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 얘기해도 될까요? 조심스럽고 망설여지긴 해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저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요 사실 엄마에 대한 원망도 함께 떠올라요. 저희 엄마가 나쁜 엄마는 아니거든요? 근데 제 옛 기억들을 말할수록 자꾸 제가 저희 엄마를 나쁜 엄마로 몰아가는 거 같아서요. 이제 엄마에 대한 원망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이유요? 음.. 그냥 이제 그 정도는 알 것 같아서요. 엄마를 원망해 봤자 상처받았던 내 마음이 회복되는 게 아니라는 것, 내 상처는 내가 돌봐줘야 한다는 것을 알겠어요. 그렇다고 제 마음속에 있는 어린 자아가 상처를 회복하고 성장한 것은 아니지만 머리로는 알겠어요. 그리고 정말 저희 엄마가 나쁜 엄마는 아니에요. 엄마의 삶도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가고요..
처음에 해방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엄마도 떠올렸어요. 근데 엄마에 대한 기억과 제 마음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면 결국 '돈'이 문제였던 거 같아서 해방의 첫 주제로 '돈'얘기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제가 엄마에게 가장 괴로웠던 기억은 성인이 됐을 때였어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던 동생에게만 좋은 것들을 사줘서 제가 늘 동생에게 사정해 가며 빌려 입고 몰래 신고 나갔던 기억들도 속상했지만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거든요. 근데 제가 임고 준비를 하던, 제 인생 가장 암울했던 1년, 스물여덟 살, 엄마와 아침마다 싸웠던 그 시간들은 엄마와의 가장 괴로운 시간으로 남아있어요.
왜 싸웠냐고요? 저는 엄마랑 자주 싸우는 그런 딸이 아니에요. 순종적인 편이에요. 다만 저를 억울하게 만드는 포인트를 엄마가 건드리면 결국 참지 못해 폭발하곤 했어요. 처음엔 그냥 침대 끝에 엄마가 앉아 이야기를 하며 시작해요. 주로 엄마 인생에 대한 한탄이었어요. 아빠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해서 다른 집 자식들과의 비교 이런 것들요. 전 책상에 앉아있고 뒤를 돌아봐 엄마의 이야기를 듣곤 했죠. 제가 순종적인 편이긴 한데 살가운 딸은 못됐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 편은 잘 안 들었어요. 그리고 아빠에 대한 엄마의 불만은 저를 불편하게 했어요.
그리고 제가 참을 수 없었던 저의 억울한 포인트는요 '내가 가장 덜 받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 였어요. 그럼 엄마 역시 더 화가 나셔서 늘 제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너는 돈으로 해주지 못해서 그러는 거야. 엄마가 돈이 넉넉해서 네가 원하는 거 다 해줬으면 안 이럴 텐데 우리 집에 돈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럼 저는 늘늘늘늘 항상항상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돈이 다가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돈이 다가 아니었다는 제 말은 진심이었어요. 난 가난해도 괜찮았어요. 정서적 공감과 지지를 더 받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 집보다 형편이 훨씬 더 어려워도 화목한 집 많다고. 엄마의 그 잘난 친구 딸들도 그런 거 아니겠냐며 울부짖었죠. 아마 어느 날은 돈이 아니고 마음이라고! 외쳤고 또 어느 날은 분노와 슬픔으로 꾹꾹 참았던 거 같기도 해요.
'내가 가장 덜 받았는데' 이 말이요.. 참 유치하기도 하고 제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거 같아 창피하기도 한데 말이죠, 사실 아직도 회복이 덜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해방돼야 한다는 거예요. 가장 덜 받은 건 정서적 지지라고 생각했는데요 엄마가 '돈' 때문이라고 말한 거, 그거 맞는 거 같아요. 결국 마음도 '돈'으로 표현되는 거잖아요. 엄마 말대로. 정말 엄마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게 진리인가 봐요.
전 엄마 말에 굴복당했어요. '돈'이 아니라 '진심'이라 생각했는데 엄마 말대로 '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