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순이: 생존레시피(2)

김밥

by 일주일의 순이

스산한 가을이 되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1997년 가을..

더운 여름에서 시원한 가을이 되었다가 쌀쌀한 공기를 느낌과 동시에 수능시험이 얼마 안남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유독 그해 가을이 추웠던건 두번째 수능시험을 보는 해였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도 겨울 직전의 쌀쌀한 가을 날씨가 되면 그 때가 생각난다. 이번엔 잘 봐야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으로 마음 졸이며 지냈던 시간.

매일 새벽 6시반쯤 학원버스를 기다리던 시간이 가장 추웠다. 지금도 해뜨기 전의 어스름함이 기억난다. 버스를 타고 학원에 도착하면 학원 건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나는 매일 건너편에 있는 김밥집에 갔다.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사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싸주시긴 했지만 그리 특별한 김밥은 아니었다. 하지만 물리지 않고 매일 점심으로 먹었다. 워낙 가리는 음식 없이 잘 먹긴 했지만 내가 김밥을 좋아한다고 느꼈던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친정에 살면서 김밥에 처음으로 도전했었다. 그 전엔 김밥 싸는것이 내 능력 밖이라 여겼기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젠 아이를 먹여야한다는 생각에, 친정에서 나가기 전에 한번은 해봐야 혼자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해보았다. 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재료 준비가 관건. 고전적인 김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당근 채썰어 볶기, 시금치 다듬어 데친후 양념하기, 우엉 다듬고 채썰어 볶기, 달걀 부쳐두기, 김밥용 맛살이나 햄 볶아두기.. 나같은 초짜는 재료준비부터 진이 빠진다.

그래서 재료준비가 수월할 수 있는 재료를 생각해봤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는거다. 시금치나물을 먹고 남은 게 있다거나, 오뎅볶음이 남았다거나 우엉조림이 남아있다거나 이 모든 게 남아있다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는 준비가 쉬운 재료를 이용한다. 익히지 않고 그냥 넣어도 되는 것들. 햄, 맛살, 단무지, 오이, 치즈 등을 활용한다. 밥도 많이 남아있다면 데워서 사용해도 괜찮다.

그리고 몇번 싸다보니, 재료를 통으로 넣을 수 있거나 (안그러면 흩어진다ㅠ) 얇고 편편한 재료가 김밥말기 좋다. 그래서 그런 재료들로 싸보기로 한다. 단무지 대신 무쌈, 김밥햄 대신 슬라이스햄, 달걀도 두껍게 부치지않고 감자전처럼 얄판하게 부쳐 김밥 줄수만큼만 썰었다. 원래는 육전용 고기를 불고기양념해서 넣어보려했지만 마트에 없어서 그냥 불고기감을 넣었다. 보통 때보다 간을 좀더 세게 하면 밥에는 굳이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번거로운 과정은 최대한 줄이기!)


김밥싸기 재료준비 현실 사진

밥, 김, 달걀부침, 무쌈, 슬라이스햄, 치즈, 불고기, 참기름 준비


1. 가장 먼저 따뜻한 밥을 잘 펴둔다. 김의 1/2-2/3 정도까지 펼치는 게 좋고 끝부분에 접착제용으로 밥풀을 좀 붙여두면 좋다. 보통 김밥 한줄에 밥 한 공기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집에서 쌀 때는 탄수화물양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얇게 펼친다. 참, 밥을 만지기 전에 물을 좀 묻히면 밥알이 덜 묻는다.


너무 꼼꼼히 밥을 펼칠 필요는 없다. 김이 눅눅해져 찢어지는 경우도 생기므로 조금 속도를 내어 하는 게 좋다.


2. 재료들을 쌓는다. 따뜻한 밥 위에서 조금 녹도록 첫 번째로 치즈를 올렸다.

단백질을 많이 공급하기 위해 두장을 통째로 넣었다.


3. 그 다음 햄.

햄은 많이 먹이고 싶지 않으니 반으로 잘랐다.


4. 그 다음엔 무쌈. 다른 재료들 사이에서 퍽퍽함을 조금 줄여주기 위해 중간에 두었다. 얇다면 두 장을 겹쳐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5. 그리고 달걀. 싸게 될 김밥줄 수만큼으로 잘랐다. 등근팬 대신 네모팬이면 더 좋겠지만 살림을 더 늘리고 싶진 않다.


6. 마지막에 불고기 놓고 말기

김밥을 말 때 처음 부분은 쏟아지지 않게 빠른 속도로 앞으로 뒤집고 그 상태에서 김밥의 모든 부분에 압력이 전해지도록 골고루 꾹꾹 눌러 주어야 한다.


치즈를 자르지않고 크게 넣었더니 김밥을 말때 접착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이런 경우엔 밥을 좀더 넓게 펼치면 좋을 것 같다.

김밥을 말고나서 썰기 전 꼭 해야할 일이 있다. 겉면에 참기름을 묻혀주는 것. 묻힌 것과 안묻힌 건 김밥맛을 크게 좌우한다.(안묻히면 비릿한 냄새가 난다) 솔같은건 쓰지 않고 손에 참기름을 묻혀 골고루 발라주었다.


예쁘게 말아지진 않았지만 단면은 이런 모양


오랫만에 집김밥을 했더니 다들 너무 맛있게 먹어서 저녁엔 다른 재료를 넣은 김밥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세 가족이 역할을 하나씩 맡아서 하니 재밌고 쉬웠다. 남편은 재료를 집어주고 나는 재료를 쌓아서 말고 딸은 사진 찍고.. 역할을 바꿔서도 해보았다.

드디어 저녁시간. 이번엔 속재료로 잘 안먹게 되던 고추참치를 넣기로 했다. 참치와 잘 어울리는 깻잎, 무쌈과 기름 뺀 고추참치. 그리고 한번 싸보니 씹는 맛이 부족해서 오이를 추가했다.


남편은 불고기를 넣는 게 더 맛있다고 한다. 주말에 아이와 놀이삼아 만들기도 괜찮은 것 같다. 내일은 또 뭘 먹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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