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 나타난 공항,어느 순간 사라지다

<8살 아이가 듣는 우리동네 전설 : 예천·안동 편3> 예천공항

by 이야기보따리

“첫째야, 옛날에 우리 동네에 공항이 있었대.”

“엉? 그런데 지금은 왜 없어?”

“사라졌어.”

“왜 사라졌어?”

“타는 사람이 없어서.”

“그때 내가 있었으면 자주 탔을 텐데. 그러면 안없어졌을 텐데.”


아빠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당장 눈 앞에 있는 흰 종이에다 낙서하는 게 더 중요했다. 논과 밭, 조용한 시골 풍경 사이로 거대한 비행기가 내려앉는 모습은 본 적이 없고, 그래서 별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2025년 5월 예천박물관에선 이달의 유물전이 열렸다. 유물은 대한항공 탑승권 3장. 한 장은 1995년 11월 22일 예천학사관광이 발행한 항공권이다. 예천에서 서울로 가는 항공권으로 가격은 19000원. 또 한 장은 국제항공편이다.

대한항공 탑승권2(예천박물관).jpg 예천공항 시절 발행한 탑승권. 예천박물관 제공.

1996년 3월 8일부터 12일까지 김갑녀는 예천에서 서울로 간 뒤 방콕으로 떠난다. 다시 서울에서 예천까지 돌아오는 긴 여정이다. 총 가격은 79만3500원.


1975년 예천비행장이 문을 열었다. 군용시설이었다. 이듬해 제16전투비행단이 예천공항에 창설된다. 국내 최초로 순수 국산 자본과 기술로 만들어진 비행단이었다. 1978년엔 공군 최우수부대에 뽑힌다.


1982년엔 미군들이 대거 예천을 찾는다. 예천비행장은 팀스피리트82훈련이 펼쳐지는 곳 중 하나였기 때문. 팀스피리트(Team Spirit)훈련은 1976년부터 1993년까지 한미 양국군이 매년 봄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한 대규모 연합 야외 기동훈련이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 도발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양국에서 1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훈련이다.


이 해엔 오키나와 가데나공군기지에서 출전한 C130 6대에 탑승한 미해병대 제3상륙여단 선발대가 포항비행장과 예천비행장에 도착했다. 수많은 비행기가 예천비행장을 이용했지만 그건 오로지 군용에 한해서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며 한국과 세계가 연결된다. 1989년 정부는 해외여행 자유화를 선언한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여행 다니는 시대가 문을 열었다.


세상은 ‘글로벌’을 외쳤지만 예천을 비롯한 인근 지역은 예외였다. 공항과 고속도로는 멀었고,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도 서울까지 4-6시간이 걸리는 '오지 중 오지'였다. 서울까지 가는 일은 참 먼 일이었고, 서울에 다녀오려면 하룻밤 자고 와야 하는 중대사였다.


그 즈음 예천 지역에도 새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988년 9월 23일 정부는 89년도 정부예산안에 목포 포항 울산을 비롯 예천비행장 확장사업에 예산 79억원을 배정했다. 곧이어 교통부는 예천비행장 건설공사를 89년에 시작해 90년에 완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드디어 예천에 민간항공기가 뜨는, ‘꿈같은 일’이 눈 앞에 다가왔다.


때마침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이어 항공업무를 시작했다. 1988년 12월 23일 항공기 1대(B737-400)로 시작하는 소박한 출발이었다. 1989년 12월 16일 11시 예천비행장에 민항시설 준공식이 열렸다. 예천공항 시대의 출발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잉737을 투입해 매일 1회 예천-서울을 오갈 계획이었다. 시간은 35분. 서울까지 가는 거리가 10분의1 이하로 줄어드는 기적의 길이 열렸다. ‘짧은 만화영화 한 편 보기도 전에 서울 도착. 만화영화같은 일이 실제 일어나버렸다.

[교통]1비행기 (3).jpg 35분이면 예천에서 서울 도착.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 현실이 돼버렸다.

아시아나항공은 더불어 예천-제주 구간도 개설했다. 주 4회 운행이었다. 예천공항 개소식엔 김창근 교통부장관, 이대엽 국회교체위원장,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예천과 더불어 교통 오지였던 안동과 영주 사람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영주 부석사, 주왕산, 하회마을에 좀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것이란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지역엔 큰 선물이었지만 “이 오지에 민간공항을 짓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도 한편으론 들었다.


지역에선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유학성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었다. 유학성은 예천 국회의원으로 전두환과 노태우의 군 선배였다.


1990년 4월 아시아나항공은 취항 490일 만에 탑승객 3백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제주 구간이 90만여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부산 80만여명, 부산-제주 39만명, 서울-광주 31만명이었다. 서울-예천은 3만명, 예천-제주는 2만5천명이었다.


6월 김포에서 출발한 국내선의 1-5월 평균좌석점유율이 발표됐다. 여수 91.4%, 울산 89.1%, 속초 88.6%가 높았다. 예천은 64.4%로 가장 낮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용율을 높이기 위해 1990년 8월부터 안동과 영주시에서 예천공항까지 셔틀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예천군 농협은 지역 특성을 살려 공항 대합실에다 농산물상설직판장을 개설했다. 지역 특산물인 참기름, 깨, 도라지 등 16종류 지역특산품이 공항 이용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1994년엔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대한항공까지 보잉727을 투입하며 김포-예천 노선을 개설한다. 중간에 한 번 중단하긴 했지만 대한항공은 예천-제주 노선도 운영한다.


이 무렵 제주노선은 인기였다. 해마다 제주를 찾는 사람이 증가 추세였다. 1996년 8월 제주기점 국내선 항공노선 탑승률은 92%에 이르렀다. 한해 전 86%보다 6%가 더 올라갔다. 광주, 울산, 여수, 목포노선은 99%로 꽉꽉 채운 채 운항했다. 예천 또한 83%로 낮지 않은 수치였지만 제주노선에서는 꼴찌였다.


1997년 예천공항 이용객은 39만명으로 최대치를 찍는다. 이듬해 한국공항공단이 98년 상반기 전국공항 수송실적을 발표한다. 전국 16개 공항 여행객은 전해보다 24.5%가 줄어들었다. 이유는 뚜렷했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가 터졌다.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쏟아져나왔다. 여행은 한순간에 사치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예천공항은 가장 타격이 컸다. 한해 전에 비해 여행객 이용이 40.4%나 감소했다. 전국 공항 중 최하위였다. 1998년 3월 대한항공은 예천-제주 노선을 폐지한다.


이대로 끝나나 싶었지만 마지막 불꽃이 남아있었다. 1998년 12월 정부는 예천공항 신청사 공사 예산으로 386억원이나 배정했다. 게다가 1999년은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영국 여왕이 방문하는 해였다. 서울 일정을 마친 여왕은 하회마을을 보길 원했고, 일행이 이용한 공항이 바로 예천공항이었다. 온 국민이 예천공항에 여왕이 내리는 장면을 지켜봤다.


불꽃은 불꽃일 뿐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39만명에 이르던 이용객은 2000년 13만3천명으로 3분의1로 줄어든다. 2001년 10월 8일 대한항공은 김포-예천 노선 운항 중단을 건설교통부에 건의한다. 이틀 뒤 아시아나항공 또한 김포-예천 노선 폐지를 건설교통부에 신청한다.


뒤이어 결정타가 터진다. 2001년 12월 중앙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한 것. 이로 인해 서울까지 4시간30분 걸리는 거리는 2시간30분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비행기가 주는 이득이 크게 줄었다.


더불어 적자는 눈에 띄게 늘었다. 2000년 예천공항을 이용하는 대한항공 적자는 20억원을 기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15억, 한국공항공단은 13억원이었다. 탑승율 70-80%를 기록해야 적자를 벗어나는데, 예천공항 탑승율은 50% 수준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평균 정원의 20%만 채우고 운행하는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앞으론 장담하기 힘들었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한 이듬해 예천공항 이용객은 3만2천명, 2003년엔 1만9천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놀라운 수치였다. 이용객은 없는데, 신청사는 2002년 기어코 만들어졌다. 그 해 아시아나항공은 서울-예천 노선은 폐지하고 예천-제주 노선을 신설했다.


경북도와 공항 인근 자치단체가 손해가 생길 경우 일부를 항공사에 준다는 조건이었다. 경북도가 25%, 예천군과 안동시, 영주시, 문경시가 합해서 25%를 내기로 합의했다. 간신히 산소호흡기만 달고 연명하는 신세였다.


쐐기는 경북도의회가 박았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가 항공사의 손실금을 보전하는 것은 무리"라며 조례안을 유보시킨 것. 산소호흡기를 뗀 마당에 살 길은 없었다. 민항기 운행이 중단되고, 2005년 공항 지정이 해제됐다. 89년 문을 연 예천공항은 16년만에 짧고도 화려한 막을 내렸다.

예천공항2(오픈스트리트맵).jpeg 과거 예천공항이 있던 시절 예천 지도.(지도 '오픈스트리트맵')

아쉬움은 남아 한동안 지역 정치권과 지역언론들이 ‘예천공항...국민의 힘으로 되살리자‘는 구호를 외쳤다. 2009년 경북도청신도시가 예천과 안동에 들어서기로 했을 때는 ’어느 정도 항공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이라는 희망 섞인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예천공항 재개항에 대한 군불을 뗐다. 정부와 정치권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군불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과거 예천공항의 흔적은 ’공항주유소‘ 등 몇몇 간판에 남아있을 뿐이다.


“아빠, 그럼 이제 비행기 못 봐.”

“아니, 요즘도 매일 보잖아. 저기 하늘에 전투기들 보이지. 저 비행기들이 아빠가 말한 예천공항에서 지금도 매일 뜨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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