풀어도 돼. 다음에 하자.”
아이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휑해진 거실에 혼자 앉아있으니 잊고 있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첫째를 키울 때도 그랬다. 처음엔 분명 다정하고 차분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같은 설명이 반복되고 아이의 이해가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어느새 내 목소리는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듯 높아져만 갔다.
당시 첫째는 내게 '엄마는 가르쳐줄 때 화를 너무 많이 낸다'며 서럽게 울었었다. '나는 왜 사랑하는 아이를 가르칠 때 자꾸 화가 나는 걸까.' 그때도 스스로를 책망하며 내가 안 하고 남편의 도움을 받곤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막내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그 부끄러운 모습이 마치 데자뷔처럼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간 아이는 방바닥에 문제집을 놓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삐쳐서 이불 덮고 누워있을 줄 알았는데 쪼그리고 앉아 여전히 문제집을 붙들고 있었다.
잠시 후, 아이가 문제를 다 풀었다며 문제집을 가져왔다. 풀이 과정도 정답도 제법 근사했다.
지저분한 글자들은 깨끗하게 지우고 썼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스쳤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대견함에 아이를 칭찬하려던 찰나, 풀이 과정 아래 적힌 글자가 내 심장을 툭 건드렸다.
‘엄마 화내지마.’
여섯 글자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첫째 때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이미 내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빛에서 '화'를 읽어낸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를 꼭 안아주며 “엄마 화낸 거 아니었어, 미안해”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묵직했다.
아이가 크면 육아가 쉬워질 줄 알았다. 물론 몸은 편해졌다. 밤잠을 설쳐가며 젖을 먹이지 않아도 되고, 밥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신체적인 고단함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그 자리에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야 하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해졌다.
아이들이 나에게 말해준 '선공감 후조언'을 수없이 다짐했건만, 오늘도 나는 공감보다 설명해 주며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아이의 키가 자라는 속도만큼 내 인내심도 함께 자랐어야 했는데. 엄마인 나는, 아이와 함께 서툴게 성장 중인가 보다.
다른 집 아이가 말했다면 그저 웃으며 넘겼을 엉뚱한 대답을, 내 아이의 일이라 조급하게 다그쳤던 시간들.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꾹꾹 눌러썼을 그 마음을 뒤늦게야 알아차린다.
내일은 문제의 정답보다 아이의 표정을 먼저 읽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조금 더 유연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조용히 반성문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