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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주일의 순이 Aug 23. 2023

수순이 : 비보호 좌회전(4)

적절한 시기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적절한 시기. 그 시기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비슷할 수도 아닐 수도. 어떤 사람은 앞의 차선에서 차가 빨리 달려와 그 차가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급하고 시간이 없어서 좌회전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차가 지나갈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기도 한다. 그 시기에 대한 판단은 경험이 알려줄 수도 있고, 직감이 알려줄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담은 글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 아닌지 모르겠다. 초보운전 때 비보호 좌회전을 해야 하는 타이밍을 잡는 것이 힘들었 듯. 나는 살면서 적절한 시기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늘 힘들었다. 지금이 그러한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이 과연 시의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 그럼에도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늘 한줄기의 희망을 바라 듯.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쓴다. 이 글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그 누군가에게라도 지푸라기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서이초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고, 교사들의 교권의 지위가 하락되어 여기저기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있는 동안 나는 계속 한국의 교육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고, 그 안테나를 통해 내가 접한 이야기들은 진짜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싶은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코로나가 터졌고 교사들은 갑자기 벌어진 예상치 못한 팬데믹에 대응하느라 고군분투했다. 한국 공립학교에서는 학교 급을 불문하고 아동 학대에 대한 애매한 기준이 여러 교사들을 곤란한 상황에 빠트렸다. 그런 이야기들은 해외에서 오래도록 아이만 키우던 나에게 가끔씩 경고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한국의 학교가 진정 그렇다면 현실의 교사들은 그런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과연 나는 그런 한국의 교육환경에 적응이 가능한 것인가.” 하지만, 대부분 그런 종류의 메시지는 순간일 뿐 내가 당장 만나고 있는 현실. 그곳의 일상적인 급한 이슈들에 쉽게 묻히곤 했다.

 

어쩌면 복직과 직응에 대한 불안감은 2월 말과 3월 초가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지난주에 올렸던 글(비보호 좌회전 3)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일들을 겪을 당시 나는 “이런 일이 나에게 왜 일어났나?”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들이 신문을 통해서는 익숙해도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흔히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몇 가지 사건들을 겪어내면서 나는 학교에 천천히 적응해 갔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담임을 하면서, 중2 세계사 수업을 7개 반을 담당했다. 중학교 2학년 세계사 교과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방대했다. 현재 중학교 아이들이 코로나를 겪으며 상대적으로 어휘력과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주위 선생님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기에 여기저기에서 세계사를 처음 배우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세계사라는 과목에 많이 긴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어휘력 부족은 이번이 특별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동안 모든 교직경력 기간 동안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의 어휘력은 아주 큰 차이를 보였고, 나의 사회나 역사 수업은 교과서의 기본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휘설명부터 시작하는 것이 수업의 기본이며 일상이었다.

 

세계사 교과서는 아이들에게 익숙치 않은 외국의 지역명칭, 사람 이름, 제도 이름이 한가득 쓰여있다. 그 단어들을 설명하고, 지리적 위치를 지도로 확인하고, 역사 인물의 동상이나 그림들을 함께 보면서 당시의 상황과 국제 정세 당을 담아 설명하려면, 일주일에 3번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만으로도 늘 부족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나는 45분을 아주 천천히지만 정성껏 온 힘을 다해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수업을 했다. 생각보다 학생들은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학기 초에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다소 딱딱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나의 수업을 적극적으로 경청했다. 나도 아이들이 익숙치 않았고, 몇 명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듯했다. 아이들을 만난 지 두어 달이 지나서 한 아이가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들의 지역 말투를 쓰지 않는 나에게 말투에서부터 거리감이 느껴졌단다.

 

내가 수업을 하던 지역은 한국의 남쪽에 있던 도시 중 하나였는데, 나는 그 도시로 몇 년 전에 시도 간 내신을 내서 전입해 갔다. 내가 결혼한 남자의 회사는 전국의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지방으로 이전을 했다. 한국에서 서울 이외의 지역이라고는 평촌에서 신혼 때 5개월을 살았던 경험이 전부인 나는 모든 지역이 다 서울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무작정 그곳으로 따라갔다.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시각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시각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부드러웠지만 예의를 지켰고, 다행히 대부분의 아이들도 나에게 예의를 지켜주었다. 교직 생활 중 가장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게 되었고, 교사를 하면서 이렇게 학생들에게 예의를 차려 대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올해 특이했던 것은 내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전교생이 전반적으로 수업 태도가 좋았던 학교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신문지상에서 이야기되고, 선생님들이 우려하는 것보다 나는 학교에서의 역사 수업 시간이 즐겁고 좋았다. 결혼 기간 동안 나의 육아와 가사노동이 그 누군가에 의해서건 상당히 축소되어 평가되었던 탓이었는지(어쩌면 가장 큰 주범은 나였을지도), 그 무엇보다 오랜만에 내가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정성껏 수업을 했고, 그 모습 자체가 스스로 뿌듯했다.

 

나의 마음이 통한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본성을 숨기고 있던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무리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해도,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기에. 그렇기에 지난 학기 동안 학생과 관련해서는 내가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라 감사하고 싶다. 무엇이 정답인지 누가 알겠는가 만은 다행히 전교에서 몇 명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나와 적당히 거리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가 예상치 못하게 아주 크고 따뜻한 사랑을 주었다.

 

그 와중에 사춘기의 호르몬에 의해 거리를 지키지 못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았던 것인지 몇 명의 학생들은 내 입장에서 매우 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 기억에 세 명 정도. 그 학생들의 속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남자교사들 앞에서는 그런 행동을 대체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세명 중 두 명은 수업 시간에 나에게 몇 차례 매우 무례하고 굴었고, 그 무례함의 순간을 몇 번을 나는 농담으로 넘겼다. 그리고, 내가 농담으로 대처를 하지 못한 그 한 두 번의 순간은 수업 시간 끝나고, 함께 학생부로 가자고 이야기하고 그 순간을 넘겨서 수업을 이어갔다. 수업이 끝난 후에 그 아이와 1대 1로, 왜 수업시간에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다음에 그런 행동을 또 수업 시간에 하면, 수업을 방해한 행동 교권을 침해한 행동으로 간주하고 학생부로 가기로 했고, 학생부로 가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그 두 명은 나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며 나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학생들로 천천히 바뀌었고, 수업 시간에 무례한 태도를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단, 한 명의 아이.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은 그 한 명. 그 아이는 나에게 몇 달을 매우 무례하게 굴었다. 이해하고 넘겨주면 더 무례하게 굴고,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수많은 행동들을 했다.  교직 생활 처음으로 그 반에 수업을 들어가는 매 순간마다 긴장이 되어서 요일과 시간을 확인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반 수업 시간을 생각하면 심장이 빨리 뛰어 부담을 느끼는 경험까지 했다. 그 아이는 상상을 초월하게 무례하게 수업을 방해해서, 몇 달 동안 참다가 결국 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학생부로 갔다. 학생부에 간 이후 그 아이는 태도가 사뭇 좋아진 듯했다. 그래서 학생부로 빨리 데리고 가지 않고 계속된 기회를 준 것을 오히려 스스로 후회하기까지 했다. 때로는 규제와 규칙으로 인한 대응이 아이의 태도를 바꾸기도 하는구나. 국가 내 법과 벌금. 교통법규와 속도 제한이 운전자의 온화한 운전을 규제하는 것과 같이.

 

하지만, 속도 제한 같은 학생부의 지도가 그 아이에게는 제한적인 규칙이었던 것 같다. 내가 미국으로 오는 것을 결정하고, 방학 전 마지막 시간에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떠난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 반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날. 차마 내 입장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악담들을 나에게 했다. 나는 살면서 학생이 마지막 순간에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그 아이가 무언가 교실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서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 애써 좋게 해석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 아이가 말했던 단어와 단어들, 그 말속에 담긴 생각들에 나는 순간 너무 감정이 상했고, 놀랐고, 벌벌 떨렸다. 너무 속이 상해서 나오는 눈물을 순간 통제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감동의 이번트를 준비해서 선생님들을 작성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은 순간에 교사들이 흘리는 눈물은 휴머니즘 적이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흘린 눈물은 아팠고 슬펐고, 통제 가능하지 못해서 부끄러웠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 문제이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목으로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어떻게 사람과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그런 악담 같은 말들을 할 수 있는지 선생님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부디 네가 이 순간 너의 행동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행동 안 했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사람이고 감정이 있어서 너의 그 말이 너무 속상하고 슬프다.” 그 아이의 악담의 순간 그 반 아이들의 표정이 굳었고, 분위기가 쏴해졌다. 나는 반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다. “선생님이 어른으로서 저 학생의 무례함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고 용서를 못해서, 우리의 헤어짐의 순간을 이렇게 마무리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저 말을 들은 선생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웃으면서 헤어질 수가 없어서 미안해. 너희들과 마지막이 이래서 미안하다.”라고 하고 교실을 나오고 말았다. 그 반 아이들은 나중에 반 단체로 편지를 써서 주었다. 상처받았을지 모르는 역사 선생님을 위해 그 반 아이들이 마음을 모아 선의의 위로를 해주었다. 그 아이의 말을 통해 자기 반 학생들 전체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아 주기를 바라는 따뜻한 위로들. 아이들의 그 마음들이 감사했다.

 

이 일들이 내가 반년 학교에서 있는 동안 학생들을 통해 겪은 최악의 순간의 전부였다. 그 외에 대부분의 학생들과 경험한 시간들. 대부분의 모든 학생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3월은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데, 4월, 5월, 6월, 7월로 갈수록 대부분의 시간들은 학생들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 아주 많이 웃고 즐거웠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해주는 대답들이 너무 웃겨서 나는 내 역사 수업 시간이 너무 기대될 정도였다. 역사 수업이 재미있고 즐겁다는 이야기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만난 아이들이 소리치듯 이야기해 주어서, 기분이 하늘을 날아가는 듯했다. “선생님 오늘 우리 반 세계사 수업 있어요. 이따 봬요.”라는 말들. “선생님 수업 너무 좋아요.” “선생님 수업이 유명한 인터넷 강의보다 훨씬 이해가 쏙쏙 잘되요.” “세계사 수업 너무 웃겨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을 하거나, 저기 멀리서 나에게 뛰어와서 자기 기분이나 상황을 재잘재잘 귀엽게 이야기해 주는 아이들. 고민이 있으면 와서 상담해 달라고 하는 아이들. 때로는 농담과 장난을 하고 싶어 하거나, 간식을 달라고 귀엽게 조르는 아이들. 복도에서 만나면, 허리 숙여 인사해 주면서 다가와서 여러 가지 웃긴 행동들을 해주고, 춤을 춰주던 아이들. 이런 아이들에게 몇 달 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하루하루, 몇 주, 한 달 한 달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역사 수업 시간에 “누가 중학교 2학년이 무서워서 북한이 못 온다고 했는?” 선생님이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너희들. 진짜. 사람들이 그렇게 무섭다고 말하는 중2병 걸린 중2들 맞냐고.

 

수업을 들어가는 반마다 다들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었던 중2 들. 그중. 가장 고맙고 감동적이었던 아이들은 내가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들이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 에너지가 달려서 인지, 나는 예전보다 담임 반 아이들에게 하는 말수가 조금 줄었다. 그래도 담임반 아이들에게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특별히 있었고, 그것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말을 한다고 아이들이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달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한두 개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숙제를 하느라 바빴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늘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가 너희에게 얼마큼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들어주면 선생님은 아주 고맙겠다고 이야기했다. 숙제가 급한 사람은 숙제를 하면서 들으라고. 그렇기에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아침마다 내가 슬쩍 한 마디씩 던지는 이야기들을 얼마나 듣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15세 아이들의 가능성에 대해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너무 비관적인 시각 속에 가둬두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자신 없어한다. 자신의 현재 수학 실력과 영어 실력 때문에. 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길고 긴 인생을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의 수학점수나 영어 점수 같은 성적에 가두지 않기를 바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국영수 성적에 자신을 가둬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비관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했다. 학기 초부터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너희들 인생은 이제 시작이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희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고, 그와 관련된 한 두 마디를 건넸다. 물론, 시의 적절하고 상황에 맞게 매우 전략적인 공부 방법, 시간, 마인드 등등 도 전달했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들을 듣고 반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5월, 6월, 7월이 되어갈수록 아이들은 조금씩 더 좋은 분위기로 변했고,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결국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들을 현실 속의 시험점수라는 것을 통해 내가 증명해내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고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니까. 중간고사에서 기말고사를 거치며 우리 반 많은 아이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반에서 몇 명이나 40점씩 수학성적이 올랐고, 그것을 통해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통했다는 것을 확인한 모순의 모순의 순간들이지만 결국 내 말들이 아이들에게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낸 셈이니 너무 따지지 않기로.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힘을 냈고 선생님 말을 믿고 했더니 결국 되었다는 종류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아이들은 각자 다양한 자신들의 언어로 그런 이야기들을 표현해 주었다. 그것 외에도 담임 선생님을 위한다며 여러 가지로 나에게 크고 작은 사랑을 주었다. 그 크고 작은 마음들이 예쁘고 고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사춘기 호르몬은 감정을 배가시켜주기도 하나 보다. 마지막 헤어질 때 많은 중2 아이들이 편지를 써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각자의 언어와 표현으로 다양하게 나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내가 이런 아이들의 행동에 감동해 감상에 빠져있자, 내 친구는 나보고 참 소박하다고 했다. 소박함의 극치일 수도 있지만 우리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이런 따뜻한 마음에 하루하루를 살아내지 않는가. 나는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그 노래와 편지 글들에 눈물이 났고, 그 순간을 박제하고 싶을 정도로 충만하게 느꼈다. 그 따뜻하고 소중한 마음들이 고마워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들에게 나도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그 작은 선물을 받겠다고 쉬는 시간에 나를 찾아와 준 많은 아이들의 그 소중한 마음에도 감사하다. 그 순간을 비디오로 담고, 교육청에서 유학휴직 미승인을 받은 날 그 비디오를 보며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런 아이들의 사랑 덕분에 아주 감사하며 한국을 떠나올 수 있었다.

 

올해 상반기 나의 경험은 아이들을 교육현장에서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아이들은 교육으로 변한다는 나의 믿음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운이 좋았기에 만날 수 있었던 그냥 특별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현실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모든 것들을 뺀 진공상태의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마음 한편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면서 살고 싶어 하는 존재 아닌가. 물론, 이런 무언가 꿈같은 이야기가 가능한 이상적인 교실이 되려면, 우리나라 교육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들이 많이 있다.

 

게다가, 내가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특수하기 때문에 일반화 불가능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올해 근무했던 학교는 학생부가 아주 강력한 편이었기도 하다. 그 강력하다는 것은 무언가 무섭고 공포스러운 학생부는 아니다. 지역적 특성, 학생부를 지도하고 있는 교사의 현실적인 특성, 그리고 학생들의 특성이 운 좋게 잘 맞아떨어져서 환상의 콜라보레이션 상태인 것이다. 전반적인 학생들이 학생부에 가서 지도를 받는 사실 자체를 걱정하고, 학생부에 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단속하는 학교이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는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학생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랬기에 가능하다. 이것은 지역마다 학교마다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소위 말하는 뽑기운이다. 나도 이런 운은 교직 생활 내내 처음이다. 내가 근무했던 첫 학교와 두 번째 학교를 통해서, 지금 이번에 내가 근무했던 이 학교에 내가 몇 년 전 전입해 와서 근무했을 당시에 이 학교는 이 지역에서 가장 힘든 사건사고가 많은 학교였기 때문이다.

 

 

올해 나에게 일어났던 몇 가지 참 안 좋았던 일들 중에 내가 만난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 유일한 위로였다는 사실을 글로 쓴다는 자체가 조심스럽고도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이 시의적절한 지에 대해 몇 번의 자기 검열까지 했다. 올해 초 이 학교가 얼마나 근무환경이 좋은 상태인지 알기에 이 글을 통해, 한국 공립 중학교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거나, 혹은 오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시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서이초 사건, 교사들의 움직임들은 교육에 대한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교원들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는 것이 가장 시의적절한 교육부와 교육청의 자세일 것이다.

 

학교는 학교와 지역에 상관없이 교사들이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들은 진짜 수업과 교육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과도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를 직접 상대하고 교사를 지켜줄 대체 인력이 필요하고, 이를 보장해 주는 법들이 필요하다. 교육청과 학교의 관리자들이 교사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될 수 있게 교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외면할 수 없게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학생들이 교권을 침해할 수 없게 법적으로 교권을 지켜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학생 인권과 아동학대 방지법이 학생들을 지켜주듯. 교사의 인권을 지켜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게다가 진정한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사의 과중된 업무도 줄여주고, 현실에 맞는 보수의 인상도 필요하다. 교육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너무 많은 행정 업무들이 만들어지고, 과거 행정실 업무의 상당수도 교사들에게 넘어왔다. 여러 가지 면에서 교사의 행정업무는 계속 증가해 왔다. 너무 과도한 행정 잡무를 줄여줄 행정을 대신할 인원들도 필요하다.

 

현실의 교권이 힘이 없다는 생각을 최근 몇 년간 많이 했다.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왜 한국의 교권이 힘을 그렇게 많이  잃었을까에 대해 자주 생각해 봤다. 힘을 잃은 교권의 극단적 사건이 서이초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움직임과 여론의 대응들. 모든 것을 통해 현실과 나의 이상의 괴리를 느낀다.

행동으로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이런 내 글의 시의적절성을 의심하면서 멀리서 글로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더 느껴지게 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과 내 힘도 참 약하다. 하지만, 작고 약한 것들이 모여서 큰 힘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그 이상에 대한 믿음은 또 버리지 못하겠다. 내가 예전에 배웠던 풀뿌리 민주주의가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상적인 공교육이 되기를 바라는 나 같은 수많은 마음들이 모여 현실에서 이루어질 순간을 여전히 바라본다.


#서이초 #교권보호#이상과현실 #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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