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공감하며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나를 구속하고 억압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나도 그랬다. 근데 막상 무엇이 나를 그렇게 구속하고 억압하고 있을까 고민해 보면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그냥 골치 아픈 생각 없이 자유로워지고만 싶었다. 하지만 생각 없이는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주제 일기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지, 나를 억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쓰기로 했다.
처음 이야기_돈에 대한 첫 기억
저는 돈에서 해방되고 싶어요. 정확하게는 가성비 인생에서 해방되고 싶은 거 같아요. 근데 또 솔직히 가성비 인생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진짜라서 그런 건지 제 인생에 대한 합리화인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합리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이상하다는 느낌이에요. (?)
아무튼 해방 이야기로 돌아오면요, 저는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가 참 좋았거든요. 제 마음이 주인공들의 삶과 이야기에 자꾸 덜컥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드라마를 다 본 후에도 그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난 무엇에 얽매여 살아왔나,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근데 그런 생각들의 끝이 이상하게 '돈'으로 흐르더라고요. 스스로도 의외였는데 그만큼 이거다! 싶은 느낌도 들었어요.
제가 '돈'이라는 것에 자유롭지 못하구나라는 걸 처음 깨달은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기억을 못 하는 것일 뿐 그전부터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중1 때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 당시 제가 돈에 대한 고민 글을 썼던 게 분명하게 기억이 나거든요. 샛길로 새는 이야기이긴 한데 그 당시 저한테는 저만의 특별한, '잡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연습장이 있었어요. 스프링이 달렸고 속지는 갱지였어요. 종이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미세하게 오돌토돌했죠. 왜 펼치면 습한 냄새가 올라올 것 같은 그런 종이요. 제목이 왜 잡장(襍 섞일 잡, 帳휘장 장)이었냐면 그야말로 그 연습장에는 제 일기도, 낙서도 무엇보다도 제가 그린 단편 만화도 있었거든요. 그 당시 순정만화를 좋아해서 제가 직접 만화를 그리기까지 했었어요. 제목은 '폰팅 하실래요?'였고 제목의 뒤 배경이 되는 그림은 햇살이 비치고 종소리가 울리는 학교 건물을 비스듬히 그린 그림이었죠. 딴 얘기가 너무 길었죠. 저도 모르게 추억에 잠겨 그만. 근데 그만큼 제게 '잡장'은 소중했어요. 하지만 소중했던 '잡장'은 동생이 엄마한테 언니가 이런 거 쓰고 그린다며 일러바치는 바람에 분노한 제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졌지요. 그래서 그 안에 있던 제 만화와 글들이 더 생생히 기억나는 거 같아요. 물론 모든 글들이 생각나는 건 아닌데요, 그중에 돈에 대해 속상했던 제 마음을 쓴 글은 분명하게 기억이 나요.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왔던 거 같아요.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왠지 그 브랜드 옷을 입어야 나도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거 같고요 그 브랜드의 바지만 예뻐 보이고 다른 바지들은 갖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렵게 엄마한테 그 브랜드의 검은색 바지를 사달라고 졸랐고 감사하게도 엄마는 사주셨어요. 그때는 저희 집 형편이 어렵지 않았어요. 아빠는 사업을 하고 계셨고 우리는 작지만 정원이 있는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괜찮은 형편이었는데도 저는 엄마한테 바지를 사달라고 조를 때 우리 집 형편이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매우 컸어요. 엄마도 바지를 사주시긴 했지만 탐탁지 않아 하셨거든요.
잡장에 제 마음을 그대로 썼죠.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 그리고 우리 집에 돈이 많아서 돈 걱정을 안 하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요. 유치한 tmi이지만요 그때 돈, 돈, 돈, 돈, 돈 ... 글씨를 점진적으로 크게 써놨던 기억이 나요. 마지막엔 돈이 뭐길래! 이러면서요. 접장이 사라진 게 못내 아쉽네요.
저는 왜 그랬을까요. 집도 있고 먹을 것도 있고 입을 것도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돈 걱정을 하게 됐을까요. 아빠는 저희랑 대화하는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엄마의 영향인 거 같아요. 엄마가 굉장히 알뜰하게 살림을 하셨거든요. 엄마와 제가 갈등을 겪었던 대부분의 이유도 '돈'때문이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우리 집 형편에 맞지 않는 바지를 갖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돈에게 절망적인 마음을 품게 됐으려나요? 다른 이유일까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게 처음 기억이에요. '돈'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첫 기억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