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순이 : 산에 끌려갔습니다 (3)

실례 실례합니다

by 일주일의 순이


산에 간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분명히 대한민국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지만 산 아래 세상과 산속 세상은 다른 곳이다. 그게 비록 동네 산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주 간단하게는 물을 구하는 문제부터 시작된다. 계곡물을 마시면 될 것 같지만 실상 계곡물에는 굉장히 많은 기생충 알이 있고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정말 비상 상황이 아니고서는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옹달샘이나 약수터가 있지 않나? 모든 산에 약수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 해의 강수량에 따라 약수터가 마르기도 한단다. 즉, 내가 산에서 마실 물은 내가 짊어지고 올라가야 한다는 뜻! 그런데 말입니다. 물이 정말 정말 정말 무겁다. 겨울에는 그냥 물을 가지고 가면 얼기 때문에 보온병에 넣어가야 하는데 그렇다면 더 무겁다. 산 아래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물이 산속 세상에서는 귀하디 귀하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산에서 물을 나눠주었다면 그건 아마 사랑 고백일 거다.


산에서 물을 구하는 것만큼 힘겨운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화장실이다. 온 세상이 자연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어디서도 속 시원하게 말한 적 없는 이야기를 대담하게 해 보겠다.


사실 화장실 문제는 여자들에게 더 큰일이다. 남자들이야 살짝 까고(?) 재빠르게 처리하면 되지만 여자들은 사정이 다르다. 궁둥이를 훤하게 드러내고 무릎 아래까지 바지를 내리고 쪼그려 앉아 일을 처리하려면 여러 가지 문제 상황에 봉착한다.


우선, 장소 문제이다. 속리산 국립공원 최단 코스인 화북 코스를 기준으로 빠르게 잡아도 5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주차장부터 문장대까지 화장실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정은 계룡산 국립공원도 마찬가지고 동네 작은 뒷산은 말할 것도 없다. 등산 중에는 물을 많이 마시니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처리할 공간이 없다. 아무 데서나 눌 수도 없는 것이 사람들의 방문이 많은 코스라 앞 뒤로 사람들이 금방 따라붙는다. 아무리 급해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격과 체면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낯선 사람 앞에서 알 궁둥이를 보이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계절에 따라 어려움도 조금씩 달라진다. 여름에 졸졸거리는 계곡 옆을 지날 때면 엄청난 인내심과 괴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차라리 소나기가 내려 함께 쓸려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겨울에는 숲이 우거지지 않아 나무들이 모두 휑하니 가지만 남아있다. 다시 말해 내 궁둥이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여름에 비해 땀이 많이 나지 않고 추워서 더 자주 요의를 느낀다. 옷은 또 어찌나 두껍고 날씨는 얼마나 추운지. 바지를 내리는 순간, 궁둥이가 얼어붙어버린다.


또, 만약 굉장히 은밀하고 좋은 장소를 찾았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맨 궁둥이를 자연에 맡겼을 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곳에는 뱀, 벌레, 모기, 파리, 독을 품을 풀이 잔뜩 있는 곳이다. 언젠가 가을에 풀 독이 올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어디서도 밝힐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까지는 작은 일을 실례실례하는 경우만 말했지만 큰일이 필요하다면 진짜 진짜 큰일이다!!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 장소도 더 구하기 힘들 테고. 더 큰 문제는 산에는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 온 듯 돌아가셔야 하는데 나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는 그것까지 챙겨서 나의 식량과 물이 들어있는 가방에 함께 넣어가려면 등산 내내 나의 향기에 취해버릴 수 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몇 가지 대비책을 마련하게 됐다. 우선, 출발 전에 무조건 화장실에 간다. 쥐어짜서 끝까지 밖으로 내보내고 전날 저녁과 당일 아침은 절대로 과식하지 않는다. 아침 커피도 방광을 자극하므로 되도록 피한다. 그리고 각 산마다 후미지고 구석 진 그 어딘가를 눈여겨봐 둔다. 또 등산 가방 안에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깜장 봉지를 여러 장 넣어두었다.


여러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위급 상황이 생긴다면 태초 자연인으로 돌아가려는 큰 용기가 필요하겠다. 아. 역시나 먹고 싸는 이 간단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