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이 : 내가 만난 사람 (3)
나의 첫 제자를 생각하며
얼마 전 만남에서 내가 가르쳤던 제자 이야기를 했다. 한 때 정말 잘 나갔던 아이돌 가수 멤버인 아이를 이야기했는데 내가 가르쳤던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라 아직도 신기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이야기하고 자랑하고 싶은 아이는 따로 있다. 그 아이를 그냥 가끔 혼자 생각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첫 제자. 그냥 쉽게 이야기하기에는 조금은 아까운 아이. 누구보다 잘 되길 바랐던 사람이 나라는 걸 그 아이는 알고 있을까?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2022년 내가 처음 교사가 된 해이다. 어리버리하지만 과도하게 잘 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던 나는 반 아이들과 서툴게 1년을 보냈다. 지금 같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그땐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들이 밉기도 하고 학교 가기가 싫을 때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마음에 여유가 많이 없고 잘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선생님으로 온전히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오늘 이야기하려는 아이가 그렇다. 늘 바보처럼 착하게 행동하고 예의바르고 착했던 그 녀석(지금부터 그 아이를 J라 부르겠다.). 벌써 서른이 훌쩍 넘었을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J는 내가 알았던 아이들 중 제일 착하다. 그건 아직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청소할 때 대걸레를 두 개 잡고 열심히 교실을 밀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항상 인사를 먼저 하고 멋쩍으면 머리를 긁적였던 모습도 생각난다.
그런데 그렇게 순진하고 바보스러울만큼 어리버리한 면이 있었던 J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2학년 아이들이 야영에 가서 장기자랑을 하던 때였는데 J가 듀엣으로 나와 당시 유행곡 유엔의 ‘선물’을 너무 잘 부른 것이다.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 입이 딱 벌어져 홀리듯이 들었었는데 담임인 나는 그 전까지 노래를 J가 그렇게 잘 부르는지 몰랐다. 마음에서 노래가 나온 듯했고 나는 뜨거운 가슴으로 그 노래를 들었다.
J는 사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엄마와 단 둘이 살았는데 아빠가 집을 나갔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엄마가 숨기시고 아빠가 외국으로 돈을 벌러 갔다고 하셨다고 했다. 아 어쩌자고 그런 거짓말을 하셨나. 아이는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이 걸 뭐라고 해야하나..그래서 J에게 나도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J와 추억 중 하나는 2002월드컵 경기를 같이 보러 간 것이다. 당시 월드컵을 개최한 우리나라는 비인기 경기 티켓을 학교에 조금씩 주었는데 나에게 학교에서 경기관람하고 오라는 것이다. 단 티켓은 딱 2장(축구경기를 교사 1명과 학생1명이 보라니 이건 좀 너무 했다.)으로 학생 1명을 데리고 가라는 것인데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가라고 학교에서 제안을 했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다고 말을 하기는 힘들어서 원하는 사람을 먼저 후보로 놓고 최종 가위바위보로 결정을 했다. 그렇게 해서 J가 선택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린 수원까지 가서 우루과이와 세네갈 전을 보게 되었고, 가다가 냉면도 먹고 오다가는 햄버거도 먹으면서 오후를 같이 보냈었다.
한 해를 보내고 3학년이 된 J는 갑자기 우리 학교의 인기스타가 되었다. 당시 나는 1학년을 맡고 있었는데 1학년 여학생들 사이에서 잘 생기고 노래 잘하는 오빠로 통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끔 만나는 J를 보고 소리를 질렀고 그걸 보는 나는 웃기면서도 새삼 J가 잘 생겼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인기를 누리던 J가 갑자기 교무실에 수줍어하며 들어왔다. 내 생일이라며 볼펜이랑 이것저것을 용돈으로 사온 것이다. 아마 우리 반 여학생들에게 들어서 생일인걸 알게 되었었나 보다. J의 수줍은 선물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J는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고 자연스레 잊고 지내고 있던 어느 날 학교에 어느 날 작은 소동이 있었다. 울 학교 출신 누군가가 케이블 청소년 드라마에 나오는데 오늘 온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교문에서 시끌벅쩍하며 기다리고 있던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누군지 궁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J가 아닌가? J가 드라마에 나온다고? 어떤 일이지? 알아보았더니 길거리에서 캐스팅을 당했고 음반 제작을 준비하던 차에 드라마에 먼저 캐스팅이 되었다는 것이다. 암튼 뜻밖의 소식이어서 놀랐지만 내겐 너무 기쁘고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J는 드라마 재연 배우로, cf로 조금씩 활동을 해 나갔고 나는 유명한 제자라며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자랑을 한참 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한 켠으로는 가수로 데뷔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아 좀 불안했다. 노래를 잘 하던 아이가 왜 연기만 하는 건지 궁금했다.
그 뒤로 J는 주말 아침에 하는 청소년 드라마에 주인공까지 맡게 되었고 나는 주말 늦잠을 포기하고 끝날 때까지 열심히 보았다. 당시 방송국 견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당당히 큰 포스터에 나온 J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에게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J는 드라마나 광고에서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알아낼 길도 없었다. 게다가 나도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바쁜 삶을 살며 점점 J를 잊고 지냈다.
다시 J가 나에게 각인된 것은 3년 전쯤이다. 밴드를 통해 같은 활동을 하는 어떤 분의 카톡 프로필에 J의 이름과 노래가 떡하니 올려져 있는 것이다. 심지어 너무 좋아하는 노래고 가수란다. 와, 이리 반가울수가. 결국 음반을 냈었구나 싶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렇지만 나는 음반을 낸지도 모르고 J를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항상 응원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내 삶을 정신없이 사느라 놓치고 있었구나.
또 시간은 지났다. 이제 세상은 J의 이름은커녕 그의 연예인으로의 활동도 기억하지 못할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탤런트도 가수도 하기 힘들 나이로 냉혹한 그 세계에서 버티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삶을 찾아 지내고 있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다. 이제 J도 그 옛날 쑥스러워하며 나를 부르던 그 소년은 아닐 것이고 어엿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J를 기억하는 건 내 신규 시절 나의 미숙함을 따스하게 바라봐주고 선생님이라고 누구보다 많이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J가 아니였으면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렸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20년 전 나의 한 켠의 기억에 제자가 한 명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이젠 부디 J가 다른 즐거운 일을 찾아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길 간절히 바란다. 내가 아는 가장 착하고 노래를 가장 잘 불렀던 나의 첫 제자 J.
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언제나 생각날 때마다 응원할 것이다. 부디 건강하게 꿋꿋하게 인생의 주인공으로 잘 살기를..힘들때는 노래 한 번 부르며 또 이겨내기를..자기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가끔은 알고 힘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