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의 희망사항은 어서 어른이 되어 돈을 버는 것이었다.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던가, 돈을 모아서 무엇을 사고 싶다던가 그런 거대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삼 남매를 키우며 애쓰시는 부모님을 조금이라고 돕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때는 나이만 들면, 무조건 직장을 다니며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혹시나 내가 아파서 직장을 쉬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이 40이 넘은 작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돈벌이는 언제든지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 나에게 허리 질환 '디스크 탈출'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그동안 내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에 이번에는 제대로 그 병이 나를 찾아왔다.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서 꼼짝없이 누워서 지내야 하는 시간들은 나를 끊임없이 어둠 속에 가두고 우울한 하루하루의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택시 기사님이 계신다.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보이는 기사님은 나의 전화 통화를 들으시고는 조심히 말씀하였다.
"저기. 보아하니, 허리가 아픈 모양인데
병원에서 뭐라 하든 간에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신경 쓰지 마이소. 저기... 실은, 나도 허리가 아파서 잘
걷기도 힘들고 안 가본 병원이 없소. 근데 나는 죽기
살기로 걸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동네를
걸었어요. 아파서 울기도 많이 울었소. 그 통증 안 겪어
본 사람은 몰라요. 그런데 한번 걸어보소. 내가
누추해 보이고, 이런 택시기사라서 안 믿기겠지만
병원 말 듣지 말고 한번 걸어보소. 나는 지금도 매일
오전에 2시간을 걷고 택시 운전대를 잡는다 아입니까"
기사님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택시비를 계산하는 미터기를 끄신 채 계속해서 자신의 경험담을 말씀해주셨다. 처음 본 손님, 일회성 만남일 뿐인 나를 위해 진심을 다해 격려와 조언을 해 주시는 기사님이 순간, 나에게는 신이 보내주신 천사였다.
'그래, 이것은 기회다. 더 늦기 전에. 늦지 않은 지금
더 건강해지고 몸을 챙기라는 신호구나. 그래 나도 걸어보자. 걷는 거, 힘들지 않잖아. 신경주사 맞는 것보다 훨씬 낫지. 우선 걸어보자'
그렇게, 나의 걷기 생활은 시작되었다. 허리 통증보다도
다리로 내려오는 신경통과 방사통이 심하여 걷는 것이 절대 쉽지 않았다. 나의 하루 목표는 아주 소박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10분씩'. 우선 하루 30분만이라도 잘 걷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아기가 첫발을 내디딜 때, 긴장하며 설레며 즐거워하듯이 나도
새로 태어나 걷기 시작한 아이처럼, 나를 둘러싼 나의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간에 걷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분들의 꾸준함을 배우고
내가 걷는 도로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나무들의 변화가 보이고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들의 눈빛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나는 우리 마을의 풍경이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그 친숙함이 주는 편안함,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던 나를 서서히 다시 일으켜 주었다. 두 발로, 마을 곳곳을 걸으며 '나는 분명히 좋아질 것이다. 다시 원래 있던 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고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두 발로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의 숨은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