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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주일의 순이 Aug 27. 2023

일순이 : 제주, 우리의 행복 저장소(4)

세화를 오가는 마음


우리의 제주 여행의 핵심은 세화에 있다. 세화 바다에서 매일 수영을 하고, 근처 성산일출봉이나 비자림 숲, 스누피 가든, 오름 등을 다닌다. 그리고 저녁에는 세화 하나로 마트에서 맛있는 한치회랑 우도 막걸리를 사서 돌아온다. 우리 여행은 이게 다이다. 남들에게 보일 땐 매해 같은 곳을 가는 게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특별한 일을 즐기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일지도. 그런데 우리는 왜 매해 같은 곳에서 머무는 것일까.


세화에 숙소를 정한 가장 큰 이유는 숙소 때문이다. 내가 묵은 곳은 세화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으로 아래층에는 커피숍이, 위층에 숙소 두 개, 또 지하인 듯 1층인 듯 하는 곳에 방이 2개가 있다. 둥이들이 5살이던 시절, 뙤약볕에서 10분을 걸어 바다를 걷게 했던 게 안쓰러워 바다 근처 숙소라는 조건이 무엇보다 제일 중요했다. 2층인 숙소 거실에서 통유리로 푸른 세화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마음에서 마구마구 환호가 피어난다.


솔직히 말하면 가격이 싼 곳은 아니다. 나는 남편에게 숙소의 가격을 말하지 않는다.(남편도 굳이 가격을 묻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그런데 가격 안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서 사실 상 또 그리 비싸다고 볼 수 없다. 왜냐면 반찬들이 제주도 식당에서 먹을 만한 메인 요리들로 매일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옥돔구이, 갈치조림, 한치볶음 또는 팔보채, 전복구이 등이 메인으로 나오고 밑반찬들도 다양하고 좋다. 내가 어디 가서 매일매일 이런 대접을 받아볼 수 있을까. 제주에 올 때마다 매일 받는 아침상은 나의 얇은 지갑을 잊게 하고 결단을 내리게 한다. 그냥 눈 딱 감고 이 숙소를 매해 예약해 버리는 것.


세화에서 만나는 제주 사람

세화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은 숙소 사장님 내외분과 가게 사장님들이다. 사실 그 외에 현지 분들을 만날 가능성은 없다.


2020년부터 만났던 사장님 내외분(할머니, 할아버지)은 나이가 점점 더 들어가고 계신다. 작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아드님이 할아버지 사장님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다리가 불편하셔서 처음 뵐 때부터 일이 무리가 아닌가 싶었는데 아드님이 하는 거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올 해는 할머니 사장님께서도 많이 수척해지셔서 놀랐다.

“어디 아프셨어요? 살이 너무 빠지셔서 놀랐어요.”

첫 날 아침을 먹고 걱정이 되서 말을 건넸다. 사장님은 그간 사정을 이야기했다. 손녀들이 감기에 엄청 독하게 걸렸었는데 옮아서 너무 심하게 앓으셨다고. 정말 이러다 죽는 줄 알 만큼 호되게 앓고 나니 살도 많이 빠졌다고. 나도 올 봄에 아이들에게 옮아 편도선이 너무 부어 목소리도 안 나오고 힘들었다고, 이번 감기 너무 힘들더라며 같이 감기로 인한 고생 스토리를 쏟아 냈다. 그런데 그 와중

“할아버지는 아프니까 싹 도망가. 본인 걸리면 안 된다고. 저 양반은 코로나도 안 걸린 사람이야.” 라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넘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할아버지 스스로 건강을 잘 챙기고 계시구나 싶어 안심이 되기도 하고. 암튼 환한 미소의 할아버지를 오래 뵙는 건 좋은 일이니까 앞으로도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랄 뿐이다. 단 할머니 건강도 같이 챙겨주세요, 할아버지!


P인 나에게 딱 맞는 여행

제주도를 다닌 지 올해로 딱 5년이 되었다. 그 사이 큰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둥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남편 빼고 그간 5년 동안 여행을 다니게 된 것은 일단 우리는 모두 여름방학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은 일이 바빠 제주 여행을 함께 하지 못했는데 남편의 마음이 어떤지는 사실 살펴보지 못했다. (그래도 같이 가자고 늘 물어는 보았다.) 첨부터 나의 힘든 마음을, 현실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사실 아이들을 꼭 데리고 가서 기필코 좋은 추억을 만들겠다는 구닥다리 모성애를 소유한 엄마로서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0년 넘게 매일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반경 5키로도 안 되는 곳을 쳇바퀴 돌 듯하며 보낸 시간들. 여름에 차도 없이 크나큰 쌍둥이 유모차를 밀며 병원으로, 마트로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런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내가 오롯이 혼자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제주 여행의 모든 순간들은 다 소중하다.


“체크아웃이 내일 아니에요?”

체크아웃 하기전 마지막으로 먹는 조식을 마친 후, 인사하는 나에게 할머니께서 말하신다.

“아, 저희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

당당하게 말하고 짐을 차에 날랐다. 진짜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카페에 들어서니 할아버지가 어느새 오셔서 식기 등을 정리하시면서 우리에게 말하신다.

“내일이 가시는 날 아니에요?”

이쯤 되니 좀 이상하다. 두 분이 같이 그러니 뭐지 싶어 문자를 얼른 검색해 본다. 아뿔싸, 내일이다. 와, 어쩌면 나는 오늘로 알고 있었을까. 비마저 내려 밖은 우중충하고 나는 갈팡질팡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비행기표, 렌트카 모든 게 오늘을 마지막 날로 예약한 것이다. 하루를 버려야 하는 것인가? 순간 올 해 하루를 내년 예약에 이어 쓸 수 있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급하게 할머니께 전화를 거시고 사정을 이야기 하셨다. 안타깝게 옆 방 손님이 쭉 이어 예약하셨다고. 성수기 말고, 비수기 때 한 번 오라고...급한 마음에 그렇게 해달라고 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나섰다.

역시 P의 여행이란...어쩌면 매해 세화에 오는 여행은 철저하게 P로 살아온 나에게 아주 딱 맞는 여행이었는지 모른다. 세화가 있어 나는 별다른 준비 없이 잘 와서, 잘 머물고 돌아간다. 이젠 여름 뿐 아니라 봄, 가을, 겨울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나에겐 아직 안 쓴 1박의 쿠폰이 남아 있으니까. 물론 나는 세화만 믿고, 세화의 사장님만 믿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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