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순이 : 취미는 사랑(1)

사랑을 만나게 되기까지

by 일주일의 순이


교사란 직업은 나에게 특별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흔들림 없이 결정한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고3 때 가난하고 암울한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숙사형 간호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2년 만에 도망쳤다. 병원 참관 실습을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말 그대로 '도망쳤다.' 나는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단순하게 수능 점수와 취업률만으로 미래를 선택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뭐가 되고 싶고 무엇이 하고 싶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문득 고등학교 때 늘 웃는 모습으로 화단을 가꾸시던 할머니 선생님이 떠올랐다. 수업 시간에 자지 말라고, 교복 똑바로 입으라고, 항상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종용하던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그 선생님의 환한 웃음은 유독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이때부터 마음의 힘에 강하게 끌렸는지 모른다.

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어렵게 들어간 교대는 마치 고등학교의 연장선인 것 같아 너무 재미없었다. 학교에 나를 붙잡아두기 위해 힘들기로 소문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사람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고 공연을 하며 4년을 보냈다. 이후에도 내 삶은 연극과 함께 이어졌다. 마치 후진을 모르고 직진만 하는 달팽이처럼.



첫 발령을 받자마자 대학원 부설 교육연극 지도자 과정에 입학했다. 거기서 만난 선생님들과 모임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 동아리 선배가 하시던 교육연극 교사 모임에도 나갔다. 선생님들과 수업 사례를 엮어 책으로 출판하고 아이들과 연극 경연대회에 나가 최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3년 차부터 교육연극 연수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길의 끝에 찬란한 황금 문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것은 화려한 겉껍데기일 뿐이었다. 차곡차곡 스펙이 쌓였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의 내면은 지쳐갔다.


가장 힘들었던 건 주변에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관리자는 ‘민원 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고, 학부모들은 수업은 안 하고 연극만 한다고 불만이었다. 수업 결손을 피하기 위해 30분 일찍 나와 연극 연습을 했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싫어했다. 당시 동료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무 열심히 하지 마. 그러다 상처받아.’였다. 교사모임을 하고 연극 연수를 받고 연극 지도를 하느라 가정에도 소홀했다. 남편의 불만이 쌓여갔다.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버거웠다. 나는 도망치듯 연수 휴직을 하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 시절은 인생의 봄날처럼 행복했다. 그러나 교사가 아닌 연극인 무리에 있는 것이 왠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늘 어정쩡하게 굴었다. 대학원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첫째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나에게 깜짝 선물 같은 존재였다. 아이의 삶은 물음표와 느낌표, 그리고 웃음으로만 이루어진 주사위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온통 까만색일까 봐 꼭꼭 닫아 두었던 내 어린 시절도, 열어보면 행복한 기억이 폭죽처럼 터져 나올 거라고 재정의할 수 있었다. 아이 덕분에 늘 어두운 모습으로 남아있던 나의 내면 아이에게도 빛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니 한 사람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육아휴직을 1년 하고 더 버틸 수 없어 복직을 했다.

‘교사가 애 키우며 일하기는 최고지.’ 그 말을 실감했다. 양가 모두 도움받을 형편이 아니어서 남편과 나, 오롯이 둘의 힘으로만 애를 키웠다. 아침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어린이집에 맡겼고 저녁에 남들보다 조금 늦게 아이를 찾았다. 학교에서 퇴근하면 집이라는 제2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당시 학교 아이들은 예뻤지만 아이들과 무언가를 해낼 에너지는 없었다. 정시 퇴근을 하며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월급이 나오니 감사하게 다녀야 했다.

새로 옮긴 학교는 교직원 분위기는 좋았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감정이 여과 없이 전해졌다. 그중 한 학부모의 발언은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선생님이 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학대예요!" 산만한 아이들에게 욱하는 마음으로 단체 벌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잘못을 뉘우치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사과했지만, 저 말이 준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남아 1년여를 버티다 휴직을 했다.


이후 나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어. 내 삶과 교사의 삶을 철저하게 분리할 거야. 다시는 혼용하지 않을 거야.' 단단한 벽을 세웠다. 그러나 영혼 없이 텅 빈 교사의 삶은 공허하기만 했다.



그러다 누군가의 소개로 권영애 선생님의 버츄프로젝트 연수와 책을 접했다.


"인생의 길은 두 갈래밖에 없다. 두려움의 길, 사랑의 길이다. 문제는 내가 두려움의 길에 있는지 모를 때이다. 지금 당장 내가 두려움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자존감, 효능감을 만드는 버츄프로젝트 수업 중>


나는 나 자신이 '두려움 에너지'로 가득 찬 상태라는 걸 인지했다. '사랑 에너지'란 무엇일까? 어떻게 두려움의 길에서 사랑의 길로 전환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게 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열쇠가 되지 않을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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