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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um Jul 07. 2021

부모님도 통역이 필요해!

부모님을 이해하는 것이란.

나는 늘 부모님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어린이 때는 한없이 좋기만 하던 그런 모습이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니 차츰 잔소리로 치부해버리고 귀담아듣지 않게 되었다.

어느덧 나는 마음의 방을 만들고 두터운 문을 세우고 나만의 방으로 숨는 일이 많아졌다.

문의 두께는 나날이 두터워지고 그 두터운 문만큼이나 나와 부모님의 거리감이 생겼다.


똑똑

지금도 내가 만든 마음의 문 앞에 서서 말을 거는 부모님을 마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문의 두께를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스스로의 문을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면서도 부모님은 마음의 공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부모님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늘 내 그릇 가득 넘치도록 애정을 부어주었지만, 나는 만족을 못했다.

이유 모를 갈증 그리고 마음과는 다른 나의 냉랭했던 태도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던 걸까?

따뜻하게 대해주셨는데 왜? 안 좋은 감정들 위주로 기억했던 걸까?

왜? 늘 부족하게 느꼈던 걸까?

내가 찌그러진 그릇으로 태어나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어쩌면 말로는 이해한다면서 진정으로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가장 큰 것 같다.

 그때 당시의 나에게 부모님은 완벽한 존재로만 여겨졌었다.

우리 부모님은 무결한 존재야.

이렇게 생각하다 점차 부모님 역시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세상의 모든 것이 우스워보였던거 같다.

하늘을 찌를듯한 오만의 가면을 쓴 나에게 쓴 말을 하는 부모님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지도 못한다며 곧이곧대로 듣고  화를 내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무게를 재던 어느 날 온라인 강의를 억지 춘향이로 듣게 되었다.

뭐든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들었던 강의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따뜻한 말을 부모에게 들은 사람은 자기 자식에게 자연스럽게 따뜻한 말을 꺼낼 수 있다."

이 말을 듣고 더는 생각지 않던 어린이 시절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어릴 적에 나의 조모나 외조모에게 그런 말을 들어봤을까?

아니었다.

나의 과거의 부모님은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었다.

나의 아이들이 듣고 싶다던 요정님 같은 부드럽고 따스한 말을 우리 부모님은 들어는 봤을까?

스승님이 언젠가 했던 말이 들려온다.

"부모님도 그런 말을 들어봤을까요?"

"당신이 아는 부모님은 당신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어서 상처 주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걸까요?"

"잘 모르는 부모님을 탓하기보다는 그렇게 밖에 표현할 줄 모르셨던 부모님을 이해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부모님 전용 통역기를 만들었다.

처음이라 역시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부모님께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냐고 삼 남매 이렇게나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라도 귀담아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오늘도 부모님 전용 통역기를 작동시킨다.

이제는 내가 먼저 부모님 마음의 문을 두드려본다.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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