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이 : 부끄러움을 팝니다 (3)

착한 어른 아이 1

by 일주일의 순이

어릴 때부터 나는 착한 아이였다.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요구하고 졸라대던 반항기가 넘치는 오빠와 달리, 나는 절대로 부모님을 힘들게 하거나 실망시키지 않으리라고 은연중에 다짐했던 것 같다. 하기 싫어하는 오빠를 붙잡고 공부시키시는 엄마의 노고를 덜어드리고자 조용히 옆자리에서 문제집을 풀고 채점했고, 학교에서도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하여 열심히 수업을 듣고, 예습 복습도 해갔다. 이러한 노력에는 대체로 좋은 성과 및 주위 어른들의 칭찬들이 따르게 마련이었기에, 착한 아이로 사는 일은 항상 자랑스러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러한 성향은 계속 유지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보다는 공허함과 우울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 분리도 어려웠고, 소속된 곳에서 칭찬 등 좋은 말들을 듣지 못하면 자꾸 불안함을 느꼈다. 어느 날 이것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직면하는 순간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나 역시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가? 어째서 고쳐야 할 문제적인 성향인가?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따라 우울과 기쁨을 쉽게 오가다 보니 이미 나는 정서적으로 몹시 불안정해져 있었다. 또 타인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고 버림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빠져있었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남들의 기분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지속적으로 상담 및 마음 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이런 모습들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돌보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성향을 모두 떨쳐버리지는 못한 것 같다. 복직을 앞두고 요즘 아이돌보미 선생님을 뽑고 있는 중인데, 이러한 콤플렉스 때문일까, 마음이 편치 않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원해 주신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데, 문제는 모실 선생님이 한 분인지라 대다수에게 탈락을 고지해야 해서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데에 있다. 열심히 스스로가 적합한 인물임을 열심히 어필하며 지원해주신 감사한 분들께, 탈락이라는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죄송하고도 마음이 좋지 않아 어찌할 줄을 모르겠는 상황인 것이다.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떨어졌다는 사실을 덮거나 대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로 인한 실망스러움을 아예 피해 갈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실망이나 슬픔을 줄 것 같은 상황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이 칼을 휘두르는 것만큼이나 힘겹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이 사실을 덜 아프게 맞닥뜨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토록 힘든 일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내는지 조언이 필요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검색 결과를 보고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러 곳에 합격한 사람이 (가지 않는 곳에) 거절하는 법'에 대해서는 수많은 조언들이 있었지만, 고용주의 입장에서 탈락한 사람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 고민의 정도가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걱정을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콤플렉스가 있는 나 같은 소심한 인간이나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것이었지, 대다수는 당연하게 그 소식을 전하고, 지원자들 역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쩐지 탈락을 고지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이 공감하기보다는 짜증을 내더라니, 내가 그만큼 유난스러웠나 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탈락을 고지하는 것 자체가 걱정거리가 아니라, 메시지를 받은 그들이 내게 화를 내거나 역으로 나를 속상하게 만들지 모를 상황을 겁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습게도 내가 거절을 잘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고용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을 것인지를 걱정하기 때문이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반응이 되돌아온다면 착한 아이가 되지 못한 기분에 사로잡혀 나의 내면이 혼란스러워지거나 무너져 내릴 것만 같기에, 최대한 공손한 문구들을 사용해 메시지가 지닌 - 아니 내가 받을 - 충격을 줄여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나쁜 소리를 듣게 되면 어떤가, 정말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가? 아니라는 답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자기 계발 책과 유튜브 영상물 등을 통해 주입받은 대로,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서 내 존재의 가치가 낮아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워하고 있다. 이성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감정은 알 수 없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이성은 나이에 비례해 성숙해졌지만, 감정은 아직도 착한 어린아이로 사랑받던 그 시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까.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거절 메시지를 전송하는 버튼을 쉽게 누르지 못하고, 옆에 있는 남편에게 쓴 내용을 보여주며 자꾸 묻고 또 묻는다.

문제는 그런 성향이 살아가면서 현실과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타인의 기분과 평가를 너무 의식하다 보니 원치 않게 '호구'가 되는 경우들이 많아진다. 타인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니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과 잘 지내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다 보니 타인의 행동을 과도하게 선의로 포장하여 바라보기도 한다. 한편 결단을 내려서 거부하거나 저항해야 하는 순간에는 갈등을 회피하여 한 발 물러서는 비겁한 모습조차 보인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싫다. 타인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거나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이것이 진심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어서 종종 마음속으로 힘들어하고 타인을 미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스스로의 위선적인 모습에 몹시 실망하게 된다. 상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내 마음을 속이고, 심지어 행동에 대한 결정권까지 맡겨버리는 모습. 상대의 웃는 표정을 보기 위해서 그 대가로 내 자존감을 헐값에 내다 파는 모습. 하지만 거의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만큼, 그러한 행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방법, 내가 온전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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