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순이 : 오직 독서뿐 (2)

나이 듦에 대하여(어떻게 잘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by 일주일의 순이


“노화, 늙음” 이 단어들은 냉정하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받아들이라는 선고의 말이다. 반면에 나이 들어간다는 표현은 어쩐지 삶의 지혜와 연륜이 묻어나는 향기 있는 말 같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는 것도 ‘어떻게’라는 수식어가 붙어야만 뭔가 더 그럴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에 태어나면 피할 수 없는 ‘나이 듦’을 과연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잘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사실 위 고민은 어릴 적부터 해왔던 것이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일단 엄마가 친구들 엄마보다 10살 이상은 많았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등 주변에 노인들이 많아서 자연스레 죽음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움으로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특히 엄마가 몸이 아프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이 늘 있었다.) 늙음, 죽음, 죽음 후 세계 등이 궁금한데 또 알고 싶지는 않은 그런 양가감정을 안고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마흔다섯 살이 되었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보다 고작 5살 적은 나이에 둘째 셋째 둥이들을 낳았고 아이들이 자기들이 크면 엄마는 할머니가 되냐는 말도 가끔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나이가 들고 있구나’를 부정하지 못한다. 이제 나는 나이 듦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진지하게 거울을 보고 물어본다. ‘나는 어떻게 나이가 들고 싶은가?’(죽음까지는 아직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에서 작가는 노화는 질환이 아니고 병도 아니며 비정상이 아니다고 한다.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냉정한 표현이긴 하지만 노화, 나이 듦, 늙음을 섞어 써야 할 것 같다.) 그냥 삶의 연속체이며, 우리 모두 그 연속체 위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언제나 늙어가고 있다.(뭐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7살 우리 딸도 나이 들어가고 있고, 마흔다섯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노화에 대한 별 생각을 안 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것만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나이 듦의 문화가 없고 나이 든 사람들이 절박하게 매달리는 젊음의 문화만 있을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에게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사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생각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나이 듦을 피하고자, 거부하고자 생각하고 때로는 노력했어도 나이 듦을 새롭게 바라볼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작가는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과거를 받아들이고 친구를 사귀며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라는 등-을 만들어 제시했는데 사실 어느 나이대여도 충분히 받아들일만한 조언들이다. 그런데 9번째 조언에서 나는 멈추고 밑줄을 긋고 따로 메모를 해본다. 잘 늙어가기 위해 건설적으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삶에 더 매달리지 말고 놓는 법을 배우라는 것. 그리고 덜 불안해하고 덜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한 발 물러나라는 것이다.


작가는 인생을 강이라 빗대며 둑 사이에서 가늘게 흐리기 시작한 강물은 점점 더 폭이 넓어지고 둑은 점점 낮아지며 갈수록 더 잔잔히 흐르다 눈에 띄는 커다란 변화 없이 결국 바다와 어우러지고, 고통 없이 독자성을 내려놓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강처럼 우리도 우리의 물길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넓히는 것.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임을 믿는 것이 노년의 최종 과제라고 한다. 모든 것에는 알맞은 때가 있다. 심지어 물러난 것에도..(역시 작가가 한 말이다.)


이 광활한 우주 속 한 톨의 먼지만 한 지구에서 태어난 나는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이겠는가? 이제 나 중심의 태도에서 조금씩 물러 나서 남을 품을 수 있도록 마음을 넓히고, 다른 이의 빛을 응원해주고 격려도 해주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에서 만났다.


<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 오베는 사실 강물 같은 할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결국 마음을 넓히고 다른 이들의 가슴에 빛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의 할머니 역시 언뜻 보기엔 괴짜 같지만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도와주며 격려해주던 인물이었다. <베어타운>에는 동네 술집 사장인 할머니가 나온다. 남편이 세상을 뜬 후 계속 혼자 가게를 운영하며 힘들어진 동네 아이스하키단을 후원하는 분이다. 힘든 사람들에겐 따스하게, 그리고 반대의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한방을 날려주시는 분, 그리고 술 집에서 모여 역시 주인 할머니와 함께 후원을 지지해주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다. 최근작 <불안한 사람들>에도 역시 힘든 인질범과 자식들에게 자신의 방을 기꺼이 내주며 함께 살아가는 할머니가 나온다. 그런데 내가 제일 닮고 싶은 분들은 <우리와 당신들>에서 갑자기 훅 존재감을 발휘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주인공 마야, 그리고 그의 가족이 사는 집에 동네 건달이 위협을 가한 사건이 벌어지고, 마야의 엄마 미라는 건달을 찾아가 강하게 한방을 날리지만 안으로는 떨면서 겨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미라는 페테르나 아이들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소총 탄약 얘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나이 많은 할머니와 그보다 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집 앞길에 내놓은 낡아빠진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다. 현관문을 열고 복도의 불을 켜놓아서 안쪽 벽에 기대 세워놓은 노인의 엽총이 보인다. 그는 나이가 많고 느리고 엽총에는 총알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할머니가 미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한다.

“들어가서 눈 좀 붙여, 미라. 우리는 여기 앉아서 지나가는 차를 좀 구경하려고 나왔어.”

할아버지가 보온병을 열며 중얼거린다.

“요즘 들어 이삿짐 업체로 엉뚱한 정보가 접수돼서 엉뚱한 집을 찾아가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우리 동네에서는 그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지.”

사소한 몇 마디다. 사소한 제스처다.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우리가 여기서 산다고 얘기하기에 충분하다.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고 얘기하기에 충분하다...


아 이런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읽으며 그들의 쿨하면서도 따스한 말과 눈빛, 작은 제스처 그것이면 정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무슨 위로가 필요할까?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 정도는 나이 들어가며 누군가에게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누군가의 힘든 어깨에 잠깐이라도 손을 얹어 토닥여 주되, 부담은 주지 않으면서도 나의 진심을 전해주는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유머를 통해 남의 눈물을 잠시 웃음으로 바꾸어 주는 그런 위트 있는 할머니, 겉으로는 무심한 척 하지만 슬쩍 ‘오다 주웠어’하며 무언가를 건네주는 할머니, 혼자 눈물을 훔치며 삶의 무게를 이겨내는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가 손수건을 건네주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때로는 나쁜 사람들에게 강한 한방을 날리는 힘도 갖고 있으면 더 좋겠다^^) 그렇게 나의 마음의 폭이 점점 더 넓어져 세상의 바다와 사르르 합쳐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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