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온 조개
올 여름 우리의 행복 저장 1호는 세화 바다에서 캐 온 조개이다. 제주에서 돌아온 다음 날 예쁜 옷을 입고 우리집에 머물고 있는 조개들. 가끔 꺼내보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조개들은 우리에게 작지만 소중한 존재가 되었음을 느낀다.
언젠가부터 세화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잠시 쉬다 모래놀이를 하며 조개를 하나씩 발견했다. “엄마, 조개를 찾았어!” 하면서 내민 손 안에 든 조개는 제법 컸고 깨끗하고 예뻤다. 하지만 어쩌다 한두 개 발견한 살아있는 조개를 숙소까지 가지고 가서도 그냥 버리고 말아 마음이 쓰였다. 굳이 가져오지 말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꼭 간직하고 싶대서 그럼 올 해는 조개를 가지고 오면 잘 간직하자고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그렇게 가볍게 약속한 것이었는데 상상 이상의 많은 조개들이 우리들에게 올 줄이야…….
보통 우리는 아침을 먹고 잠시 쉬다 12시가 가까워지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에 나갔다. 그런데 제주에 온 이튿날은 오전에 외출을 잠깐 하고 오느라 좀 늦게 바다에 갔더니 금세 밀물 시간이 되어 모래사장에 파도가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그때 즈음 아들은 조금씩 밀려드는 파도에 모래가 씻겨나가는 리듬에 맞춰 열심히 모래를 파더니 제법 큰 조개를 발견했다. 연이어 아들이 조개를 또 캐자 딸들과 나는 급 조개 캐기에 합류했다. “찾았다!”, “나도 찾았어!”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듣자니 나도 마음이 분주해졌다. 밀려드는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그리고 빠르게 모래를 파다 보니 조개가 한두개씩 손에 잡혔다.
작은 조개, 큰 조개, 무늬가 독특한 것, 깨끗하고 하얀 것. 손에 잡힌 조개들을 보자니 초등학생이던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바다를 막아 세운 둑방길 수문 다리 밑에서 조개를 캐려고 물속에 들어갔던 ‘어린 나’가 떠올랐다.(꽤 여러번 도전했지만 어릴 적에는 조개를 캔 기억이 없다.) 그 시절 조개 하나라도 찾고 싶어 바지를 걷고 무릎까지 찬 물 속에서 조개를 찾으려 허리를 숙였던 기억이 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까. 그 날 갑작스런 소나기만 아니었으면 아마 어린 시절의 아이가 되어 모래가 다 잠길 때까지 조개를 캤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우리를 진정시킬 비가 내려서 급하게 숙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각자의 손에 예쁜 조개 2개씩 꼭 쥐고서.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리는 조개를 찾았지만 그 날처럼 많이 캐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아쉬워하며 마지막 날까지 모래를 열심히 팠지만 우리의 욕심을 채워줄 조개는 나타나 주지 않았다. 우리가 제주에 대한 추억을 간직할 만큼만 조개를 가져오게 되었는데(사실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다행인 것 같다. 조개의 일상에 끼어들어 마음대로 휘젓는 인간의 손길에 멈춤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갑작스럽게 내린 비도, 더 이상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조개도 그만 하라는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다.
3일 동안 캔 조개를 바닷물이 담긴 통에 잘 넣었다가 서울 오기 전 휴지에 싸서 트렁크에 넣었다. 집에 도착해서 너무 더워 짐정리도 제 때 못하고 한참 있다 열어보니 상한 냄새가 났다. 제주에서 삶아 요리를 했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하다 더 냄새가 나기 전에 조개를 일단 삶아서 살을 버리고 껍질을 닦아 놓았다. 조개 껍질을 분리하고 껍질에 새겨진 각자의 독특한 무늬를 가만히 보자니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와 파도와 모래의 흐름에 맞춰 새겨진 것 같은 무늬. 자연에 순응하며 단단하고 깨끗하게 자란 조개들. 그 조개들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도 제주의 추억을 저장하며 남은 계절을 잘 지내고 싶다.
아이들에게 조개 위에 제주의 이야기를 그려보자고 했다. 아는 지인에게 조개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아크릴 물감을 사면 되냐고 물었더니 펜으로 그리는 게 낫다고 해서 펜을 구입해 열심히 한라봉, 한라산, 바다, 해, 해녀, 하르방 등을 그렸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너무 신나했고 보는 나도 뿌듯하고 즐거웠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니 몽글몽글한 느낌이 든다.(나는 시범으로 하나를 먼저 그렸는데 제일 식상한 느낌이 든다.) 제주에서 돌아와서 제주를 추억하는 시간도, 그림을 그리며 웃고 아빠에게 조개를 보여주며 자랑하던 것도 우리 마음 행복 저장소에 저장!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개를 캐려고 친구들과 물속에 들어가곤 했던 ‘나’는 먹고 사느라 바쁜 가정형편 때문에 먼 곳으로 가족 여행을 한 번 가보지 못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여행을 꿈꾸는 사람으로 자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 5년 동안 제주를 다녀간다. 그리고 2023년 여름, 1986년도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과거의 ‘나’와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 둥이들은 함께 조개를 캐며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한다. 어릴 적 소망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동화 속 행복한 결말을 읽은 기분이랄까. 어쩌다보니 어린 시절 한 켠에 조용히 잠들었던 소원을 성취한 것만 같은 이번 여름은 유달리 더 애틋하고 웃음이 묻어나는 시간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