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내민 규칙, 누구를 위한 걸까

아빠가 틀렸다7

by 이야기보따리

아침 8시. 밖에서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 가는 척하며 슬쩍 내다봤다. 첫째와 둘째가 폰으로 게임을 하는 중이다.(지인네 집 아이들 폰이다.) 여기는 친한 지인네 집. 주말엔 자유롭게 게임을 하는 환경이다. 아이들은 전날에도 저녁 12시 넘어서까지 게임을 하며 잠들었다.


워낙 늦게 잠들었으니 이튿날엔 늦게 일어나겠지 생각한 건 완전 오해였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다. 눈 뜨자마자 게임부터 시작했다. 전날엔 게임을 하느라 집밖을 나서지 않았다. 아이들을 뒤로 하고 운동복 상태로 수건을 들고 집을 나섰다.


처음 본 동네 주변은 환경이 무척 좋았다. 대도시였지만 산과 물길이 아파트 주위를 감쌌다. 폭이 3m쯤 되는 물길을 따라 가니 산으로 이어졌다. 적당한 경사였지만 뛰어서 가니 숨이 가빴다. 차가운 아침 기온은 어느새 체온에 의해 달궈졌다. 산에서 내려온 물은 깨끗했다.


갑자기 새 두 마리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꿩이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게 꿩이다. 아파트 대단지 근처에 꿩이 산다니 재밌다 싶었다. 물길 끝에서 끝까지 달렸다. 대략 8km. 날이 추워 땀이 ‘줄줄’ 흐르진 않았지만 슬며시 계속 배어 나왔다.


물길을 다 살핀 뒤 트랙이 있는 공원에서 달렸다. 대략 14km를 달리고 집에 들어갔다. 시간은 오전 10시 40분쯤이었다. 거실에 있는 아이들은 똑같은 모습이었다. 폰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열심히 게임 중이었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우리집 규칙은 ‘할 일 하고 놀자’다. 규칙이 깨어진 걸 보자 ‘휴’ 한숨이 나왔다. 씻고 나오자 지인네 엄마가 비빔밥을 만들어서 아이들 다섯을 불러 모았다.(이 집엔 아이가 셋이다.) 어쩌다 보니 새엄마가 새끼들 밥 먹여주기 놀이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서로 더 입을 크게 벌린다. 가장 입을 크게 벌린 아이에게 엄마가 밥을 먹여준다. 아이들은 신난 얼굴이다. 이 또한 우리집에선 벌어지지 않는 풍경이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먹게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도 아내가 밥을 떠먹여주는 걸 반대했다.


지인네 엄마가 참 대단하다 싶었고, 꼬마새처럼 입을 ‘앙’ 벌린 아이들이 한편으론 귀엽게 보였다. 문제는 나였다. 이 풍경이 참 생소했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얼굴이 굳어있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있는 건 참 민망한 일이다.


둘째가 다가온다. 게임 이야기를 꺼낸다. “아빠, 로블록스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는데...” 게임에 흥미가 없고, 마음이 싸늘한 아빠는 대화를 잇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할 일 하고 놀아야지. 할 일 했니?” 공기 흐름을 감지한 둘째는 곧바로 등을 돌린다.


아이들 밥을 다 먹인 뒤 어른들끼리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나는 아이들과 공원에서 놀았다. 공원에 나오자 다들 ‘와’ 했다. 공원에 있는 기구들을 하나씩 만지며 놀았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아이, 스피커에 대고 ‘아아’ 외치는 아이, 그냥 달리는 아이, 다섯 아이, 다섯 색깔이다.


“공을 갖고 놀까”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공을 ‘뻥’ 차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한 아이가 “공, 공, 공” 하면서 쫒아간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으로 이뤄진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다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공원 한가운데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전망대가 우뚝하다. 전망대라고 해봤자 5m 정도다. 남자 아이들은 전망대를 기지로 만들어 ‘기지 뺏기 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여자 아이 셋은 시큰둥하다.


공원 한쪽 나무를 어슬렁거리며 다녔다. 한 아이가 “도토리다”라고 외쳤다. 갑자기 도토리 줍기 시합이 벌어졌다. 1시간 30분 되는 시간 동안 축구, 피구, 공 던지기, 신발 멀리 차기, 도토리 줍기 등 몇 가지 놀이를 했는지 세기도 힘들다.


지인네 집 아이들은 참 밝다. 이틀 동안 지내면서 지인네 부부가 아이들을 혼내는 걸 보질 못했다. 당연히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없었다. 지인네 부부는 내내 미소를 머금은 상태로 다정하게 말을 나누었다. 그에 반해 규칙에서 벗어난 상태로 지내는 우리집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굳은 표정을 풀기 힘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이다. 영화 속엔 두 아버지가 나온다. 한 아버지는 성공한 건축가다.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규칙강박.jpg


또 한 아버지는 전파상을 한다. 매사 대충대충, 적당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이 태어나고 6년이 된 어느 날, 아들이 뒤바뀐 걸 알게 된다. 건축가와 전파상은 자기 아이들을 주말마다 바꾸며 천천히 알아가기로 합의한다.


건축가는 결국 자신이 두 아이를 키우게 될 것이라 자신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자신의 아이마저 전파상 아버지를 좋아하게 된다. 전파상의 아이는 건축가 아버지에게 적응하지 못한다. 건축가 아버지가 정한 빼곡한 규율 리스트를 읽으며 규율 리스트를 읽으며 "왜 (なんで : 난데)?"라고 반문한다.


내가 이 영화를 떠올린 건 어느 순간 나 또한 건축가 아버지가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규율이나 규칙은 목적이 아니다. 요즘은 생소한 단어가 됐지만 꽤 오랫동안 ‘사감’이라는 말은 누구나 아는 단어였다.

학교나 기숙사에서 생활 지도를 하는 관리인이 사감이다. 일제강점기 유명 소설가 현진건(1900-1943)이 쓴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B사감은 기숙사 학생들에게 권위적이고 엄격하다. 이 소설 이후 사감은 권위와 엄격의 대명사가 된다. 이 소설에서도 B사감의 권위와 엄격은 불필요하다.


헤어지는 순간 우리집 둘째가 중얼거린다. 귀를 갖다 대니 “여기 있고 싶어”라고 말한다. “엄마 아빠 안따라갈 거야”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은 투명하다. 그게 아이들이 지닌 힘이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몸과 마음이 반응한다.


나는 규칙을 강조하는 편이다. 규칙에서 벗어나는 걸 허용하지 못한다. 그게 규칙이니까. 규칙은 죄가 없다.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 내가 아이보다 규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빠가 아니라 사감이 돼버린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는 순간에도 그 중간은 어딜지 여전히 혼란스럽다. 집에 와서 벽에 붙여 놓은 글을 찾았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입학할 때 받아올 때 받아온 안내장에 있었던 글이다. 마음에 들어서 방에 붙여 놓았다.


제목은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작가는 다이아나 루먼스다. 이틀 간 남다른 시간을 보내고서 오랜만에 이 글 앞에 다시 섰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사람이 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산을 옮기는 것보다 더 어렵다 했다. 그 이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변덕이 돼버린다. ‘규칙 강박’에 대한 점검 신호등이 켜졌다.


#그렇게아버지가된다 #다이아나루먼스 #규칙강박

이전 05화핸드폰 사 달라는 1학년 아이,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