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내가 나와 멀어졌다고 느낄 때는 내가 글을 쓰지 않는 순간이었다.
오십을 넘어서기 시작하며 자신과 멀어져 시작된 방황은 수년이 지난 지금 그 절정에 달하고 있다.
자발적이거나 내적요인에 의한 방황뿐만 아니라 타의적이고 외적요인에 의한 구속들도 그 이유가 되었다.
젊었을 때의 방황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욕심에서 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면, 중년의 방황은 목표 없이 흔들리는 풀처럼 하루를 버티며 내일을 맞이하는 기약 없이 나약하기만 한 흔들림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좋아하던 책을 수년간 손에 들지 못했으며 수십 년 동안 써오던 일기도 쓰지 않았고 매일을 기록하던 다이어리도 몇 장을 채우지 못하였다.
드러나지 않는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약을 처방해 보았지만 무기력만 늘어갈 뿐 극복할 수는 없었다.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였으나 나를 상담해 주는 그녀 역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듯한 근거 없는 이유로 그마저도 몇 달을 넘기지 못하였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작은 흔들림의 시작은 그칠 줄 모르고 오히려 불안이라는 강력한 동반자와 한 몸이 되어버렸다.
나는 줄곧 하나의 직업을 간직해 온 평범한 건축가였다.
건축가에게 평범함이란 늘 새로운 창의력과 싸워 이겨야 하는 전쟁터에서 칼이나 방패 없이 맨몸으로 싸움을 하는 격이다. 이기기 힘든 싸움이라는 걸 알면서도 재미있어서 보람 있어서 지금까지 버텨온 삶이었다.
건축사는 전문직이라고는 하나 다른 전문직에 비해 큰돈을 벌지 못하며, 은행에서 정한 전문직 대출한도도 타 직종과 비교했을 때 몇 배나 차이가 나는 대우를 받는다. 대부분의 삶이 복합적이듯 '알고 보니 실속 없는 빈수레였네'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균열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내 방황과 우울이 나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고백해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은 오십즈음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내가 나와 더욱더 멀어지게 되었으며 선착장을 떠나 망망대해로 향하는 배처럼 언제 다시 육지로 돌아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십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내 인생의 대가를 보상받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차츰 무너져 내리면서 그 빈틈으로 우울과 불안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중년들이 오십을 전후해 정신적 육체적 격동기를 맞으며 흔들리지 않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듯 지극히 평범한 나 또한 사회가 만든 강력한 삶의 테두리 밖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버텨보았던 수년의 시간은 단단하게 뿌리내리지 못하였다.
미래를 대비한다기보다는 눈앞의 현실을 돌파하느라 전력질주 했으므로 내게는 더 이상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에너지의 고갈은 무기력과 번아웃을 불러왔고 그것은 마치 늪처럼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하였다.
"여자가 무슨 건축과를 가냐?"라고 말했던 사촌오빠의 말에 오빠말이 틀렸다고 보란 듯이 잘 버티고 싶었지만 어려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오빠가 좀 더 나를 말렸더라면'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 올랐다.
지금과 다르게 건축과의 여학생 비율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을 지나 지금껏 이 직업으로 살아왔지만 성공한 전문직 커리어우먼도 성공한 건축가도 되지 못한 채 오십을 넘기게 되었다.
빛바랜 방황의 이유가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나의 능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또 다른 나의 자아는 이런 나를 비웃고 있었다. 밀려드는 자책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았고 수년이 지나도록 방황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을 한 단계 내려놔야 하는 과정을 겪는다고 수긍하기에는 나이 들어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동료들이 많았기에 내 어둠의 시간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그래서 오십이 넘도록 성공하지 못한 혹은 보상받지 못한 삶에 대한 핑계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핑계가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핑계가 그럴싸할수록 위로가 큰 법이라고 생각하며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천재지변 같은 그런 이유가 내게 필요했다. 젊지 않은 나이와 가동이 느린 두뇌, 잃어버린 건강 따위의 핑계는 왠지 시시해 보였다.
그 시시함이 이 속세의 세상에서 얼마나 커다란 변화의 태풍의 눈이 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푸르름을 잃었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다.
지금껏 걸어왔던 반대방향으로 결국 돌아서야만 했다. 성공의 반대방향인 후퇴는 자연스럽게 불어오는 계절풍과 같은 것이기에 나의 노력 없이 맞이해야 하는 공기 같은 것이었다.
내가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나와 작별하여 나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과, 이 모든 상황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함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먹는 것보다 지켜야 하는 것임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이전과는 현격히 달라질 중년 이후의 삶을 보듬어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나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나의 우울의 농도가 조금은 흐려진 듯했고 균열된 빈틈사이로 옅디옅은 위로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지극히도 평범하고 모나거나 드러나길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분기점에 홀로 서게 되었다.
수만 번 고뇌했을 그 갈림길에서 설사 확신이 서지 않더라도 뚜벅뚜벅 길을 나선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이정표 삼아 나도 길을 나서야 했다.
천재지변 같은 핑계가 아니더라도, 포기하고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잠시 멈춰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삶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되뇌었다. 온 힘을 다해 살았지만 이럴 수도 있다고 이런 색깔의 삶도 있다고 담담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도 된다고 나에게 속삭였다.
'그래도 괜찮아...'
그리고 그 독백은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