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자" 하니 갑자기 "배 아프다"는 아이

아빠가 틀렸다3

by 이야기보따리

둘째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드러눕는다.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태세다. 내 태도와 목소리톤에 따라 바로 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은 오후 8시 10분.


사연은 이렇다. 1박2일짜리 이야기다. 전날 첫째 친구가 놀러와 하룻밤 잤다. 신이 난 셋은 열심히 놀았다. 원래 취침시간은 9시. 1시간 늦춰줘 10시로 취침시간을 조정했다. 자기 전 어지럽힌 건 정리해야 한다.


둘째가 졸리다며 소파에 드러눕는다. 종종 하는 패턴이다. 양치질하고 잠옷이라도 갈아입으래도 졸리다며 꼼짝을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바로 들어가 자라고 하니 쏜살같이 들어간다. 아이들에겐 원래 정리하고 자야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서 정리하라고 말하곤 재웠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세 아이가 열심히 노는 중이다. 토요일엔 다같이 청주에 가야 한다. 오전 8시 20분에는 집을 나서야 시간이 맞다. 아침 정리는 글렀다. 오후를 기약한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5시 40분. 첫째 친구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장을 본 짐 정리를 하고,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니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그 와중에 첫째가 씻을 준비를 하고 찾아왔다. 첫째를 씻긴 뒤 두 아이에게 "어제부터 못한 정리를 하자. 정리 끝나면 저녁 준비할테니 말해"라고 하곤 나머지 일을 했다.


시간은 6시가 지났고, 7시가 지났고, 8시 임박이다. 아내와 둘이서 밥을 먹는데도 아이들은 '딩굴딩굴'이다. 분명히 노는 건 노는 건데, 주제를 갖고 논다기보다는 '딩굴'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액세서리를 쏟아서 숫자를 세고, 인형을 거실로 끄집어내온다.


에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배가 고프지 않을까 싶은데 과거와 요즘은 확실히 다르다. 배고픈 기억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 밥 앞에선 항상 느긋하다. 내가 본 아이들은 예외없이 그랬다. 물론 과자나 치킨, 피자 같은 간식류라면 상황이 다르긴 하다.


암튼, 점심 식사를 2시30분에 했으니 이제 배가 슬슬 고플 시간이 됐는데 아이들은 별로 밥 먹을 기색이 없다. 시간은 8시 10분. 이제 칼을 빼들 시간이다.


"얘들아. 밥 먹으려면 지금 말해야 해. 9시가 되면 그냥 자야 하거든. 밥 안먹어도 되는데, 밥 먹겠다면 지금이라도 정리를 하도록 해. 그리고 둘째야. 아무리 그래도 손은 씻어야지. 잠옷도 입고."


바닥에 드러누워있던 둘째가 이 말을 듣자마자 "배가 아프다"고 한 것이었다. 평상시라면 이 말의 진위를 따지고, 추궁하는 패턴으로 갔을 터였다. 그러면 어김없이 둘째는 울음을 터트리고 상황은 어둡게 흘러갔을 것이다. 나는 최근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꿀꺽' 침을 삼키며 잠시 뜸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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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야. 알았어. 네 말 믿을게. 네가 배가 아플 수도 있어. 어제 바닥에서 잤잖아. 배도 까고 잤고. 배가 아플 수도 있어. 조금 전까지 배가 아프지 않았던 것은 이상하지만 어쨌든 아플 수 있어. 믿어줄게. 그러니 더더욱 밥을 먹어야 해. 손 씻고, 잠옷 입고, 빨리 정리하고 밥 먹자."


조용히 둘째가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정리는 10분 만에 끝났다. 전복죽을 끓였다. 둘은 10분만에 한 그릇씩 '뚝딱' 했다.


나는 평상시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고, 그에 따라 둘째도 평상시와는 다른 행동으로 응답했다. 결국은 아빠인 내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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