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순이 : 어른들을 위한 동화 (3)

[Three pack] 반짝반짝 작은 별

by 일주일의 순이

[Three pack] 반짝반짝 작은 별


유달리 검은 몸을 가지고, 유별나게 빛나는 것을 좋아하는 모순된 습성을 가진 동물.


지독히도 가난했다. 모에의 부모는 깊은 산 중에서도, 다른 나무에 치대져서 햇빛 한 번 제대로 못 받은 나무에 쭉정이로 둥지를 짓고 살았다. 세상이 우리를 일컬어 효가 깊은 새라고 하는 말들이, 늙은 부모에게 새끼 까마귀가 먹이를 잡아다 주어야 한다는 전통이 모에에게는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당연스럽게 자식에게 주었던 부모지만, 당연스럽게 자식에게 받는 부모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모에가 부모에게 받은 유일한 재산은 다른 까마귀들에 비해 짙은 보라색 광택이 흐르는 아름다운 털빛 뿐이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수컷 까마귀들의 구애를 받았지만 모에는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다. 스스로가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모에는 자신을 위해 가장 크고 튼튼한 집을 지어오는 수컷에게 가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인생 단 한 번의 짝짓기 기회였다. 다른 암컷 까마귀들이 벌레를 잡으려 땅바닥에 부리를 처박을 때 모에는 썩은 동물의 시체를 파먹으면서도 부리가 긁히지 않도록, 깃털이 상하지 않도록 치장에 온 힘을 힘썼다. 반짝여야 했다. 빛나는 것을 좋아하는 까마귀의 습성은 반드시 모에의 반들거리는 털빛을 선택하게 할 것이다.


“콰콰콱! 콰아! 콰아!”

무리에서 덩치가 가장 큰 수컷 오딘은 한껏 구애 행동 중이었다. 높은 나무 꼭대기에 웅장하게 지어 놓은 오딘의 둥지는 암컷 까마귀들이 오히려 구애를 적극적으로 바랄 만큼 멋진 것이었다. 오딘은 그런 본인의 능력과 인기를 충분히 즐겼다. 자랑하듯이 힘있는 소리로 다른 수컷의 기를 죽이는 것도 하루의 일과였다.

“어? 못 보던 털빛인데?”

오딘은 목청껏 내지르다가 숨이 턱 막혀 오는 것 같았다. 모에가 막 깊은 산에서 날아 내려오던 중이었다. 모에는 오딘의 시선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일부러 볕이 잘 드는 가지에 앉아 묘한 털 색이 가장 잘 반사되도록 꼬리깃까지 힘주어 펼쳤다. 오딘은 자신도 모르게 그 옆에 날아가 앉았다. 한 걸음 더 가까이, 한 번 더 가까이. 모에는 다가오는 오딘과 그 뒤편 둥지를 바라보며 직감했다. 드디어 짝을 만났구나.


“까아, 까아, 까까”

오딘은 능력있는 까마귀였다. 사람사는 마을까지 내려가 온갖 빛나는 것을 물어왔다. 크고 튼튼한 둥지는 오딘이 가져오는 거울과 돌, 단추들로 가득 찼다. 모에는 지극했던 가난의 시절을 보상받는 듯이 빛나는 것들을 사랑했다.

“오딘, 고마워요. 그런데 이번에는 투명하고 빛나는 것을 갖고 싶어요.”

“아… 그것을 가져오다가 사람들에게 들키면 나는 총에 맞을 수도 있어.”

모에는 아름답고 빛나는 자신의 모습에 점점 도취되어 갔다. 둥지와 깃털은 온통 번쩍거리는 것들로 장식했고, 생각과 관심은 어떻게 하면 더욱 빛날 수 있을까 하는 것 뿐이었다. 오딘은 힘은 들었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둥지와 짝을 가졌다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모에의 그런 허영심도 맞춰 주었다.


“모에, 오늘은 자갈밖에 못 가져왔어. 요새 바빠서 마을로 내려갈 시간이 없더라구.”

오딘은 아름다운 모에를 남들에게 내보이기는 자랑스러워했지만, 사실 둥지에 돌아오면 모에의 끝없는 요구에 점점 질려갔다. 제아무리 예쁘고 빛나더라도 매일 보는 보석이 언제나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오딘의 둥지가 화려하게 빛날수록 다른 암컷 까마귀들은 더욱 오딘의 마음에 들고자 꾸미고 치장했다.

“저 둥지의 안주인이 언제까지나 모에라는 법은 없잖아?”

그런 다른 암컷 까마귀들의 속삭임은 모에를 불안하게 했다.

‘오딘은 아름다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니 나는 더욱 빛나야 해. 더욱 예뻐야 해.’

오딘의 마음이 식을까 걱정된 모에는 더욱 치장에 몰두했다. 더 많은 돌과 보석이 필요했고, 오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까아아악! 어디예요, 오딘! 까아악!”

빨리 돌아 오라는 재촉은 오딘을 더욱 늦게 오게 했고,

번쩍이게 꾸미는 데에만 몰두한 모에의 모습은 눈이 피곤해져 보기 싫어졌다. 까마귀가 열 두 번 울어도 까옥 소리 뿐인 법이었다.


오딘은 그 날도 늦게 들어와 바로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오딘의 죽지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발견한 모에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내일 나를 주려고 가져온 것이구나. 처음 본 것처럼 기뻐해줘야겠다.’

오딘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보석을 꺼내 보던 모에는 갑자기 입을 틀어막으며 ‘깍’ 소리를 삼켰다.

‘사랑하는 아호라, 우리의 100일을 축하하며.”

모에의 손이 덜덜 떨렸다. 심장이 내장과 식도를 오가며 펄떡거렸다. 오딘을 깨워 이게 뭐냐고 그 면상에 보석을 던지며 소리지르고 울부짖고 싶었다. 당장 ‘아호라’라는 이름의 까마귀를 찾아 깃털을 다 뽑아 버리고 싶었다. 100일이나 지나도록 그 두 조류의 짓꺼리를 눈치 못 챈 등신 같은 육감을 저주했다.


하지만 모에는 그 중 어떤 행동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오딘을 깨워서 선택의 극한으로 그를 몰면, 신뢰를 깬 자의 대접을 받으며 모에와 사는 것 보다는 새 암컷에게 날아가 버리는 결정을 할 것 같았다. 버림을 받는다면… 반짝이던 나의 생활, 튼튼한 둥지, 신선한 먹이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단지 하얗게 사라진다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시꺼멓게 썩고 처절하게 가난한 옛 둥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 번 겪은 이에게 가난은 공포였다.


모에는 조심스럽게 오딘의 죽지에 보석을 도로 집어 넣었다.

그 순간 오딘이 번쩍, 눈을 떴다. 보석을 제자리에 넣고 있는 모에와 오딘의 눈이 서로마주쳤다.

오딘은 다시 눈을 감았다. 모에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오딘은 투명하고 빛나는 보석을 둥지에 가져와서 던져 놓았다. 모에는 가만히 보석을 끌어 안았다. 오딘은 이제 보란듯이 늦고, 보란듯이 빛나는 돌을 죽지에 넣고 들어왔다가 그대로 가지고 나갔다. 그런 다음 날은 모에에게도 자갈을 던져 주고 갔다.

모에는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했고 세상 누가 보아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삶이 반짝이지 않으면 인생은 광채가 날 수 없었다.


‘아호라’는 오딘에게 곧 잊혀졌다. 하지만 곧 ‘루카’가 오딘의 보석을 받았고, ‘랄루’도, ‘자밀’도 받았다. ‘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딘은 돌과 보석을 들고 그저 빛나는 것을 좇을 뿐이었다. 외면을 덮은 깃털의 반짝임은 쉽게 다른 깃털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딘의 마음을 잃은 것 뿐인데, 모에는 스스로의 매력과 가치를 잃은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리 많은 보석이 서로 빛을 자랑해도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은 피로감을 더할 뿐이었다. 모에는 다시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수동적인 반짝임은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았다. 밖에서 빛내는 것을 보지 않자 내면의 빛이 희미하게 모에의 눈에 들어왔다. 모에의 젊음, 나 다웠던 당당함, 다른 이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자존감.


오랜만에 모에는 털을 빗고, 넓고 높은 오딘의 둥지에 홀로 앉아 골짜기의 계곡물을 바라보았다. 튼튼하고 큰 둥지가 없어도 아무데로나 흘러가 부숴질 용기있는 물비늘들이 햇빛에 비추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모에의 발가락부터 죽지깃까지 온 몸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에는 둥지를 박차고 날았다. 퍼덕이는 날개짓에 거추장스러운 보석과 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쏜살같이 계곡을 향해 날아가는 모에의 등에 햇볕이 짙은 보라색 깃털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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