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정리를 하고 살아야 할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만큼 많다. 하지만 그 많은 이유들도 내 게으름을 이기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게으른 건 알았지만 그게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건 어른이 된 후였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정리로 고민한 기억이 없다. 결혼 전 혼자서 살던 시절부터 조금씩 지저분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일이라 가끔 집을 치우긴 했지만 그건 어쩌다 한 번 있는 행사 같은 것이었다.
결혼 후 엄마가 되고 나니 청소나 정리를 미룰 수가 없었다. 자라나는 아이들 물건이 계속 늘어 집은 청소만으론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마지못해 곤도 마리에의 책으로 정리를 배우고 소위 정리정돈전문가라는 사람의 강의도 들었다. 집을 비우고, 정리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물건마다 정리하는 법도 배웠다. 때마침 미니멀라이프가 트렌드가 되었다. 신박한 정리라는 TV프로그램을 한 회도 빼지 않고 열심히 보기도 했다. 단순히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에서 벗어나 공간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 죽은 공간이 없이 온 집을 활용하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하는 법을 습득해 자신이 생길 무렵 이사를 했다. 배운 대로 일단 버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온 가족의 안 입는 옷과 소장하지 않을 책들을 먼저 버렸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당장 쓸모없는 것들도 찾아내 버렸다. 그렇게 버린 짐이 1톤 트럭 정도였다. 추가로 이사 온 집에서도 꽤 많은 양의 물건들을 버렸다. 그 뒤엔 수납공간마다 내용물을 간단히 알려주는 스티커도 만들어 붙였다. 정리 정돈이 어느 한 사람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러려면 온 가족이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의 우리 집이 깨끗해졌냐고? 그렇다면 P가 아니지. 예전에는 정리하는 법을 몰라서 그랬다는 합리화라도 했지만 그건 이제 나를 기만하는 일이었다. 깨끗해진 상태가 좋은데도 정리하는 건 싫었다. 어질러진 것들을 바로바로 치우면 금세 깨끗해질 텐데 찰나에도 미루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루하루 사는 게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정리를 미루니 너저분해진 집을 치우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특히 P들은 어떻게 살까 궁금했다. 집정리 하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진 않은데 날 부지런하게 만들 방법은 없는 걸까? 그냥 P에게 정리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내 마음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 어쩌면 정신건강에 좋은 일이 아닐까?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었다.
실은 우리 집을 보면 늘 심난해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리를 잘하는 친언니다. 언니는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걸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가끔 언니가 우리 집에 오면 죄지은 사람처럼 나는 눈치를 보고 주눅이 들었다. 언니가 우리 집에 오는 일은 되도록 없게 했다. 그런 언니가 40대 후반이 되자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모든 걸 너무 완벽하게 잘 해내려는 성격이 병을 부른 건 아닌지.
나는 언니에게 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다. 조금 지저분하게 사는 게 낫지 아픈 건 싫었다.
나와 남편은 모두 P이다. 그래서 지저분한 집이 싸움거리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 지저분한 딸 방을 보며 날마다 잔소리를 하고 있다. 나는 기로에 서 있다. 애써서 나를 바꿔야 하느냐, 아니면 그냥 대충 내키는 대로 살 것인가.
물론 두 가지 모두 편한 길은 아니다.
갈팡질팡 불확실한 상태가 가장 힘들다.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