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아이가 우산을 쓰고 갔다

아빠가 틀렸다1 - 믿음과 불신 사이

by 이야기보따리

원래 견물생심에 아이들이 더 민감하다. 보면 바로 반응하고, 보면 바로 몸이 움직인다. 어른들은 귀찮아서,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아서, 경험으로 그 이후를 알아서 그렇게 못한다.


아침 등교길, 첫째가 신발장 문을 열었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고르기 위해서다. 호기심 많은 둘째는 오른쪽 문도 열었다. 혹시 새롭게 생긴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른쪽 문에 있는 건 우산이다.


둘째가 우산을 보자마자 바로 우산 하나를 꺼낸다. 콧노래도 부른다. 복도에서 우산을 펼쳐서 한바퀴 춤을 추면서 돈다. 바깥 날씨는 화창하다. 둘째에게 말한다.

우산4.jpg 화창한 날 우산을 꺼내고서 좋아하는 둘째. 아빠는 난감하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는 AI를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자, 이제 우산 도로 넣자."

"나, 우산 들고 갈 건데."

"오늘 비 안와."

"비 올수도 있잖아."

"오늘 비 안온다니까."

"비 올수도 있으니까 들고 간다는 거잖아."

"휴.....그럼 돌아올때 우산 꼭 챙겨야 돼. 알았지."


사실 이 말을 할 때 믿음이 있었다. 둘째가 절대 우산을 챙기지 못하리란 믿음. 둘째가 우산을 챙기지 못하리란 점에선 불신이었고, 둘째가 챙기지 못할 걸 믿는 내 생각에 대해선 강한 믿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유치원을 마치고, 태권도 학원까지 마친 다음 둘째를 만났다. 학원차에서 내리는 둘째의 양 손을 자세히 살폈다. 손이 허전하다. 역시나. 이럴 땐 묘한 쾌감이 생긴다. 내 생각이 맞았다는. 이러면 안되는데.

둘째가 아빠를 보면서 달려온다. 첫 마디가 의외였다.


"아빠, 나 우산 놔두고 왔어."

"어디에?" (놀랐다. 우산을 잊어버리고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유치원에. 내일 꼭 들고 올게."

"그래. 알고 있으면 된 거야. 원래 기억못하면 못찾는데, 기억하니까 꼭 찾을 거야."


내 계획 속에선 둘째가 딴 말을 하면, "우산 어쨌니"라고 추궁하고, 둘째가 얼버무리면 "그러게, 아빠말 들으라고 했잖아"라고 마무리하는 거였다. 시나리오에선 완전 어긋난 결론이었다. 이제 관건은 그 다음날.


다음날도 역시 맑았다. 내 경험상으로도 집을 나설 때 비가 오더라도 돌아오는 날 맑으면 우산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둘째는 평소에도 '깜빡깜빡' 하는 경우가 많아, 자주 지적을 당하는 편이었다. 오늘 둘째가 우산을 못갖고 온다는 데 마음속으로 표를 던졌다.


태권도 학원차가 아파트 정류소에 멈출 때 차를 응시했다. 둘째는 항상 느긋하게 내린다. 한 명, 두 명, 다섯 명이 내린 다음 제일 마지막에 내렸다. 이럴 수가. 딸 손에 우산이 들려있었다. 딸이 '아빠' 하면서 달려왔다.


이 일을 겪으면서 믿음과 불신에 대해서 요즘 살짝 혼선이 생겼다. 나는 경험과 데이터에 근거해서 판단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부분은 미리 경고를 하고, 대비를 한다고 판단했다.

우산(학원차).jpg 경험이 도움이 될 때가 있지만 과신하면 위험하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는 AI를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우산 부분도 마찬가지. 과거 경험에 따라 우산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았고, 게다가 비도 안오기에 우산을 갖고 가지 않는게 맞다고 판단했다. "우산 갖고 올 수 있어"란 둘째 판단을 믿지 않았다.


내 판단은 순전히 과거 데이터에 근거한다. 둘째의 자신감과 판단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딸은 보란 듯이 이틀 연속 아빠의 판단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여기서 내 믿음과 불신이 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그 전에 딸이 실수하거나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때 "넌 못할 거야"란 내 말과 생각이 전해진 건 아닐까. 이번엔 그런 태도와 말을 감춘채 좀 조심스럽게 대한 게 딸이 임무를 수행하게 만든 건 아닐까.


우산 사건은 내 판단에 살짝 균열이 가게 만들었다. 그래도 사람이 쉽게 바뀌는 건 아니고, 내가 어디까지 바뀔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고보면 나는 딸도 못믿었지만 나도 못믿었다 볼 수도 있다.


모든 걸 믿는 것도 틀렸고, 모든 걸 안믿는 것도 틀렸다. 어떨 때 믿고, 어떨 때 안믿는지가 중요한데, 그 판단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둘째가 아빠에게 일깨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