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가 대세다. 직접 쓴 글을 발표할 공간도 많아지고 출판도 쉬워졌다. 예전엔 어떤 장벽을 넘거나 연줄이 있어야 '작가님'이 될 수 있었다면 요즘엔,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자기만의 개성이 있으면 '작가님'이 된다. 독립 출판물이 인기를 얻어 주류 출판 시장에서 다시 출간되고 꽤 팔리는 경우도 자주 본다. 쓰기는 먼 일, 작가들만의 일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주 가까운 일이다.
'쓰기'가 '작가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제일 먼저 알려 준 사람은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글쓰기 멘토인 줄리아 카메론이다.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모닝 페이지'라는 창조성 개발 도구를 소개하면서 글쓰기 멘토로서도 유명해졌다.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2013, 이다 미디어, 원제 The Right to Write: An Invitation and Initiation into the Writing Life)는 줄리아 카메론이 사람들에게 '글 쓰는 삶을 살라'고 유혹하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죽어서 천국의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받게 될, "당신을 여기로 들여보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을 설득해서 글을 쓰게 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천국의 거대한 문이 활짝 열리리라고 쓸 정도로(7쪽) 글쓰기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다.
글쓰기의 세계로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저자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글쓰기는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이 아니며 즐겁고 인간적 욕망에 충실한 일이다'라는 것이다. '작가'나 '글쓰기'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겁고 부담스러운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자유롭고 즐겁게 쓰는 인간으로 살라고 한다. 실제로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과제들을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제시해주고 있어서 뭔가 쓰고 싶은 욕망이 드글드글 끓게도 한다.
처음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빠지기 가장 쉬운 함정은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두려움이다.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잘 쓸 수 있을까? 남들이 내 글을 좋다고 해줄까? 하는 두려움... 잘 쓴 글, 글쓰기의 규칙을 잘 지킨 글, 남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글, 이런 글이 못 된다면 한심하고 의미 없는 글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우리가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런 생각을 걷어내주려고 애쓴다.
줄리아 카메론은 말한다.
'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쓰기'는 즐거운 일이다. 규칙도 없고 머릿속, 마음속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도록 자연스럽게 두면 된다.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누구나 자신과 자신의 세계를 언어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누구나 전문적인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아마추어 야구를 즐기고 아마추어 음악 연주자가 되듯, 취미로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써라. 아니면 그냥 자신의 마음을 마구 털어놓아라.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써라. 복수하고 싶은 일, 화나는 일을 글로 풀어내 보라,라고.
이 책이 다른 글쓰기 책 보다 나에게 더 와닿았던 이유는 '창의적 글쓰기', '예술적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써서 책을 내는 법이라든지,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적 글쓰기라든지, 이런 성취 지향적 내용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 진정한 자기 계발은 철학과 예술이라 생각하는 나이기에..
꼭 쓰기가 아니어도 된다. 그림 그리기든 악기 연주든 노래든 공예든 연극이든.. 무엇이든 자신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어떤 예술이든 글쓰기처럼 진입 장벽이 있다는 걸 안다. 남이 하는 걸 보며 즐기지만 말고 직접 해 보기, 그 과정에서 어려움과 지겨움을 이겨내고 뭔가 성취해보기.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할 만한 시간적, 물적 여유가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꿈꾼다.
이 책이 글쓰기의 세계로 우리를 유혹한다 해도, 또 우리가 유혹 당해 글쓰기를 시작한다 해도, 우리가 진정 글쓰기를 즐기게 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 건가?", "이런 사소한 글을 쓰는 게 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왜 나는 글을 쓴다고 쓰는데 안 느는 거야?"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불쑥불쑥 괴롭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의문들은 결국 글을 쓰지 않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일단 쓰자. 그냥 쓰자. 좀 더 재밌게 쓰고 좀 더 재밌게 살면 왜 안 되는가?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곳은 글쓰기에 알맞은 장소다."
"지금 당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하면 된다."
"그저 글을 쓰는 일만으로 당신의 삶이 더 나아진다."(20쪽)
"진실은 내가 내 삶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삶을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을 바라본다. 글쓰기는 평범한 것들에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열어준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고, 일상적인 행동은 우리 삶을 온전하게 만든다."(254쪽)
"맞다. 글쓰기는 예술이다. 또 예술은 진정한 인간성을 찾게 해 준다. 진정한 인간성을 찾기 위해 우리는 모두 예술을 할 권리가 있다. 즉 우리는 모두 글을 쓸 권리가 있다."(370쪽)
(안타깝게도 이 영감이 넘치는 책이 우리나라에선 인기를 끌지 못했다. 지금은 절판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