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이가 듣는 우리동네 전설 : 예천·안동 편2> 하회마을
“아빠, 나는 영국에서 태어났어.”
“왜?”
“나는 공주잖아. 맞지?”
“맞지.”
“영국은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잖아. 그러니까 나는 영국에서 태어났지.”
“......”
언젠가 둘째가 뜬금없이 자기는 영국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영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둘째에게도 영국은 왠지 근사한 나라로 느껴진 모양이다. 봉건제가 사라지고 현대 민주주의가 일상이 된 요즘 왕실이란 단어는 참 낯설다. 하지만 왕실이 없는 영국을 상상하는 것도 참 어색하다.
1999년 영국은 여전히 강한 나라였다. 비록 절대강자 미국에게 밀리고, 수많은 식민지가 사라진 영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지만 저력은 남아있었다. 1999년 GDP 국가 순위에서 영국은 미국 일본 독일 다음인 4위였다. 여전히 영연방 국가는 50여개가 넘었다. 꽤 많은 나라에서 국가 수반이 영국 여왕이었고, 영국 왕실은 권위를 인정받았다.
영국 왕실은 뉴스를 몰고 다녔다.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도 영국 왕실에서 벌어졌다면 상황이 달랐다. '엘리자베스 영 여왕 다이어트 최근 체중 조금 늘어 저지방식 실시'(동아일보, 1995.7.18.) '엘리자베스 영여왕 복권 당첨'(경향신문, 1994.11.23.) '영여왕 과속운전 사과'(조선일보, 1993.6.23.) '애견들 싸움에 손물려 병원행 엘리자베스 여왕'(경향신문, 1991.3.16)
꽤 오랜 기간 지구상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영국에서 한국은 멀고도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 나라였다. 1883년 한국과 영국이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이후 영국 국가 수반이 한국을 방문한 일은 없었다. 영국에게 한국은 그런 나라였다. 한국 또한 그리 생각했다.
지구멸망설이 나돌고, 세기말이란 단어가 횡행하던 1999년,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영국 여왕이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이었다. 영국 여왕은 일찍이 1975년 일본을 방문했다. 방문 기념으로 경마 대회인 ‘퀸 엘리자베스 2세컵’이 만들어질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1986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부군인 필립공은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상하이, 시안, 쿤밍, 광저우, 만리장성과 병마용을 구경했다.
일본과 중국을 방문해도 한국은 방문 계획이 없었다. 서운했지만 대한민국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작고 힘이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999년 영국 여왕의 방문은 떠도는 풍문이 아니라 기정사실이었다. 그때쯤 한국 GDP도 세계 10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국력이 크게 올라간 상태였다.
1999년 4월 19일 영국 여왕 일행이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수행원 40명, 기업인 60여명, 기자 40여명, 한국전 참전용사 70여명이 동행한 대규모 일행이었다. 여왕은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환담을 하고 서울 시내를 구경했다. 이화여대와 인사동에서 한국의 활력을 체험했다. 다음 일정이 다들 궁금했다.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을 찍었다. 대한민국 수많은 장소 중에서 찍은 곳은 다름 아닌 하회마을이었다. 하회마을이 유명하긴 했다. 전통가옥이 가득한 마을이라 거닐기 좋았고, 사진 찍으면 예뻤다. 마을 앞 백사장은 넓었고, 강물은 얕아 놀기 좋았다. 근사하고 우아한 마을이라기보다는 놀기 좋은 곳이었다.
"쓰레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고, 밤이면 캠핑온 젊은이들이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며 동네를 휘젓고 다녀 전통마을이라기보다는 유원지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회마을을 찾는 인파는 지난달 초순까지만 해도 하루 1천5백여명에 불과했으나 요즘은 하루 3천여명을 웃돌고 있으며 이달 하순까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평사'라고 불리는 하회마을 앞 1km에 펼쳐진 낙동강변의 모래밭은 피서객들의 전용 캠프장으로 변한지 오래다."-한겨레(1994.8.19.)
한해 평균 30-4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지였지만 대부분은 여름철과 주말 방문객이었다. 1년 내내 방문하고, 전통문화를 즐기는 곳과는 거리가 있었다.
여왕 방문 소식을 전해듣자 하회마을측은 단단히 별렀다. 전통의 멋과 미를 제대로 보여주겠다 다짐한다. 1999년 4월 21일 오전 여왕은 특별기편으로 예천공항에 내렸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안동엔 구름이 짙었다. 하회마을 사람들은 걱정이 컸다. 날씨가 나쁘면 모든 준비가 무용지물이었다. 공항에서 하회마을로 이동하면서 구름이 천천히 걷혔다. 마을사람들의 근심 어린 표정도 조금씩 펴졌다.
여왕이 하회마을이 발을 디뎠을 때 구름은 온데간데없이 맑았다. 오전 11시 15분 충효당에 도착했다. 주인 유영하(73)가 안내했다. 종부 최소희(70)가 고추장과 김치 담그는 장면을 시연했다. 여왕은 그 모습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앞뜰에 기념식수를 했다. 20년생 구상나무였다.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즐겨 사용하는 나무로 멸종 위기종이다. 남부지방 높은 산에만 사는 한국고유종이다. 허투루 기념식수를 한 게 아님이 잘 드러난다.
11시 40분쯤 담연재에 도착했다. 하회마을은 풍산류씨(豐山柳氏)가 많이 사는 씨족마을이다. ‘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이 풍산류씨다. 서애 류성룡의 후손이자 담연재 주인인 류선우(63)가 여왕 일가를 안내했다. 담연재 마당에선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펼쳐졌다. 하회마을은 양반들이 만든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상민(常民)들이 양반과 선비를 조롱하는 놀이가 허용됐다. 양반과 상민간 경계가 분명하고 엄했던 조선 사회에서 이런 놀이는 파격이었다.
하회마을이 왜 이렇게 오래 유지됐는지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여왕은 여자 탈을 쓴 남자가 나오자 웃음을 터뜨렸다. 여왕은 탈놀이 아홉마당을 모두 관람했다. 뒤이어 생일상이 차려졌다. 여왕은 방한 중 73세 생일을 맞았다. 여왕은 신발을 벗고 안방에 들어갔다. 서양에서는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간다. 한국 문화를 공부하고 온 여왕이었다.
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이자 인간문화재인 조옥화(78)가 생일상 준비를 맡았다. 48가지 음식이 상 위에 빼곡했다. 밤다식과 문어오림, 매화나무에 각종 꽃과 열매로 장식한 꽃나무떡 등 생일상은 화려했다.
조옥화가 평생 세 번째 만든 꽃나무떡이었다. 12명이 꼬박 사흘 동안 밤새며 만들 정도로 공을 들인 떡이었다. 막걸리를 가라앉혀 만든 맑은 청주를 유기잔에 담아 축배를 들었다. 집주인 류선우는 여왕에게 복주머니를 선물했다. 경북지사는 불사조 화관을 선물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왕실의 여왕을 보기 위해 하회마을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주민과 관광객 1만여명이 모였다고 당시 언론은 추정했다. 여왕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지붕에 사람들이 올라가는 바람에 집 대들보가 무너졌다. 다른 집에선 기와가 깨지고 무너졌다. 조용한 마을은 이날만은 참으로 시끌벅적했고, 소소한 소동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생일상을 받은 여왕은 안동 농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고 봉정사를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인 극락전(국보)이 있는 절이었다.
여왕은 이튿날인 22일 한국을 떠났다. 여왕이 하회마을에서부터 봉정사까지 이동한 길엔 로열웨이(Road-yol way)라는 별칭이 붙었다. 한국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한 여왕은 2022년 9월 8일 세상을 떠났다. 그 때 나이 96세였다.
매년 30-40만명 정도가 찾아와서 흥청망청 놀던 하회마을은 1999년 관광객이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겼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며 다시 100만명을 돌파했다. 2017년에는 117만명이 방문하며 가장 많은 방문객수를 기록했다. 여왕이 다녀간 이후 하회마을은 이제 한국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찾아야 하는 필수코스가 됐다.
“둘째야, 다음에 하회마을에 가면 여기는 여왕이 지나간 곳일까 아닐까 상상하면서 다닐 수 있겠다 그치?”
♣ 다음편에는 예천의 또다른 전설을 만나러 가볼까요?
#동네이야기 #안동시 #엘리자베스여왕 #여왕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2세 #하회마을 #안동여행 #로열웨이 #세계문화유산 #영국왕실 #조옥화 #안동소주 #예천공항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