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짧은 동행과 긴 이별

나의 어린 동생에게

by 지으다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죽음에 대한 기억은 8살 무렵이었다.


가까이하면 델세라 피하고 싶기만 한 죽음의 모습은 불안한 진동과 탁한 어둠이 뒤섞인 채로 봉인돼 있다.

그 죽음의 농도는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고흐가 바랐던 그림의 의미와 달리 내게는 몹시 어둡고 무거웠으며 우울했다. 탁하고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투명하고 모호하다는 느낌이 여덟 살의 내가 느꼈던 감정과 닮은 듯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은 소아마비를 앓았던 동생이 바다에 빠져 구조되었지만 실낱처럼 붙어있던 숨줄이 생과사를 넘나들고 있던 칠흑 같던 밤이었다.

석유램프 불빛아래 누워있는 작고 여린 동생을 둘러싼 많은 어른들의 숨죽인 모습은 고흐의 그림 속의 어둠과 닮아 있었다. 동그랗게 둘러싼 그들의 굽은 등뒤로 어둠의 불빛이 새어 나왔고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내게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모습으로만 비쳤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어둡고 좁은 방을 꽉 채웠던 어른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작고 여린 동생이 몸을 뉘었던 방 한 구석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마을에는 나의 부모에 대해 수군대는 말들이 떠돌았다.

' 그 어미는 무덤에 가서 흙을 파헤치고 그 아비는 종일 술에 취해 넋을 놓고 술주정뱅이가 되었쓰야'


나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동생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런 식의 일방적인 작별을 헤어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매일 함께 있었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흔적 없이 증발해 버렸고 그날 이후 그 누구도 동생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기에 슬픔을 제대로 배울 새가 없었다.


죽음과 관련해 내가 느낀 진동은 동네 아주머니의 등에 업혀 집으로 향하는 순간의 불안한 진동이었다.

학교가 파할 무렵 몇몇의 아주머니들이 나를 찾아왔고 그중 누군가 나를 둘러엎고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덕원이가 물에 빠졌쓰야..."


나를 엎고 달리던 그녀들의 나지막한 대화가 등에 업혀있었던 내 귓가에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낯선 이의 등에 업혀 집으로 향하는 울퉁불퉁하고 불안하기만 했던 그 짧고도 긴 흔들림이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다. 매일 즐겁게 오고 갔던 집으로 내닫는 거친 그 길이 내게는 슬픔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길이 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정신이 나갔다는 엄마는 더 이상 무덤가로 향하지 않았고 방에 널브러진 아버지의 술병들이 하나둘씩 치워지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이 빛나던 어느 날, 아버지는 집 앞 바닷가 바위 위에서 동생의 사진과 옷가지들을 불로 태우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의식을 홀로 치르지 않고 언니와 나를 함께 부른 이유는 우리에게도 남동생과 마지막으로 이별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아버지 홀로 어린 자식의 흔적을 떠나보낼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을까.


하얗게 떠오르는 구름 같은 연기가 파아란 하늘 위로 하염없이 올라갔다.

그 순간, 영혼이 있다면 마치 저런 모습으로 하늘로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오르는 걸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들어 하얀 연기를 오랫동안 바라다보았다.

덩달아 사라져 버린 나의 어릴 적 사진들과 추억들이 연기가 되어 흩어져 버렸고 덕분에 나는 유년기적 사진을 한 장도 간직하지 못한 채 그 섬을 떠나게 되었다.


7년간의 짧은 동행과 그보다 짧디 짧은 추억을 남기고 가버린 내 동생.

한없이 여리고 작기만 한 너에게 이제는 중년을 훌쩍 넘겨버린 누나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점점 깊어지는 애도뿐이어서 용서를 구한다.

너를 소리 없이 잃어버린 그날, 입학도 안 한 네가 유독 누나들 학교에 따라간다고 울고불고 떼를 썼던 그날 아침의 너를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너도 나와 함께 흰머리 휘날리며 나이 들어가고 있을까.

엄마가 도시에 나가서 사온 새 운동화를 신고 바닷가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익숙한 낡은 고무신을 신고 바위틈을 넘나들었다면 나는 너와 함께 밥을 먹고 세상 돌아가는 흉을 보는 그런 일상을 살고 있을까.


수천수만 번 되새겼던 그날의 가설들이 부질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바보처럼 어땠을까 어땠을까를 아직도 나는 놓지 못하고 있다.

동생의 죽음 이후로 성인이 된 후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수차례 겪게 되었지만 동생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의 첫 번째 슬픔이 되어버렸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영영 이별하는 슬픔을 겪고 있다면, 그리고 그 작별로부터 오랫동안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면 이 말이 그곳에 닿기를 바라본다.


" 작별해 버린 너에 대한 나의 가장 깊은 사랑은 내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너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오래전 헤어진 그때의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 나는 너를 첫눈에 알아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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