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순이 : 캐나다 5년 살이(3)

시선의 변화

by 일주일의 순이


한국에 오기 직전에 캐나다에서 5년의 시간을 보냈던 나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다만, 그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갈팡질팡했다. 캐나다 5년 살이라는 주제로 그에 맞는 내용의 글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제목은 글의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왔다. ‘캐나다 5년 살이’라는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글이 캐나다에서의 삶과 일상이 묻어나고,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캐나다 생활이 녹아있으리라고 언뜻 생각할 것 같다. 쓰다 보니 나의 캐나다 5년 살이 글은 방향이 이와는 좀 다르게 흘러가고만 있다. 결국 내게 지금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다. 캐나다 5년 살이를 하면서 내가 하게 된 생각들. 내가 느낀 감정들. 일상과 닿아있어 평범하면서도 나라서 더 절절히 느끼게 되었던 것들에 대해서 쓰고 있다. 결국, 캐나다에 살면서 내가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고, 그 시선의 변화에 대해서 쓰고 싶었음을 글을 쓸수록 느꼈다.



캐나다에 가기 전과 지금은 연속적인 5년의 시간의 선상에 놓여 있지만, 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연속 선상에서 아주 조금씩 방향이 틀어졌다. 지금은 전혀 새롭게 바뀌었다. 마치 기차 철로가 조금씩 휘어져 방향이 바뀌어 가듯이. 캐나다에서 지낸 5년의 시간들이 어떻게 빚어져 나에게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딱 떨어지는 뾰족한 이유는 찾아지지 않았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 내려 생각을 할수록 다양한 사건들이 뒤죽박죽 뒤섞이기만 할 뿐 내 머릿속 생각은 구획을 나누듯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생각하고 정리해 가며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지금은 그 세 번째 글이다. 일주일의 순이 브런치글에는 목순이라는 이름으로 6회분이 게재될 것이지만, 그 이후에도 나의 5년의 시간들과 내 시선의 변화에 대해서 글쓰기로 정리해 나갈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나의 일상은 고요하고 단조로웠을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들은 내가 ‘운도 좋고, 편안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며, 걱정 하나 없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밖에서 비추어지는 나의 이미지는 그렇다.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 그런 이미지로 비치는 내가 힘듦 하나 없을 것 같은 일상을 보낸 캐나다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폭풍 같은 감정을 느끼며 너무 많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했다.



캐나다에 도착해서 여성과 노약자의 대우에 대해 놀란 첫날. 그다음 날부터 현실은 다시 내게 익숙한 일상이었다. 캐나다 입국 후 오롯이 남은 것은 남편과 나와 아이. 남편은 회사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나는 그 낯선 곳에서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며 적응해 나갔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나는 아이를 위한 어린이집과 학교를 알아보고 등록했고, 둘째를 낳기 위한 병원을 세팅하고, 새로 산 차로 눈길을 운전하며 그곳의 지리를 익혔다. 구글을 통해서 정보를 찾고 정리했다. 미국에서의 3년의 시간과 여러 차례의 해외여행 경험. 그리고 나의 천성으로 낯선 곳에서의 적응은 그렇게 큰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캐나다에 도착하고 두 달 정도 후에 이삿짐이 왔다. 남편이 미국에서 첫 이사 때 “이사는 여자 일”이고, 이 집에 있는 짐은 다 “너 짐”이라고 못밖았고, 나는 만삭의 몸으로 혼자서 4일 만에 모든 이삿짐을 푸르고 정리했다. 그래야 그다음 주에 친정 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러 캐나다에 오시고, 나는 둘째 출산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남편은 회사일과 회사 사람들과 술자리, 자신이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자신만의 여가 활동을 해야 했다. 가정일은 여성의 일이고, 자신은 너무 바빠서 나와 아이에게 관심을 쏟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며, 이삿짐을 다 푸르고, 음식을 하고, 장을 보고, 운전을 했다.



나는 출산 이후에 남편과 아이를 위해 내 사회생활은 뒤로 미루고 살았다. 여성으로 현모양처로 사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친정 엄마는 나에게 집에서 아이 키우고 남편 내조하고 너의 사회생활과 관련된 일은 쉬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일을 하고 출근을 해도 일주일에 네 번을 술을 마시러 나갔다. 자기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것을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초보 워킹맘으로 몇 달 내 며칠 빼고 감기를 달고 살고, 조금 코감기가 심하면 쉽게 중이염에 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이 쉽게 나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케어하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자주 아프고 예민한 아이를 양가 부모님과 남편의 도움 없이 워킹맘으로 키우는 일이 나에게는 쉽지 않았기에 캐나다 가기 전 일 년 반을 휴직을 한 상태였다.



캐나다에 가기 전까지, 아니 캐나다에 가서도 나는 조금은 옛 세대인 부모님들로부터 여자로서의 도리와 태도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살았다. 자라면서 늘 들었던 이야기들은 남성의 권위에 따르고, 남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듣고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가정 내의 위계질서를 지키고, 부모의 말에 복종하고, 가정의 가장 어린 딸로 나의 주장은 이야기하면 안 되고, 부모님과 오빠의 이야기대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존재로 교육받으며 살아왔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 익숙했고,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부모님들의 생각들을 열심히 따르고 노력하며 살았다.



부모님이 시키는 모든 일을 했고, 내가 하고 싶지만 부모님께서 반대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부당함을 따져 물어봤자 아버지는 너무 무섭게 화를 냈고, 어머니는 불쌍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이야기대로 했다. 부모님께서 원하는 대로 착한 딸이 되어 여성스러움을 추구하고, 부드러운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치마를 입고 나를 예쁘게 가꾸고, 우아한 여자가 되기 위해 애썼다. 상냥하고 착하고 연약한 여자들, 드라마 속의 착하고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들처럼 되기 위해 나 자신을 가꾸고 치장하고 노력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았고, 부모님 마음에 들어 사랑을 받고 싶었다. 결국, 내 오랜 몇 가지의 꿈은 부모님이 원하는 딸의 직업에 묻혔고, 나는 내 마음대로 선택을 할 수 없는 30대의 여성으로 변해있었다.



되돌아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부모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 나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내 인생의 대부분의 결정에 해당했기에 결국 나는 내 인생을 내 결정이 아닌 부모님의 결정대로 살았다. 그런 결정의 문제에 대한 인식조차 없을 때, 내 주위에 가장 친한 친구는 말했다. “너는 진짜 너희 엄마 말을 잘 듣는 것 같아. 세상에서 엄마 말을 가장 잘 듣는 딸은 너야.”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고, 늘 웃으면서 응대했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것이 나에게 아주 큰 슬픔으로 변하게 될 줄은. 이러 관계에 익숙해진 나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 내가 결정한 것들을 늘 부모님 마음대로 다시 돼 바꾸기를 했기 때문에 늘 묻고, 부모님이 결정해 준 대로 따르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결혼한 남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이대에 비해 우리 부모님과 같은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던 남자였다. 내가 결혼한 남자는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해야 되는 성격의 남자였다.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자신의 기준과 어긋나면 용납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나에게 결혼 후 결정권이 없기는 결혼 전에도 마찬가지였어서 익숙했다. 내가 결정한 모든 것에 대해 제지당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사람들은 평생 가족 내에서 만나왔기 때문에 그런 남편의 행동은 익숙했다. 그래서 남편을 만나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신혼살림, 신혼여행지, 신혼 예물, 신혼집 모든 것을 남편이 정했다. 나의 의견을 말했을 때 남편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남편은 거절했다. 나는 그런 의사 결정과정에 익숙했지만, 마음으로 그 의사 결정과정이 싫을 때가 많았다. 그것에 대해 내가 불만이라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도 남편은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면 부모님은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남편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해.”라고. 남편과 나 사이의 의사 결정뿐만 아니라, 남편의 식구들이 하는 행동의 대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 달랐고,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다름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나의 의견이나 생각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남편과 결혼했다. 그래서 남편이 나에게 잘못했다고 말했기에, 나는 내가 잘못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남편이 하자는 대로 남편이 하라는 대로 맞추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내가 잘못이라는 말이 억울했다. 그래서, 신혼 초에 이혼을 결심했으나, 오히려 엄마는 남편 편을 들었다. 그냥 맞추고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하고 살라고 말했다. 내가 이혼하면 엄마가 창피하다고 했다.



캐나다에 가기 직전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혼자 결정을 잘 못 내리지?” 나는 늘 결정을 잘 내리지 못했다. 너무 오래 고민하거나, 결정하기가 겁나서 결정을 미루곤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캐나다에 가기 전에 가졌던 이 의문은 꼬리에 꼬기를 물고 나에게 질문이 생겨났다. 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끊임없는 독서, 캐나다 사회의 모습과 관점들, 그리고 캐나다에서 만나서 알게 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그들의 인생살이와 일상은 남편과 부모님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파헤치게 되는 기준과 관점과, 거울이 되었다. 나는 결혼 이후에 나의 남편사이의 관계 맺음이 늘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좋은 부부관계를 갖기 위해 여러 가지 책들을 읽어보았고, 남편에게 맞추고자 많이 노력했으나 늘 끊이지 않고 문제가 생겼다. 그래도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으로 계속 책을 찾아 읽었다. 작년 재작년에는 심리학 책과 몇 가지의 논문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끊임없이 나와 부모님,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멀리서 관찰하고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 시간들이 내가 캐나다에서 보낸 5년의 시간이다. 물론, 5년 내내 그 생각들만 하지는 않았다. 일상을 살면서 생기는 관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틈틈이 구멍 난 있던 퍼즐들이 맞추어져, 몇 년에 걸쳐 나와 부모님,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 관계의 커다란 배경에는 한국의 사회문화 역사적 배경도 자리 잡고 있음을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자체는 나에게 참 아팠다. 이해하고 받아들일수록 지난 내 시간들이 가슴 아팠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폭풍의 시간들을 지나서 지금은 약간의 고요와 평화의 시간도 만나고 있다. 그리고 남은 나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도 동시에 생겼기에 기쁘다. 이런 생각의 과정들을 부모님과 남편에게 설명했었지만, 남편과 아버지는 확실하게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그동안 착한 아이처럼 자신들의 말을 참 잘 듣던 부인과 딸이 변했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생각이 맞기 때문에 내 생각은 틀리다고 말한다. 내 생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원래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면서 변화하는 것은 아닌지. 난 관계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히려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관계는 자연스럽지 못하게 남을 뿐 상생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자연의 변화는 무던하게 받아들이는데, 왜 사람 사이의 관계의 문제나 타인의 변화에 대해서는 무던하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결국 인간 사이의 관계의 변화든 개인의 생각의 변화든 그냥 자연의 일부로서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인데. 자연스럽게 변하는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도 대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캐나다에서 겨울에 로키 산맥을 바라보며 운전을 자주 했었다. 그럴 때마다 자연이 얼마나 대단하고 큰지 느껴진다. 그렇게 운전하는 시간 동안은 내 고민들이 정말 먼지처럼 작아져서 둥둥 떠다니는 가벼운 일들로 보인다. 그래서 겨울에 로키로 혼자 드라이브를 많이 했었다. 왕복 220킬로미터. 그렇게 운전을 신나게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 자연스러운 내 생각의 변화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을 대하는 것이 힘들었고, 그 관계를 조금은 멀리서 가볍게 바라보고 싶었던 마음을 가득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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