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틀렸다2 – 감정을 눌러야 보이는 것들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아이들에게 자기가 어지럽힌 것들 정리하라 시켰다. 둘째가 식탁을 대충 정리했다. 색종이를 꺼내 얇게 오리며 놀았으니 흔적이 여기저기 가득하다. "식탁 위에도 있고, 식탁 밑에도 있네"라고 말했더니 둘째가 "아" 하면서 정리를 마무리했다.
식사를 준비했다. 둘째가 "김치도 주세요"라고 말한다. 둘째가 밥을 먹을 땐 김치와 김이 필수다. 조금 있으면 "김도 주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밥을 준비하고 첫째를 씻기기 위해 거실로 향하는데, 몇 가지 것들이 눈에 띈다. 종이 2개, 비닐 조각 2개다. 색종이 놀이의 흔적처럼 보였다.
"이거 누가 한 거야. 정리해야지."
첫째가 눈을 끔뻑거리며 "난 안했는데"라고 말한다. 아무리 봐도 둘째 작품이다.
"이거, 둘째가 했어? 이것만 정리하고 밥 먹자."
갑자기 둘째 표정이 '싹' 바뀐다. 싫은 내색을 강하게 내비친다.
"왜, 나만 많은데. 왜, 왜, 왜."
"둘째야. 자기가 어지럽혔으면 자기가 정리하는 거잖아. 이거 다른 사람이 한 거야?"
"나만 많잖아."
"둘째가 한 거면 둘째가 치워야지. 그럼 아빠가 치우고, 아빠가 둘째 밥 먹을게. 됐지?"
둘째가 '우왕' 하면서 드러눕는다. 울음보를 터트린다. 첫째를 씻기고 온 뒤에도 여전히 누워서 왕울음중이다. 첫째밥을 차린 다음 둘째보고 "밥 먹자" 말했다.
둘째가 "머리가 이상해"라고 말한다. 갑자기? 가까이 다가가서 "뭐라고?" 물었다. 둘째가 다시 "머리가 이상해"라고 강조했다. 휴. 한숨이 나온다.
"그래, 그러면 비타민 먹고 가서 좀 누워있어."
"아니, 머리가 이상해."
"그러니까, 비타민 먹고 가서 좀 누워있으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머리 아프니까 비타민 먹고 좀 누워있으라구."
"다리가 아파."
딸은 다리를 걷었다. 왼쪽 정강이에 멍이 들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됐어?"
"오늘...아 아니다. 목요일."
"목요일이면 어젠데."
"아, 수요일이다."
"수요일, 어쩌다 다쳤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수요일 다친 걸 왜 지금 말해. 그때 바로 말해야지. 그리고 머리 아프다면서 왜 갑자기 다리 아프다 그래."
"아니, 왜 내 말을 못믿어."
목소리가 높아지는 걸 '꾹' 눌렀다. 필사적으로. 얼마나 '꾹꾹' 눌렀는지 모른다. 옆에선 첫째가 집중해서 둘을 쳐다봤다. 첫째에게 물어봤다. 둘째가 "머리 아프다"는 말을 안했는지. 첫째는 "분명히 들었다"고 말했다.
잠시 뒤 반전이 일어났다. 둘째가 "내가 잘못 말했어"라고 말했다. 목소리 톤은 살짝 낮아지고,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적반하장이 분명한데, 분명 미세하게 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밥 먹을거야? 안먹을거야?"
"먹을 거야."
"알았어. 아빠는 밥 차릴게."
뒤를 돌아보니 딸은 바닥을 치우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딸의 표정을 봤다. 조금전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크게 울던 표정은 사라진 상태였다. 왠지 둘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둘째야. 둘째 심정을 알 것 같다."
둘째가 아빠 말이 궁금한 듯 고개를 돌렸다.
"정리할 일이 다 끝난줄 알고 신나는 마음으로 식탁에 앉았는데 또 할 일이 남았다 하니까 화가 난거야. 그지? 이제 다 끝났다 생각하고 배도 고팠는데 말이야. 그지?"
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다음엔 이런 일 안일어나겠다. 지금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화가 났는데, 다음엔 오늘 일을 기억할 거잖아. 그러면 화가 안나겠다. 그지?"
딸이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가 "내가 잘못 말했어"라고 고백한 건 처음이다. 처음엔 머리가 아팠을 수도 있고, 안아팠을 수도 있다.
진짜 아픈 건 다리였지만 지난 상황이었다. 둘째는 속상한 마음을 아픈 걸로 표현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속내의 일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한 것 처음이었다.
화를 내지 않아서, 나름 진지하게 들어줬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 본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넘어가는 딸도 성장중, 그 딸을 키우는 아빠도 열심히 성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