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회사에서 어떤 의자에 앉아 일하시나요?

제가 집에서 쓰는 의자는 듀오백입니다.

2006년에 제가 회사에 처음 들어갈 때 17만 원 정도를 주고 샀던 것 같습니다.

이제 15년쯤 사용했네요.

돌아보면 그 15년 동안 항상 제 곁에 있어주던 친구가 셋 있었습니다.

어머니.

강아지 민이.

그리고 듀오백 의자.


제가 컴퓨터를 할 때 항상 의자에 함께 있어줬던 내 친구

오래되고 낡았지만 함께한 추억 때문에 버리질 못하고, 결혼한 지금도 이 의자를 가져와서 쓰고 있습니다.


추억은 추억. 언젠가는 의자를 바꾸긴 해야겠죠.

오늘 허먼밀러 의자를 살펴보다가 최소 가격이 100만 원이 넘어가는 걸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의자야말로 창업자가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지표 아닐까?'


저는 네이버에서 허먼밀러 의자에 처음 앉아봤습니다. 모든 의자가 허먼밀러였거든요.

에어론. 130만 원짜리.

2005년도부터 130만 원 주고 샀으니 지금 돈으로는 300만 원쯤 하겠습니다.


솔직히 좋은 줄은 잘 못 느꼈습니다. 어떤 날은 그냥 옆에 굴러다니던 피시방 의자를 가져와서 썼던 적도 있습니다. 더 편한 것 같아서. ㅋㅋ


그래도 다음 의자를 산다면 허먼밀러를 사고 싶습니다.

100만 원이 넘어가지만 의자는 한 번 사면 최소 10년은 쓰는 물건.

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앞으로 10년 이상 내 친구가 되어 줄 물건에 이 정도 투자는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부담스러운 돈이긴 하죠. 제일 싼 게 100만 원이고 200만 원이 넘어가는 제품도 많습니다.


10년 전, 제가 네이버에 다닐 때 직원수가 3,000명.

내가 쓸 의자를 100만 원 주고 사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이 3,000명 모두에게 100만 원짜리 의자를 사준다고?

내가 창업자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냥 듀오백이나 시디즈 의자 사주면 오분의 일만 돈을 쓰면 될 텐데? 대다수 사람들도 만족할 거고.


진심으로 직원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결정은 못 합니다.

여러 좋은 회사들을 다녀봤지만 모든 직원이 허먼밀러를 쓰는 회사는 네이버밖에 없었습니다.

(추가: 지인들의 제보로 알게되었는데 요즘은 당근마켓, 카카오엔터프라이즈도 전직원 허먼밀러 의자를 쓴다 합니다)


그럼에도 불만인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파업한다던 네이버 직원들. 2019년 2월.

이때 이 사진을 보며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쟤네들 만약 해진이 형이 빨리 뛰어오는 사람들에게 선착순으로 연봉 2천만 원씩 올려준다고 소리친다면 어떻게 할까요? 자기들끼리 마구 밟고 지나갈 것 같은데요. 옆에 누가 죽어도 신경 안 쓰고요."

저는 크게 공감했고 우리는 한동안 웃었습니다.


이해진이 응답하라던 이 직원들이 만약 새로운 회사를 만든다면 자기 직원들에게 어떤 의자를 사줄까요?

더 좋은 의자 사주겠다고 말하려나요? 네이버보다 더 좋은 복지와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그런데 사람의 진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회사가 돈 많이 벌면 월급도 올려주고 의자도 허먼밀러로 바꿔줄께."

이런 비슷한 말을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봤을겁니다.


여러분이 회사에서 앉는 의자는 어떤 제품인가요?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직원들에게 허먼밀러 의자를 사줄 수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