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건축가라 불리었던 삶을 내려놓으며

은퇴할 결심

by 지으다

시작의 순간과 끝의 순간이 있다면 사람들은 둘 중 어느 순간을 더 먼저 기억할까?


시작의 순간은 다짐의 적극적 실천이고 끝의 순간은 희미해진 다짐의 소리 없는 증발처럼 여겨지곤 한다.

내게 어떤 시작의 순간은 늘 목표와 도달할 지점을 향한 희망을 담은 의지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끝의 순간은 늘 흐지부지 사라져 버려 마침표가 없는 문장처럼 의미가 명확하지도 분명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만남과 이별의 순간도 그러했고 나머지 삶의 흔적들도 끝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봄날의 아지랑이 같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스스로 무언가를 끝마쳐야 하는 순간을 다짐해야 하는 때가 온다. 아니 다짐을 넘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기마련이다.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 결정을 미루고 30년을 몸담았던 삶의 터전에 미련이 남아 쉽사리 떠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차마 떠나지 못하는 각자의 이유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건축사라는 전문직의 울타리 안에서 전혀 상처받지 않고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척박한 세상에서 험한 모습 피해 가며 숨 가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 그 시간이 누구를 위한 삶이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타인을, 이웃을, 환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밤을 새 가며 설계를 하고 도면을 그리고 현장을 뛰어다니며 살았던 그 시간들이 실은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지극히 사적인 삶의 태도였음을 고백한다.


장동건처럼 멋짐 폭발의 모습으로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건축가들의 모습과 지극히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미지메이킹을 보면서 괴리감과 얕은 위안을 동시에 느끼곤 하였다.

이처럼 어떤 이에게 시작은 영화 속 하이라이트 장면처럼 화려하게 각인될 것이다.

처음으로 가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거나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순간들은 많은 희망과 감동을 주는 경험을 동반했을 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 시작을 결심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 역시 건축가가 되겠다고 다짐한 순간을 떠올려 본다.

어릴 적 구멍가게가 딸린 단칸방에 일곱 식구가 살았다. 부모와 아이 다섯, 첫째와 막내의 나이가 무려 열세 살이 차이가 나는 그 공간은 그야말로 두서가 없었다. 조그마한 내 육체를 누일 한 뼘의 영역은커녕 내 팔이 닿는 테두리 안에는 늘 누군가의 팔다리가 걸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형제가 적은 친구집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거기서는 사방으로 팔다리를 대자로 뻗어도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자기 방이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 학교가 파하면 늘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게 일이었던 철없고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 속에는 각기 다른 고유의 공간과 그 집의 독특한 냄새가 담겨있다.

가게를 가로질러 단칸방으로 향하는 우리 집과 달리 친구들의 집은 대문으로부터 시작하였다.

번듯한 양개 철대문을 기운차게 열고 들어가면 파란 잔디가 깔려있는 운동장만 한 마당이 나오고 철 따라 피는 꽃나무와 동화 속에 나올법한 그네가 그림처럼 놓여있었다. 마당 한편에 황금금붕어가 노니는 연못과 잘 다음 어진 소나무와 향나무가 있는 친구집은 어린 우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친구들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놀 때에도, 종이인형을 그려 인형옷을 만들어 입히며 놀 때에도, 나는 늘 그 인형이 사는 집을 함께 그렸다. 마치 내가 인형이 된 것처럼 나는 그 집의 하나뿐인 주인공이 되곤 하였다.

마당도 그리고 대문도 그리고 방도 그리고 거실도 그리고 책상도 그리면 내가 갖고 있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스케치북 속에서는 다 가질 수가 있었다. 온전히 나 혼자만 존재하는 나의 방을 만들어 놓고 방문도 닫고 커튼도 달으며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는 그런 동굴 같은 공간 속으로 숨곤 하였다.


" 나는 커서 건축가가 될 거야 "라고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는 시작의 순간을 내 친구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만의 아지트 공간을 간절히 원했던 나는 그 다짐의 시작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미 멋진 집

에 살고 있었던 친구는 그 시작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훗날 진짜 건축가가 된 나를 신기해했지만 그 어떤 결핍이 나를 건축사라는 직업의 길로 이끌었는지 어떤 희망으로 30년째 이 직업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 그저 의아할 뿐이다.


스스로 다짐한 시작을 기억도 못하는데 어찌 그 끝의 다짐을 기억할 수 있을까 싶지만, 시작과 다르게 끝이라는 말은 왠지 무겁다. 미지의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정박하는 배처럼 더 이상 설렘도 기대감도 사라진 끝이라는 말이 아쉬운 패배자처럼 여겨졌다.

분명 패배가 아닌 누구나 겪는 여정의 마무리인데 아무 성과 없이 여기서 멈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었다.

그러나 끝이라는 마침표를 스스로 결정하는 순간은 시작보다 강렬하고 굳세다.

멈춰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 돌아서야 할 때와 뒤돌아봐야 할 때, 스쳐가야 할 때와 바라봐야 할 때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시작의 순간보다 복잡하다.


시작은 후회를 전제로 하지 않지만 끝은 후회를 동반하기도 하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니 그 끝을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나는 내가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시작의 순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커서 화가가 될 거야라고 결심했던 순간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웃기지 않은가? 이처럼 인생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설계도처럼 하자 없이 멋지고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내 인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설계프로그램의 명령어처럼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던 순간으로 거꾸로 돌려 갈 수도 없으며, 그럴듯해 보이는 남의 인생을 복사해 은근슬쩍 내 설계도에 끼워 넣을 수도 없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끝낼 결심은 시작할 결심보다 두렵다.

그러나 두려움을 넘어서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희망을 품는 것이라는 걸,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끝이 가벼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